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밍밍해서 재밌는, ‘평양냉면’과 3대 계열 [기타]

글 입력 2018.04.11 14: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최근 미식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음식 중 하나는 ‘평양냉면’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식 평가 중 하나인 ‘미슐랭(Michelin)’에서 선정한 “서울 2018 빕 구르망(Bib Gourmand: 평균 3만 5천원 이하로 즐길 수 있는 식당)” 리스트의 48개 식당 중 무려 6곳이 평양냉면 전문점이었다. 이는 한식, 칼국수, 만두 등을 제치고, 해당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음식의 종류 중 가장 높은 비율에 해당된다. 빕 구르망 이외에, 미슐랭 가이드북에 오른 평양냉면 집도 세 곳이 더 있으며, 이외에도 자갓 서베이(Zagat Survery), 블루리본 서베이(Blue Ribbon Survey) 등 맛집 가이드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이게 무슨 맛이지?’ 할 정도로 밍밍하지만, 그 속에 풍미와 이야기가 가득한 음식, 평양냉면과 이를 둘러싼 3대 문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평양냉면의 역사

 ‘냉면’의 역사는 무려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평안도 지방에서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동치미 국수에 말아먹은 것이 냉면의 시작이었다. 메밀은 글루텐이 부족해 찰기가 없고, 따라서 반죽을 만들기 어려운 작물이었다. 그래서 밀이나 전분가루를 이용해 만든 면보다 역사에 등장 시기가 늦은 편이었다. 냉면이 ‘냉면(冷麵)’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 시대 중기의 일이다. 17세기 사료에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산 정약용, 이규경 등의 저서는 물론이고 동국세사기 등의 사료에도 평양지역의 냉면을 명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냉장 시설이라 할 만한 것이 전무했기 때문에 냉면은 겨울철 음식이었다. 또, 평양지역엔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있는데, 기방이 유명했던 평양지역에서 술을 마시고, 해장을 위해 냉면을 즐겨먹었다는 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일제 강점기라는 민족적 수난이 닥쳐오며 평양냉면은 점차 지금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산미 증식 계획이란 일제의 정책으로 인해 미곡 생산 및 수출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나 오히려 수탈로 인해 국내 미곡 소비량은 감소했고, 메밀 등 구황작물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다. 게다가 소바 등 메밀면으로 만든 음식이 발달했던 일본의 식문화가 국내로 들어오며 순메밀면 제조 기술이 발달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당시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인 아지노모토가 개발되며, 육수에 고기를 덜 넣고도 육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들이 겹치며 현재의 평양냉면 형태가 갖추어졌고, 해방 이후 분단 과정에서 이북 출신 실향민들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며 평양냉면 노포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재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을 파는 가게들은 대부분 소고기나 돼지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사용해 국물을 만드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새콤달콤한 ‘서울식 냉면’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입맛엔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개업한 대부분 평양냉면집의 음식은 북한 현지와 비교해선 조금 더 자극적이게 개량된 형태라고 전해진다.

 최근 평양냉면이 유행하는 것은 SNS의 발달, 그리고 힙스터 문화의 형성과 관련이 깊다. 인디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어느 순간인가부터 평양냉면을 먹고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유행이 된 것.  여기다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힙스터'문화가 퍼지며 평양냉면은 하루아침에 가장 힙한 음식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형성된 새로운 식습관 트렌드 중 가장 눈여겨 볼 만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독특한 양상을 보이며 유명세를 얻었다. 일부 노포들을 제외하고 점차 사라져가던 평양냉면은 이제 수많은 분점과 신규 창업 점포들이 생겨나며 남녀노소가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 유행이 언제까지 갈 진 모르겠으나, 평양냉면은 분명히 재밌는 음식이다.



