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한 입] 누구나 요릴 할 수 있어! '라따뚜이'

그 누구가 비록 생쥐일지라도!
글 입력 2018.04.0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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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필름 한 입
<라따뚜이>


‘필름 한 입’은 시작할 때부터 영화가 전부 정해져있었다. 그러나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내가 보고 싶은 영화, 지금 적어야 하는 이야기 등 앞 다투어 글을 쓰다 보니 계획이 흐트러지고야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라는 마음에 이번에는 독자에게 추천을 받아보았다. 다음 편으로 어떤 영화를 썼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독자 겸 지인들은 백이면 백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를 답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답에 대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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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뚜이>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프닝은 제목에 대한 오해다. 포스터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쥐, 난생 처음 들어보는 ‘라따뚜이’라는 단어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주인공 쥐 이름이 라따뚜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라따뚜이’가 음식 이름인 것을 알았고, 부끄러워서 혹은 딱히 말할 일이 없어서 나의 오해를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라따뚜이>를 추천한 친구 말이 ‘라따뚜이’가 쥐 이름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 말 한 마디를 꾹 참고 바보냐고 하하호호 놀렸다. 오늘의 필름 한 입은 그 놀림에 대한 사과이기도 하다.

영화 <라따뚜이>의 주인공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쥐 ‘레미’다. 하지만 레미는 평범한 생쥐가 아니다. 후각은 물론 미각에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쥐다. 쓰레기를 뒤지며 사는 타 생쥐들과는 다르다. 레미는 음식을 사랑한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덤이다. 오죽하면 두 발로 걷는다. 요리의 위생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으로 인해 하수구를 떠돌게 된 레미는 TV에서만 봐오던 꿈의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이 이야기는 그런 레스토랑에서 청소부나 하던 링귀니와 레스토랑 주방의 적, 생쥐인 레미의 협동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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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뚜이>에서의 요리는 특별하지 않다. 아니, 특별하지 않아야 한다. 무려 생쥐인 레미도 할 수 있을 만큼 그 기회가 동등하다. 화려한 음식, 엄청난 재료, 특별한 재능, 고귀한 출신? 그런 것을 다 떠나 이 영화는 단 한 가지만을 외친다.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 생쥐라도, 재능 없는 초짜 견습생이라도. 출신과 과거는 말 그대로 다 지난 이야기라고. 그런 것 하나 따지지 않고,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고. 이 영화는 반복해서 말 하고 있다.

“아무도 당신의 출신으로
당신의 한계를 규정하지 못하게 하세요.
당신의 영혼만이 당신의 한계입니다.”

“무언갈 간절히 원한다면 이루어진단다.
하지만 과거에만 얽매이면
아무것도 볼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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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 딱 두 가지 있다고 강조한다. 위에서 나열했던 것들은 당연히 아니다. 체력이나 시간? 물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라따뚜이>는 요리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내세운다. 레미는 주방의 적인 생쥐이기 때문에, 링귀니를 도우며 몇 번이나 죽을 위기에 처한다. 레미의 아빠는 쥐약을 파는 곳에 데려가 쥐 시체들을 보여주며, 인간의 주방은 너무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레미는 포기하지 않는다. ‘요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과 용기는 레스토랑의 호평을 불러온다.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위대한 요리는 용기의 산물이다”.

한편, <라따뚜이> 속 음식은 우리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썩은 음식들을 권하는 가족들에게 레미는 “뭘 먹느냐가 날 말해주는 거예요. 난 좋은 걸 먹고 싶어요.”라며 식사를 거부한다. 그러자 레미의 아버지는 “음식은 몸을 위한 연료야.”라며, 음식은 단순히 에너지원이라 설명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음식은 몸의 원동력이 된다. 사람의 몸은 마치 자동차 같아서, 음식이라는 기름을 넣어주어야 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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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몸을 위한 연료’라는 말이 음식의 전부라면, 우리는 왜 매일 요리하고 먹는 것일까? 왜 그 안에서 풍미를 찾고, 그 안에서 추억을 찾고, 이따금 먹지 못해 그리워하는 것일까. 어느 시골집 천장에 살던 레미는 부엌의 딸기와 치즈를 먹으며 행복을 느낀다. 음식을 먹는 것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다. 구스토 레스토랑에게 혹평을 내렸던 비평가는, 레미가 만든 라따뚜이를 먹고 어릴적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떠올린다. 그 음식 안에서 어릴 적의 추억, 그리움을 발견해낸 것이다. 단편적인 장면만 보아도, 음식을 ‘연료’라고만 정의내릴 순 없다. 적어도 즐거움과 추억의 응집체, 이런 말 정도는 붙여야 할 것 같다. 사실 더 거대하지만 설명하기가 영 어렵다. 재밌고 유쾌하기만 해보이는 애니메이션인 것에 비해 <라따뚜이>가 남겨둔 질문은 제법 쓸 답이 많다. 어렵기만 한 질문이지만, 앞으로의 필름 한 입을 통해 더 풀어나가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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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소설가는 <파인 다이닝> 기획의 말에서 요리라는 행위에 대해 “‘계속 살아가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것은 죽음에 맞서는 느낌이며, 살아가는 일은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한편 나의 친한 친구는 음식에 대해 마음이 공허할 때 대신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느낌과 의미를 마주할 때, 나는 요리와 음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강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요리는 어렵고, 귀찮고, 사서하는 고생이라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소중하고 강한 것에 용기와 열정을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남겨본다. 누구나 요릴 할 수 있고, 위대한 요리는 용기의 산물이니. 힘껏 요리하고 음식을 음미하는 매일을 가져보자고. 레미처럼, 혹은 구스토처럼, 필름 한 입에 사각사각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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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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