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벚꽃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4.0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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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초까지도 눈이 내리고, 영하권 추위가 찾아왔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날이 풀리고 이젠 봄꽃, 특히 ‘벚꽃’이 만개했다. 평년보다 개화시기가 이르고, 갑작스런 이상 고온과 조금은 변덕스러운 날씨 변화(그리고 이로 인한 낙화), 미세먼지 등의 악조건으로 인해 벚꽃 놀이의 인기가 최고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벚꽃 연금’이라 불리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어느새 차트 20위권까지 올라오고 진해 군항제를 필두로 전국의 벚꽃 축제들이 성황인 것을 보면 역시 봄은 봄인가보다.

 벚꽃은 인기가 참 많은 꽃이다. 활짝 만개한 벚꽃 길 밑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맞으며 걷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벚꽃은 단순한 인기를 넘어서, 봄을 대표하는 꽃이자 풍습(벚꽃놀이)이자 상품(봄이면 출시되는 수많은 벚꽃 에디션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벚꽃은 어떻게 이런 위치와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까?



한국의 벚꽃

 벚꽃은 벚나무의 꽃이다. 벚나무는 ‘버찌’가 열리는 나무이고, 버찌는 영어로 ‘Cherry’다. 그래서 벚꽃을 영어로 ‘Cherry Blossom’이라고 하는 것이다. 벚꽃이 피는 벚나무의 원산지는 다양하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 북반구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분포해 있다. 그 중에서 한국에 많이 심겨있는 것은 ‘왕벚나무’이다. 왕벚나무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의 국화(사쿠라)로 알려진 벚꽃의 원산지가 사실은 제주도라는 설이 있었으나, 확실하진 않다. 군항제로 유명한 진해의 벚나무들은 벚나무의 원산지가 사실 제주도라는 설이 돌자 이를 보존하기 위해 일본에서 벚나무를 수입해서 심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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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의 군항제


 벚꽃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수입된 것은 일제강점기다. 벚꽃놀이의 풍습이 생긴 것도 이 때다.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동·식물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벚나무를 잔뜩 심었다. 벚꽃 자체보다도, 조선 왕조의 궁궐을 ‘벚꽃 놀이 하는 장소’ 정도로 격하하는 데 큰 의미를 둔 것이다. 실제로 창경궁 복원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창경궁(당시의 창경원)은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봄나들이 장소였다고 하니 일제의 의도대로 흘러간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조선으로 넘어온 일본인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벚나무를 많이 심었고, 독립 이후에도 가로수 등으로 벚나무를 상당히 많이 심었다.



벚꽃의 사회적 의미

 벚꽃은 가장 인기 있는 꽃 중 하나다. 생명력이 길지 않고, 꽃송이가 작고, 향도 강하지 않은 꽃이 이토록 인기가 많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까닭은 이것이 피는 시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벚꽃은 화분에서 키우는 꽃이 아닌, 가로수에 피는 꽃이다. 꽃샘추위가 가시고,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 전의 짧은 봄의 ‘전성기’에 피는 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벚꽃을 보기 위해 기꺼이 집 밖을 나선다. 비나 미세먼지 등 날씨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 발생하면 벚꽃놀이의 수익이 급격히 감소하는 이유도 이와 큰 틀을 같이 한다.

 사람들은 벚꽃이 좋아서 외출하는 것도 있지만, 외출하기 좋은 날씨에 벚꽃이 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벚꽃이 피는 4월 초는 직장인들에겐 비교적 급한 연초의 업무들이 끝나고 숨통의 틔는 시점이고, 대학생들은 본격적인 시험기간이 시작되기 직전의 폭풍전야와 같은 시점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바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짬’을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때라는 점도 앙증맞은 분홍 꽃의 인기에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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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피 회사의 벚꽃 에디션 상품


 최근 들어선 벚꽃이 ‘상품’으로도 소비되고 있다. 맥주, 커피, 옷, 핸드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Cherry Blossom” 혹은 “Sakura” 에디션이 출시되고 있으며, 벚꽃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인기를 끌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벚꽃 흩날리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풍경의 가장 근본적 이유는 벚꽃이 공짜이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벚꽃은 가로수에 피는 꽃이다. 그러다보니 기본적으로 벚꽃을 즐기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교통비 등등 비용을 제외하고, 오로지 벚꽃을 보고, 사진을 찍으며 봄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은 공짜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벚꽃놀이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경험이라는 점이다. 벚꽃과 벚꽃놀이는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만 즐길 수 있는 고상한 취미가 아닌, 대부분 시민들이 공유하는 추억이자 분위기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이른바 ‘벚꽃 굿즈’들은 이러한 점을 공략했다. 회사들은 벚꽃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 벚꽃이 피는 시점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주 타겟으로 정해 상품을 출시한다. 만약 벚꽃이 아닌, 이름도 생소하고 상류층 가정에서나 즐기는 비싼 꽃을 모티프로 맥주나 텀블러를 출시한다면 이것이 불티나게 팔릴 수 있을까? 또한, 벚꽃은 별도의 콜라보 비용 등도 들지 않는 편이다. 최근 시장에선 각종 브랜드나 디자이너 간의 콜라보레이션, 한정 에디션 등이 주요 트렌드이다. 유명 브랜드나 가수와 콜라보를 위해선 적게 봐도 억대의 금액이 투입되는데, 벚꽃은 특허도 브랜드도 없으니 그저 핑크색 상품을 만들어 놓고 ‘벚꽃 한정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면 된다. 게다가 사람들의 벚꽃에 대한 추억은 공짜 마케팅이 되기도 하니, 그야말로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오늘부터 내리는 비가 지나면 올해의 벚꽃도 어느 정도 끝을 보일 것이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틈을 내 봄의 분위기를 내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벚곷은 우리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에게 각자의 의미를 갖는, 공통의 추억으로 남을 특별한 꽃이다. 혹여나 벚꽃을 보러간다면, 이런 의미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올해의 벚꽃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지.


[류형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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