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들어야 할 이야기,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

글 입력 2018.03.3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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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를 보았다. 감정노동의 현실을 생생히 비추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속 깊은 공연이었다.

연극은 "불이야!"하고 외치는 배우의 비명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그는 제발 아무나 도와주라고,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소리친다. 그리고 연극은 이 이 주인공을 이토록 위태롭게 만든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주인공 '수진'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원이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온갖 언어폭력에 매번 상처를 입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팀장, 센터장은 '프로답지 못하다'며 그녀를 나무라고 압박한다. 그러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고시원 옆방에 배우 지망생이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연기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살아남기 위해, 버티기 위해 연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써야 한다는 그녀의 대사는 계속 마음을 찔렀다. 너무나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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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직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늘상 감정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법이다. 감정연기를 잘 할수록 '사회생활 잘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 감정연기는 '배려'와는 다르다. 자본에 의해, 사회적 권력 관계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갑을관계에서 '을'은 감정까지 복종당한다.

공순이, 공돌이였던 부모님과는 달리 주인공은 드디어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묻는다. 진정으로 달라진 것이 있느냐고 말이다. 경제는 발전했지만, 노동자의 권리는 향상되는커녕 또 다른 형태로 왜곡되었을 뿐이다. 돈은 물론 이제 감정까지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잊게 된다. '나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 감정노동은 자신도 모르게 그 목적인 삶 자체를 장악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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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는 피해자였던 인물이 어느새 가해자가 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주인공은 자신이 당한 바에 대해 '나도 그럴 권리가 있어'라는 엉뚱한 보상심리를 갖게 된다. 약자가 약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보다 더 약한 이들에게 강자가 되는 데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을'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는 모습이다.

<전화벨이 울린다>는 90분이라는 시간동안 노동, 권력, 삶, 주체에 대해 관객들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었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연기, 연출을 통해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이런 고민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진'과 같은 이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사회가 더 병들기 전에 외면해 왔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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