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엄마의 그늘

도서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리뷰
글 입력 2018.04.04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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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서장 '어머니 죽이기'는 왜 어려운가

제 1장 어머니와 딸은 전투 중

제 2장 어머니의 심리적 속박, 그 정체는 무엇인가

제 3장 여성이기에 갖는 어려움

제 4장 신체의 공유에서 의식의 공유로

종장 관계성 회복을 위하여




엄마와 나


"너 엄마랑 친해?"

가끔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세상 모든 인간관계가 복잡하다지만 특히나 엄마와의 관계는 뭐라 한마디로 단정짓기가 어렵다. 엄마와 일상의 온갖 이야기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거나 같이 놀러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사람은 우리 모녀 사이가 좋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마와 나의 관계 그 이면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에 사이가 좋다는 말을 완전히 긍정하기 힘들다. 실제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극단적인 두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경우가 많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엄마를 떠나 먼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감정에 북받히곤 했기 때문에 모녀 관계의 당사자인 나와 엄마가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싶었다. 내가 속해 있어서 더욱 설명하기 힘든 이 관계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책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를 읽게 되었다.



모녀관계의 특수성



반면 어머니와 딸의 권력관계는 공감하고 배려하면서 지배하는 식으로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어머니는 '다 너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망과 이상을 딸에게 강요하려 듭니다. 딸은 어머니의 욕망을 재빨리 읽어내고 겉으로는 반발하지만 결국 지배를 거스르지 못하게 되지요. 이 구도를 자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관계는 역시 모녀 사이에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60-61쪽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는 모녀관계의 특수성을 여러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9시 뉴스에나 나올 것 같은 극단적인 사례부터 일상에서 우리가 쉽게 공감하는 내용까지 수많은 엄마와 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모녀관계의 핵심은 '딸을 지배하는 어머니'이다. 물론 부자, 부녀관계, 그리고 모자 간에도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 죽이기'라는 상징적인 말이 있듯 아버지와 자식 간의 갈등은 비교적 단순하고 결말도 지배당하거나 반항하는식으로 명확하다. 반면 모녀관계의 갈등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어머니와 딸은 쉽게 분리되지 앟는다.

모녀관계의 갈등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어머니가 딸을 지배하는 일이 배려, 헌신 등 여러가지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책에서는 이를 다카이시 고이치의 말을 빌려 '마조히스틱 컨트롤'이라고 명명한다. 딸은 어머니를 벗어나거나 외면하려는 시도를 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어머니는 이 죄책감을 적절히 이용한다. 이로써 둘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이어진다. 동성이라는 이유로 오랜 시간 계속되어 온 '동일시' 역시 모녀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어머니는 딸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딸은 어머니를 부정하는 순간 자기 자신도 부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늘 붙어다니며 일상을 공유하는 모녀관계가 건강하다고만 확신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엄마와 딸 그리고 여성


앞서 모녀관계의 특수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한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 희생할 수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 역시 동성인데 어째서 모녀관계만 이렇게 특수한 걸까?'

이 질문의 답으로 작가는 여성성을 제시한다. 결국 모녀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여성성의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는 여성성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에 따르면 상징적 의미로서 '본질'로 존재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본질이 없고 '신체'로만 존재한다. 신체를 매개로 하여 어머니와 딸은 서로를 쉽게 동일시한다. 그 과정에서 훈육의 형태를 띤 어머니의 지배는 '헤테로섹시즘 내에서의 여성다움'을 강요하고 딸은 자신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책에서는 이를 '분열'이라 표현했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공허감은 이러한 분열에서 비롯된다.

다만 작가도 언급했다시피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녀관계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붙는다. 그 중 하나는 책의 모든 모녀관계에서 어머니를 '어머니이고자 하는 어머니(102쪽)', 즉 우리 머릿속에 있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으로 가정한다는 점이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머니이기보다 여자' 형의 어머니는 이 책에서는 다뤄지지 않는다. 더불어 읽는 내내 책의 내용이 일본의 사회상에 집중되어 있어 공감이 덜 되는 부분도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역할과 여성성에 대한 설명이 과연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유효한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딸로 살아가는 법



어쩌면 '모성의 자명함'이라는 전통적 억압과 내면의 근대적 자의식 사이의 갈등이 모녀관계 문제를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중략) 모녀관계를 '자립'이나 '여자의 행복'이라는 '의미'로 채우려 할 때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의미와 손을 끊고 해방됨으로써 열린 모녀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90쪽


지금까지 내용을 읽어 보았다면 눈치챘겠지만 이 책은 모녀관계에 답을 제시하는 실용서가 아니다. 모녀관계의 바탕인 여성성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체한 부분은 물론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기도 했다. 게다가 실제 모녀관계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종장 '관계성 회복을 위하여'의 내용은 다소 미흡하다. 그러므로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고 해서 당장 엄마와 나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단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양가감정을 갖가지 학문적인 관점에서 풀어 볼 수 있을 뿐이다.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엄마가 나의 엄마이고 내가 딸이라는 사실이다.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라는, 어떤 점에서는 저주와도 같은 제목은, 뒤집어 보면 그만큼 엄마만큼 딸과 가까이 지내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드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한 타인이자 최초로 의지했던 사람이다. 엄마가 나무라면 나는 그 나무가 드리운 그늘 밑에서 자랐다. 어느 순간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그 그늘이 나를 얽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며 애써 엄마와 정 반대로 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역으로 엄마에게 가장 크게 지배당하는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풀 수 없을 지경으로 엉킨 매듭이라 할지라도 칼로 끊어 버리는 게 첫번째로 고려될 방법은 아니다. 그보다 모녀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엄마 역시 누군가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온, 또는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게 첫걸음이다.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엄마도, 완벽한 딸도 없다. 엄마와 딸을 넘어서 우리는 각자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 더 나은 모녀관계의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도서 정보>

사이토 다마키 지음 | 김재원 옮김

꿈꾼문고

2017년 12월 1일 발행

256쪽 

13,500원 

ISBN 979-11-961736-1-6 (03180)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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