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면의 과학≫ 꿈이라는 네버랜드에 가면, [영화]

글 입력 2018.04.0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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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한다. 높은 계단 아래서, 지루한 수업 시간에, 차가 막혀 빼곡한 도로 가운데서 옴짝달싹 못 할 때 나를 묶는 모든 중력을 떨치고 두둥실 떠올라 하늘을 가로지르는 공상에 빠진다. 불가능한 상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그곳, 꿈이라는 곳에 가면 제아무리 말이 안 되는 일도 이룰 수 있기에 그 소망을 품고 잠이 든 적도 많다. 이렇듯 우리는 간절히 원하는 일을 실현하고자 할 때 꿈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그곳을 마음껏 조작하기도 한다.

 너무나 행복한 그곳에 평생 살고 싶지만, 현실과 거리를 좁힐수록 혼란은 커지고 괴리는 깊어진다. 이것이, 수면의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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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현실 사이 벽을 허물고 그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매 순간을 꿈을 꾸는 ‘스테판’은, 삭막하고 지루한 일상 속 유일한 새로움인 이웃집 여자 ‘스테파니’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회사에서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하며 억눌렸던 창의력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그의 꿈은 스테파니가 들어서면서 더욱 그 크기를 불리며 현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발명가 스테판

 현실에선 어리숙하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놀림 받지만, 스테판은 자신의 꿈을 창의적으로 건축하는 발명가이다.

 스테판의 꿈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는 그의 꿈을 표현함으로써 무의식 속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포착하는데, 솜으로 만든 구름을 떠올리기 위해 피아노로 완벽한 화음을 찾는 장면은 오감이 마구 어우러지고 합치되는 꿈속 기제를 그대로 재현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답게 대부분 아날로그 형식으로 표현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CG가 아닌 상자나 잡다한 폐품으로 만들어진 꿈속 사물들은 무의식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잘 설명하면서도, 잡동사니로 작은 발명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스테판의 성격을 반영하기도 한다.

 잿빛 현실과 대치되는 예쁜 화면은 그래서 더욱 음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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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스테판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그는 몽상가다.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예쁜 꿈은 비대해져 현실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를 아주 객관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많은 이들의 안에 있는 생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 사이 경계선을 철저히 유지하기를 요구하는 세상은 스테판이 느꼈듯이 어떤 이에게는 억압이 된다. 이들에게 공상은 아스팔트 같은 현실에서 피어난 꽃과 같은 존재이다. 누군가는 헛된 세상에 취한 몽상가로 폄훼해도, 이 숨 막히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그들의 방식을 어떻게 팔짱 끼고 조롱할 수 있겠는가.
 
 

멜로, 혹은 멜랑콜리

 혹자는 이 영화를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멜로 영화로 분류한다. 결국 스테판 혼자만의 사랑이지만, 공상을 매개로 두 남녀가 가까워지고 함께 아름다운 꿈을 구축해가는 과정은 실로 낭만적인 멜로 서사가 아닐 수 없다.

 공드리 감독의 다른 작품 <이터널 선샤인>도 그랬듯이 평범한 일상에 나타난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는 모두가 한 번쯤 꿈꾸는 로맨틱한 상상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러한 서사는 사랑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뻗어 나간다. 틀에 박힌 세상을 사는 모두는 특별히 다른 하나가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스테판에게 그것은 스테파니이자, ‘꿈’이었다. 상상 속에서만 완전해지고 현실에서 무참히 무너지는 그녀와의 관계는 특별히 다른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 꿈과 현실의 괴리 사이로 끝없이 낙하하는 인간의 무기력과 우울을 표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영화를 멜로라기보다 몽상가의 우울을 적나라하게 그린 멜랑콜리의 서사로 분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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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스테판은 인간이 애써 감추는 어린아이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 모습을 목격하기에 더욱 스테판의 꿈이 아프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금, 더 나아가 꿈을 꾸는 사람도 폄하되는 형세이다. 우리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가슴 한편에는 여전히 불가능한 꿈을 자유롭게 펼치고 싶은 자그마한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간직하는 스테판의 꿈은 현실과 공존하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답기에, 더욱 슬프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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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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