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캔퍼스를 찢고 나온 고야의 환상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글 입력 2018.04.0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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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몽둥이를 든 두 남자의 싸움
(Fight with Cudgels, 1819~1823)


[Preview]
캔퍼스를 찢고 나온 고야의 환상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필자는 고야의 그림을 실제 작품을 보기 전, 후로 구분한다. 그 경험이 작가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를 바꿔 놓은 것은 아니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고야를 음울한 환상을 그린 작가로 기억한다. 그 간극을 대강 설명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옛날에 필자는 고야라는 작가를 '그런 작가도 있었지.' 로 평가했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난 후에는 '그런 작가가 있었어!'로 평가하게 되었다. 그만큼 고야의 작품은 실제로 주는 아우라가 대단했다.

 그림에 그려진 것은 환상이라기보다 실재에 가까웠다. 고야의 그림을 보면서 광기와 불안도 종이를 찢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건 감상이라기보다 체험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좌우지간 흰 종이가 아닌 벽을 채운 그림은 당시 필자의 머릿 구석 구석에 빼곡히 새겨지기에 충분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뭉둥이를 든 두 남자의 싸움>다. 작은 스크린을 통해서만 독자에게 그림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필자는 칼이 아닌 몽둥이를 서로 휘두르며 내리찍는 모습에서는 공포까지 느꼈다.

 필자는 미술관을 나오고 나서도 꽤 자주 고야의 그림이 떠올리곤 했다. 사실, 광기라는 것은 뭐라 규정짓기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선악도 그렇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도 그렇다. 그런 모순이 잔뜩 녹아든 고야의 그림은 가볍지 않은 주제로 남아 내 뉴런 주위를 빙빙 돌곤 했다. 하지만 정작 그 그림을 그린 작가에 대해서 고민하지는 않은 것 같다. 변명하자면, 당시에도 필자는 작품은 작가가 제련한 영혼의 조각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은 그 주제가 너무 무거웠던 나머지 작가의 얼굴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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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고야를 다룬 책이 나왔다. 오늘 기대평을 작성할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가 바로 그 책이다. 불가리아 태생의 프랑스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문학 평론가인 츠베탕 토도로프가 쓰고, 류재화가 옮겼다. 토도로프는 휴머니즘에 뿌리를 두고 식민주의와 나치의 홀로코스트 문제를 연구하며 서구의 제국주의적 역사 인식을 비판한 국제적 지성이기도 하다. 고야가 인간의 이성 이면에 도사린 폭력성과 광기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깊게 성찰한 사상가였음을 생각할 때, 토도로프가 고야를 읽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책은 고야의 삶의 궤적과 그가 이뤄낸 예술적 혁신을 살피고, 계몽주의를 중심으로 인간 정신의 적나라한 모순을 파헤치려는데 목표를 둔다.

 고야가 살았던 시절, 프랑스 혁명 직후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간 계몽주의는 스페인의 지배층과 엘리트들 사이에서 큰 공명을 일으켰다. 이 “깨인 자(계몽된 자)”들과 전통주의자들 사이의 대립은 점점 더 심화되었다. 이 무렵 고야는 큰 병을 앓고 난 후 청각을 상실했으며, 알바 공작부인과의 연애에서 실연을 맛보았다. 그 결과 그는 커다란 예술적 변화를 겪게 되는데, 객관적 세계 속에 주관적 시선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자신만의 상상을 탐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만들어진 세계는 마녀와 주술사, 유령, 악마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야는 위험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온다는 것을, 가장 큰 수수께끼는 우리 각자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악마들을 불러내고자 하였다.

 인간에게는 모두 심연이 있다. 손을 타고 흐르는 끈덕끈덕한 불안과 공포는 늘 우리를 압도한다. 그런 환상을 고야는 적극적으로 그려내고, 사상가의 역할로 승화해냈다. 아직도 우리 손에는, 아니 손이 아니더라도 우리 위장 가장 깊은 속에서 심연이 흐른다. 이참에 고야의 그림을 다시 감상해 보는게 어떨까.


지은이∥ 츠베탕 토도로프
옮긴이∥ 류재화
펴낸곳∥ 아모르문디
발행일∥ 2017년 8월 30일
판  형∥ 신국판 변형
면  수∥ 328면
정  가∥ 16,000원
ISBN ∥ 978-89-92448-63-5 03600
분  야∥ 예술, 예술가, 예술 이론
담  당∥ 김삼수(010-4230-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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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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