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빨간색으로 담아내는 것_연극 '빨간시'

연극 '빨간시'프리뷰
글 입력 2018.04.1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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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 법조계에서 시작된 성폭력 폭로가 사회 모든 분야로 번져나갔기 때문이다. 입을 연 사람들 앞에서 성역은 없었다. 지난 몇 달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폭로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뒤 맥락 없이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니다. '미투 운동'이라는 명칭은 미국에서 건너왔지만 2016년 하반기에 트위터를 중심으로 '**계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가 활발하게 돌았고 2009년에는 故 장자연 씨의 유서가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 역시 국가적 단위로 여성에게 가해진 성폭력을 폭로한 사례이다. 그 외에도 세상이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 이름없는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만 같던 그 모든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그 폭로의 역사에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무대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과 그로 인한 상처를 이야기한 연극도 있다. 극단 고래의 <빨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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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빨간시>는 2011년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된 이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무대를 거치며 극단 고래의 대표작이 되었다. <빨간시>는 오는 4월 20일부터 5월 13일까지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다시 한 번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시놉시스

유력 일간지 기자인 동주는 성상납으로 자살한 여배우 사건 이후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괴로워한다. 사건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었다는 것으로 고민하던 동주는, 어느 날 저승사자의 실수로 할머니 대신 저승에 가게 된다.

저승에 간 동주는 죽은 여배우의 삶, 그리고 일제시대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것들을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되는데...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듯 <빨간시>는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두 가지 사건이 중심이 된다. 일본군이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이 땅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착취한 사건과 한 여배우가 성 상납 요구 끝에 자살한 사건이 그것이다. 두 사건은 발생한 시대도 상황도 다르다. 하지만 불평등한 젠더권력 때문에 여성이 피해자가 된 사건이라는 점과 피해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로 인해 아직도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극은 폭력과 상처의 근본적인 원인을 바라보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제의의 장이 된다. 지금껏 침묵 속에서 외면하던 고통이 연극을 통해 드러날 때 우리는 침묵에 길들여진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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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시>의 주된 내용은 물론 폭력을 묵인한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빨간시>는 폭력과 상처 그 너머를 바라보고자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을 맡은 강애심 배우다. 지난 7년간 강애심 배우는 연극 <빨간시>와 함께했다. 이번 재연에서도 같은 역을 맡은 그는 피해자의 아픈 삶을 극 속에서 온전히 살아내며 후속 세대에 그 미움과 상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인물을 진정성 있게 그려낸다. 특히 그가 일본군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여성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장면은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연극의 형식 또한 독특하다. <빨간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한다. 프롤로그와 각 장면의 막 사이에 들어가는 시와 영상, 그리고 정적 등을 통해 공연 전체가 하나의 시처럼 무대 위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또한 시어처럼 반복되는 단어와 운율을 가진 대사, 그리고 그 사이 사이의 침묵이 청각적으로도 시적인 리듬을 느끼게 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빨간색의 강렬한 이미지는 극에서도 여러가지 의미로 활용된다. 마치 시적 은유처럼 이미지가 반복되고 강조되는 것이다. 극중 '빨간 꽃'은 할머니가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자 동시에 피로 물든 상처를 의미하고 여배우 수연이 꿈꾸던 화려한 미래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작품에서 빨간색은 두려움과 죽음, 사랑과 생명, 그리고 고통과 아름다움 등 많은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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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의성 강한 작품이다. 시의성 강한 작품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현실을 섬세하게 읽어내 연극에 신중히 반영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작품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오히려 현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제 일어난 일을 다룰 때는 픽션을 다룰 때보다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빨간시>는 어느 쪽일지, 우려가 되기도 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극장을 지켜온 작품의 힘과 포스터 속 환히 웃고 있는 빨간 머리의 할머니를 보며 걱정을 덜어 본다.





<공연 정보>


공연일시 2018.4.20-5.13

평일 오후8시/토,일 오후4시/월요일 공연 없음

(단, 4.21 토요일 공연만 오후 6시)

장소 나루아트센터

가격 전석 3만원

이용연령 12세 이상 관람 가능

문의 광진문화재단 02-2049-4730
극단고래 010-6686-1392 / gorae2007@naver.com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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