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백과 공백, 중심에 대하여 [문화 전반]

나의 중심은 무엇일까
글 입력 2018.04.0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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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과 공백, 중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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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다. 2018년의 4분의 1이 지나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뤄둔 것이 없음에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렸다고 실감할지 않을까. 나 역시도 그랬다. 훅 지나가버린 시간을 더듬으면서 마음이 이상해졌다. 무의미하게 지나간 나의 시간들이 허무하고 공허했다.

새로운 환경을 맞아 변화를 기뻐한 것도 잠시, 어느새 그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변해갈 쯤 나를 채우는 것은 권태와 무료함이었다. 매일 회사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주말마다 열심히 놀러를 다니고. 분명 내 일상의 기록들을 채우러 분주히 돌아다녔는데도 공허하고 허무했다. 무언가를 할 때 잠시 기분이 좋았다가도 그뿐, 이상하게도 단조로운 일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종종 찾아오는 공허감은 나를 줄곧 괴롭혀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 작품이 생각이 나서 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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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권태」


수능을 준비하는 한국의 고등학생이라면 한 번쯤 스쳐갔을 수필이다. 뒤적 뒤적 책을 뒤적이다 원하던 구절을 발견했다.

살아있는 시체! 불나방!

꽤나 자극적이고 강한 단어지만, 내 심경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들이었다. 내가 요즘 느끼던 나의 심정은 아래 구절 같았다.


‘이것이 시체와 무엇이 다를까? 먹고 잘 줄 아는 시체──나는 이런 실례로운 생각을 정지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나도 가서 자야겠다. 방에 돌아와 나는 나를 살펴본다. 모든 것에서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자살의 단서 조차를 찾을 길이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은 과연 권태의 극 그것이다. 그렇건만 내일이라는 것이 있다. 다시는 날이 새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밤 저쪽에, 또 내일이라는 놈이 한 개 버티고 서 있다. 마치 흉맹한 형리처럼──나는 그 형리를 피할 수 없다. 오늘이 되어 버린 내일 속에서, 또 나는 질식할 만치 심심해 해야 되고, 기막힐 만치 답답해 해야 된다. 그럼 오늘 하루를 나는 어떻게 지냈던가?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냥 자자!’



‘불나비가 달려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어디 불을 찾으려는 정열이 있으며, 뛰어 들 불이 있느냐? 없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꼭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이 구절들을 읽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여백’‘공백’차이에 대하여. 


여백(餘白) :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 자리
공백(空白) :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음


여백과 공백은 비슷하면서 아주 다른 단어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중심의 여부다. 중심이 탄탄하게 존재할 때, 남은 공간은 여백이 된다. 그러나 중심이 부재할 때 그 공간은 공백이 된다. 중심은 붙들어 매는 힘을 지닌다. 중심이 탄탄하면 일상의 단편적인 조각들도 그 중심을 기준으로 단단히 묶인다. 그리고 그 일상의 작은 조각들은 ‘인생의 중심’을 받쳐주는 여백이 된다. 그 인생의 중심이 일이든 가정이든 혹은 자기발전이든, 인생의 중심이 명확해야만 일상의 조각들도 그저 흘러가 흩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겐 그 중심이 좋아하는 일이고 자기발전이었다.

요즘엔 내가 그리 찾아 다니던 좋아하는 일과 자기발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사실,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일이 모호해져서 나의 중심이 흐릿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전엔 그 자리에 굳건히 존재하며 내 여백을 채워주던 나의 일상들이, 여러 사람과의 어울림과 다양한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리 쉽게 흘러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공백만 남은 채 말이다.

(물론 다른 경우로, 그런 작은 일상들이 삶의 중심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탄탄한 중심이 존재하기에 공허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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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현 작가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요즘은 나름의 공허함을 채우는 노력의 일환으로 꽤나 많은 콘텐츠들을 접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나 통하는 고양이들은 물론이고 각종 ASMR과 힐링툰으로 점철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 하나 있다. 코미코라는 사이트에서 ‘주영현’ 작가님이 연재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작품인데, 어느 날 갑자기 봄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을 보고 사표를 집어 던지는 이야기다.더 정확히는 사회에서 강요당한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정작 ‘나’를 지탱하는 중심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던 주인공이 자신을 억누르던 사회의 요구를 버리고 자신의 중심에 대해알아가는 이야기다.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지만, 최근 들어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웹툰이었다. 벚꽃 잎을 맞으며 생각을 바꾸는 주인공의 모습은 단연 압권이었는데, 나 역시 곧 흐드러지게 피어날 벚꽃 아래서 나의 중심에 대해 가닥을 잡고 싶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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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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