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울의 끝 그리고 해방, 멜랑 꼴리아 [영화]

글 입력 2018.04.0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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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를 입고 반쯤 강에 빠져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는 저스틴(극 중 이름)의 모습은 햄릿의 비극적인 여주인공 오필리아를 보는 듯하다. 포스터만으로도 이미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케 하는 이 영화는 우울과 지구의 멸망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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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작품 《오필리아》
 

영화의 시작은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된다. 공허한 표정의 저스틴 뒤로 떨어지는 새의 시체들, 아들을 안고 뛰어가는 클레어, 점점 쓰러지는 말, 온갖 줄기들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저스틴, 그리고 행성 멜랑꼴리아와 부딪혀 소멸하는 지구의 모습까지. 느리고, 그리고 강렬하게 전해지는 이미지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과 함께 전해지며 알 수 없는 무서운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이곡을 들으면
멜랑꼴리아의 전체적인 우울한 분위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총 2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번째 장은 저스틴의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 장은 저스틴의 언니 클레어의 이야기이다.

1장에서는 저스틴의 결혼식과 그 결혼식이 저스틴의 우울증으로 인해 파혼으로 내딛게 되는 이야기이다. 언니와 형부가 만들어준 성대한 결혼식장으로 가는길, 신부 저스틴과 신랑 마이클은 행복한 표정이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묘한 분위기가 문득 문득 얼굴에 드러나게 된다. 극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던 저스틴은 결혼식에서 행복한 척 하지만 곧 한계가 온다. 어머니의 신경질적인 말과 깐깐한 언니의 압박, 형부의 짜증, 결혼식장에서 마저 일을 시키려드는 회사의 상사, 그리고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시선까지.

버티기 힘들어 보이던 그녀는 어느 곳 하나 쉴 곳이 없어 보인다. 결국 그녀의 결혼은 파혼으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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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는 언니 클레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파혼으로 끝나게 된 결혼식 이후 저스틴의 우울증은 극도로 치닫게 된다. 걷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씻는 것도 어려울 정도의 상태가 되어버린 저스틴을 클레어는 정성스럽게 보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멜랑꼴리아’ 라는 거대한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클레어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게 되고,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키던 클레어의 남편은 지구 종말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시내로 피하려 했던 클레어는 지구 종말 앞에서 모든 일이 부질없음을 알게 되고 절망한다.
     
항상 언니의 보살핌을 받던 저스틴은 종말의 순간 의연함을 보이고 오히려 언니의 조카를 안심시킨다. 극도의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었던 그녀에게는 지구 종말이 해방처럼 느껴져서 였을까? 저스틴, 클레어, 그리고 레오(클레어의 아들) 세 사람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의연하게 종말의 순간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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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어둡고 무거워 보는 사람조차도 알 수 없는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게 하지만, 그 끝이 너무 찬란하고 아름다워서 더 묘한 매력을 품고있는 영화임을 느꼈다. 모든 것이 나를 억누르고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사람들 속에서 웃고, 행복한 척 하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저스틴을 보며 공감하지 않았을까. 타인은 나의 우울을 모르고 나의 감정을 모르기에, 그 순간 순간을 행복한 척 연기해야하는 슬픔, 고통이 너무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는 영화라서 더 심취하게 되었다.
 
감독의 의도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사실 행성‘ 멜랑꼴리아’는 저스틴 그 자체가 아닐까. 한 인간의 내면의 파괴, 멸망은 곧 그 인간이 사는 세계의 멸망, 종말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살아있음에도 우울증을 깊게 겪는 이들에겐 그 삶이 벼랑 끝에 내몰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삶이 끔찍했던 저스틴에게 오히려 지구 종말은 그녀에게 해방감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종말이 오는 장면 중 긴장되어 보이지만 그 어느 때 보다도 차분했던 저스틴의 표정이 잊혀 지지 않는다.
 
   
[박윤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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