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아노 선율과 함께 숨 쉬는 한 남자를 보았다.

글 입력 2018.04.1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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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리프시츠, 그의 시선은 피아노 건반과 천장 사이의 애매한 허공을 떠돌았다. 그는 곡을 연주하는 내내 고개를 숙였다, 하늘로 들었다, 관객을 잠깐 외면하는 듯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동시에 쉴 새 없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의 입술은 연주를 위해 필요한 어떤 언어, 그런데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런 언어로 말하기 위해 움트는 것 같았다. 결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던 그의 시선은 한 음, 한 음 분명하고도 매끄럽게 이어지는 음악을 뒤에서 치밀하게 쫓아가는 것 같기도, 앞에서 지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모든 움직임은 마치 그가 만들어내는 피아노 선율과 함께 내쉬는 숨처럼 느껴졌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웅장한 교향곡이나 테마가 있는 쇼팽 피아노곡, 혹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곡에 익숙한 나에게는 바흐의 모음곡이 낯설었다. 그래서 사전에 곡 구성을 숙지해보려는 마음에 짤막한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들었는데 조금은 단조롭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공연 당일 그의 연주가 시작되자, 내가 (잘못)알던 바흐 곡의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특히 인터미션 후에 연주된 두 곡은 이전에 연주된 곡보다도 더 뜨거운 감정적 흐름이 느껴져 놀랐다. 마냥 분출하는 열정이 아닌, 정교하게 통제된 리듬과 강약에서 느껴지는 열기였다. 바흐가 살았던 시대와 몇 백 년 떨어진 지금에서 그 때의 곡이 생생히 울린다는 사실, 원래 바흐의 곡이 어떤 색깔이건 이토록 ‘먼’ 곳에서 바흐의 존재가 재생하는 느낌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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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를 불러내는 콘스탄틴 리프시츠의 연주를 보는 내내 거장, 예술가, 뛰어난 연주자, 음악가 등 그를 형용하고 싶은 단어들이 불완전한 형태로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무대 위에 커다란 피아노와 마주하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6살에 그는 그네신 음악대학 교수를 사사하고 피아노를 배웠다. 걸스카웃 단원 활동을 했던 게 기억에 남지만 아무튼 놀기 바빴던, 나는 그저 평범한 초등학생이었을 13살에 그는 리사이틀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후 끊임없이 수많은 공연을 하고, 음반을 내고 활동했다.

예술가는 그런 존재이지 않은가, 내가 무엇을 꿈꿀 수도 없던 시절에 그들은 ‘이미’ 알고, 하고, 누리고, 뛰어 넘는다. 그렇게 한 길을 꾸준히 걸어오는 동안 그에게 어떤 갈등과 희열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내 앞에 울리는 음악으로 짐작하고 감동할 뿐이었다.

무대 위 커다란 피아노와 함께 오직 그만이 누릴 수 있는 세계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어떤 길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사이에 둘 때 느껴지는 무기력보다, 진정한 동경심이 일었다. 각 곡마다 연주하기 전, 인사를 건넨 뒤 의자에 앉자마자 건반을 누르기 시작하여 피아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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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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