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등받이 없는 방석 위의 이야기 [기타]

2016년의 길거리 버스킹, 말하는 대로
글 입력 2018.04.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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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종영된 예능, 무한도전. 무한도전에는 매년 인기였던 특집이 있었다. 바로 무도 가요제. 무한도전만 나오면 뜬다는 공식을 제대로 보여줬던 특집이었다. 인디 뮤지션에서부터 한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뮤지션까지. 멤버들과 팀을 이루어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내면, 늘 그 음악들은 차트를 장악하곤 했다. 그중 2011년, 이적과 유재석(처진 달팽이)가 가요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불렀던 말하는 대로. 유재석의 20대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을 담담히 얘기하는 가사들.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국민 MC가 된 그도, 20대 시절 방황하고 힘들었다고 청춘들을 위로해줬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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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이번 Opinion 글에서 소개하고 싶은 프로그램 이름 또한 말하는 대로이다. 2016년 여름 JTBC에서 시작해서 2017년 초에 종영했다. 이 프로그램이 전하고자 하는 것도 일종의 ‘위로’였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홍대, 강남, 신사 등 서울 곳곳에서 마이크 하나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방석을 깔고 길에 앉는다. 신선한 포맷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 버스킹‘이라고 하면 기타치고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렸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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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프로그램을 알게 해준 첫 번째 게스트, 생선(김동영) 작가. 여러 커뮤니티에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돌아다녔고, 그걸 본 순간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의상은 정장과 같은 형식적인 옷과 거리가 먼, 캐주얼한 바지에 형광색의 반팔 티셔츠였다. 프로그램의 완전 초장기였기 때문에, 그의 앞에는 듣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주로 강연한다고 하면, 정장은 입지 않나? 큰 Hall을 빌려서 이야기하지 않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공황장애에 대한 이야기, 정신 병동에 들어간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냈다. 의사는 그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을 사랑하라니, 얼마나 뻔하고 형식적인 이야기인가. 자기 계발서에도 늘 등장하는 이야기. 그런데 이 작가는 그 형식적인 이야기를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라는 것이다. 무슨 작가 좋아해요?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대답하기. 내 취향, 좋아하는 걸 남들 앞에서 솔직해 질때 조금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2년간의 은둔생활을 거친 그는 그렇게 점차 세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화려한 베스트셀러 작가 밑에 숨겨진 어두운 그의 이야기로 우리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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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대로, 이 방송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한 이야기가 있다. 고졸 출신의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조금은 떨린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을 맡은 그는 어쩌면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을 방송을 통해 알렸다. 약촌 오거리에서 택시 기사를 흉기로 찌르고 도망간 진범 대신,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가 맡은 사건은 영화 <재심>으로 제작되기도 했고, 2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억울하게 징역 10년을 복역하게 된 최 모 씨는 2018년 3월 27일, 얼마 전 그의 무죄가 밝혀졌고 진범은 15년의 징역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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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멋진 모습 뒤에 가려진 연예인들의 우울증과 고민, 그리고 방황. 대기업을 나와 서른 살이 넘어 무명배우부터 시작한 이야기, 작가가 자신의 슬럼프를 극복했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내가 겪고 있는 힘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들의 이야기는 책을 한 편과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이유는 간접경험, 즉 에세이든 소설이든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가보기 위함이다. 사람이 살면서 깨닫는 모든 것들은 항상 대가가 따른다.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은 자신이 직접 겪어보거나 다쳐야 얻을 수 있다. 슬럼프가 오는 이유는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은, 분명 그가 슬럼프를 겪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은 괴로운 시간은 값을 매길 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값진 경험들을 간접경험할 수 있었고, 그들의 조언과 충고를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 둘 수 있었다.

변호사, 의사, 국회의원, 연예인, 작가, 심리상담가 등 각자의 삶을 살아온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그들의 힘들었던 시절이다. 겉으로 보기엔, 다들 행복하고 걱정 없이 보이는데, 방황과 배신 우울과 증오.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담히 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감사했다. 왜냐고? 그들의 인생이 당시 내가 겪었던 힘든 하루하루의 위로였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즌 2를 기약하며 종영했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버스 안에서 우연히 탄 옆자리의 사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들어 보이는 사람. 말을 걸 순 없다.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던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그램은 지금 다시 꺼내보아도 좋은 프로그램이다. 편안한 의자가 아닌 등받이 없는 방석에 앉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론 눈물도 흘리고, 웃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개방적인 공간이자, 개인적이었던 공간. 대한민국 어딘가,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빨리 다시 들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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