[이야기의 이야기] 정원에서 일어나는 일

여덟 번째 이야기 '비밀의 화원'
글 입력 2018.04.0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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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의 삽화
 

호화스럽고 아름다운 배경 묘사에 매료되어서, 초등학생 무렵 <소공녀>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곤 했다.

'세라'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용모가 아름답고 성품 또한 훌륭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야기 속에서 세라는 위기에 처했다가 타인의 도움 덕에 극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후 행복하게 살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틀에 박힌 이야기지만 그때는 오히려 그 단순함 때문에 이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세라는 완전한 선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누구 편에 설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녀의 뒤에는 거대한 재력 또는 권력을 지닌 조력자가 존재한다. 덕분에 세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언젠가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는, 그리고 행복해져야만 한다는 믿음이 생긴다. 이야기 내내 세라가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모습으로 그려지는지, 모든 호화로움과 행복은 마땅히 그녀의 것이여야 한다는 데 어떤 독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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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같은 작가가 지은 작품 중 <소공녀> 못지 않게 내가 좋아했던 작품은 <비밀의 화원>이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소공녀>와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부유한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버림받거나 잊힌 아이가 등장하고 고생 끝에 결국에는 행복해진다는 큰 줄거리가 그러하다. 그러나 <비밀의 화원>의 주인공 격인 '메리'와 '콜린'은 앞선 작품의 주인공과는 다른 점이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종일관 밝고 꿋꿋한 모습인 세라와 달리 두 사람은 '볼품 없는' 외모에 떼도 쓰고 화도 내는 걸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더욱 현실적인 주인공의 모습에 독자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더 궁금증을 가진다.

메리는 부모를 잃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다 고모부의 부유한 저택에서 살게 되는데 그 저택에는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만 있는 소년, '콜린'이 있다. 이야기는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아이와 저택에서 일하는 마사의 동생, '디콘'이 만나 버려진 정원을 가꾸며 진행된다. 그 정원은 과거 콜린의 어머니가 사고로 죽게 된 장소로 저택의 사람들 모두가 애써 외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두 아이는 돌보는 사람이 없어 황무지처럼 보이는 정원을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정원을 가꾸고 정원에서 놀며 점차 변해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상처의 중심이었던 장소에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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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내일 다시 올 테고, 모레에도, 글피에도, 그글피에도 올 테니까."

메리가 말했다.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시게 될 거야, 그렇지?"

콜린이 대답했다.
"딴 건 아무것도 들이마시지 않을 거야. 이제 봄을 봤으니까 여름도 봐야지. 여기에서 자라는 모든 것을 볼 거야. 나도 여기에서 자라게 될 거야."


<비밀의 화원>, 시공주니어, 298-299쪽


<소공녀>에서 세라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인 캐리스퍼드 씨의 등장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고 풍요로운 생활을 되찾는다. 반면 <비밀의 화원>에서 메리와 콜린이 처한 곤경은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다. 게다가 그들을 곤경으로부터 구해 주는 어른은 없다. <소공녀>의 세라가 이미 완성된 인물로 시작해 곤경에 처하고 구원받는다면 <비밀의 화원> 속 아이들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만나 각자를 돌보며 성장한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기에 그 나이 아이들답게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대화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텅 비어 있던 정원이 화사해질수록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아지고 건강도 좋아진다. 외출을 하기 위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콜린은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걷기에 이른다. 걸을 수 있게 된 콜린이 몇 년만에 만난 자신의 아버지 크레이븐 씨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과 그걸 본 크레이븐 씨가 오랜만에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장면은 정원에서 일어난 기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 스스로 이루어낸 작은 변화가 두 사람을 성장시켰고 그 성장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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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항상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 그 따뜻함이 현실에도 존재한다고 어떻게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공녀>보다는 <비밀의 화원>쪽에 더 가깝다. 우리는 세드릭이나 세라처럼 아름답고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마땅히 우리의 것이여야 한다고 여겨지는 행복 같은 것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더 괜찮은 세상이 될거라는 희미한 가능성만이 있을 뿐이다. 결점도 의심도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 희미한 가능성에 기대어 세상을 살아간다.

재작년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부터 최근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 운동'까지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모습을 우리는 봐 왔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 믿음은 형태가 있는 단단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은은한 향기처럼 우리 주변을 떠다닌다.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서 서로를 믿고 돕는 힘은 정말 소중하다. 우리는 정원을 가꾸듯 서로를 가꾸고 돌본다. 대단해 보이지 않는 미약한 움직임이 변화를 이끌고 그 변화가 때로는 작은 기적을 만들 것이다. 그 가운데서 사람은 함께 성장한다. 나 역시 그 일부가 될 수 있기를 모든 게 새롭게 피어나는 봄날에 소망해 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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