평양냉면의 3대 문파

 마치 무협만화처럼, 평양냉면에도 세 가지 문파(계열)가 있다. 이북 출신 실향민들이 평양냉면 집을 개업하며 각자의 개성을 살렸는데, 평양냉면 애호가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곳을 ‘원조’라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마치 ‘문파’가 형성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세 곳 모두 굉장히 맛있는 평양냉면을 각자의 소신에 맞게 만들어 내놓는 곳이고, 이 외에도 맛있는 평양냉면집이 많기 때문에 그냥 흥미로운 요소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세 계열의 냉면집을 모두 찾아가보고, 자신은 어느 문파 소속인지 직접 맛을 보며 결정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1. 국내 최초의 평양냉면집, 우래옥 계열

IMG_9573.JPG
▲우래옥의 평양냉면
 

 1946년 ‘서북관’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해 국내 평양냉면집 중 가장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한다. 심지어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평양냉면집인 옥류관보다도 먼저 개업한 그야말로 원조집이다. 양지사태육수를 사용하는 ‘우래옥 계열’의 수장 격인데, 비슷한 냉면으로는 방이동의 ‘봉피양’이 있다고 한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불고기와 갈비를 파는 상당히 고급스런(1인분에 3~4만 원정도 하는) 고깃집이다. 그래서인지 냉면도 다른 가게들과 달리 금속재질이 아닌 자기 그릇에 담겨 나오며 가격도 1000원에서 2000원정도 비싸다. 특징이라면 소고기 육수가 굉장히 진해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도 비교적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다. 오히려 다른 계열의 평양냉면, 특히 장충동 계열에 익숙해진 사람에겐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정도의 진한 육향이 나는 편이다.


2. 파송송 고춧가루 탁! 의정부 계열

IMG_9778.JPG
▲의정부 계열 '을지면옥'의 평양냉면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은 1969년 연천에서 개업 후 1987년 의정부로 이전한 의정부 ‘평양면옥’으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의 주요 문파다. 1대 사장의 세 딸이 서울 시내로 들어와 을지로의 ‘을지면옥’, 충무로 필동에 위치한 ‘필동면옥’, 잠원동의 ‘본가평양면옥(現 의정부평양면옥)을 개업했고 총 4개 점포가 의정부 계열로 통칭되고 있다. 의정부 계열의 가장 큰 시각적 특징은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탁‘! 하고 뿌려놨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육수가 굉장히 맑은 편이며, 다른 계열의 평양냉면에 비해 면발에 탄력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3. 족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충동 계열

IMG_9555.JPG
▲장충동 평양면옥의 평양냉면
 

 장충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장충동 족발이다. 하지만 평양냉면 계에도 장충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파가 있다. 장충동 계열의 수장은 의정부 계열의 수장과 같은 상호 명을 사용하는 장충동 ‘평양면옥.’ 평양냉면 계열 중 가장 깨끗한(다시 말해 밍밍한) 맛을 내고 있으며, 의정부가 파와 고춧가루 고명으로 대표된다면 장충동 계열은 오이를 썰어 넣은 고명으로 유명하다. 원래 평양에서 냉면 장사를 하던 주인이 월남해 1985년 광희동에서 냉면집을 개업했고, 4년 만에 현 위치인 장충동으로 가게를 이전했다. 현재 3대째 장사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장충동 계열’의 다른 평양냉면 집들은 모두 가족들이 이어받아 ‘평양면옥’이라는 같은 상호를 걸고 장사를 하고 있다. 논현동, 강남 신세계 백화점, 도곡동, 분당 등 본점을 제외하면 강남에 점포가 위치해있다. 최근에는 의정부계열과 장충동 계열을 모두 거친 주방장이 ‘진미 평양면옥’을 개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장충동 계열에서만 20년을 근무한 분이라 이곳도 장충동 계열로 분류되고 있다.

*

 이 세 문파 외에도 마포의 을밀대, 을지로의 평래옥과 남포면옥, 판교의 능라도, 광명의 정인면옥 등 서울과 수도권에만 100여 곳의 평양냉면집이 있다고 한다. 100개의 평양냉면집이 있으면 100가지의 맛이 있다. 같은 계열의 평양냉면이라고 하더라도 정확히 같은 맛이 나진 않는다. 꼭 유명한 계열의 노포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평양냉면집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다. 너무 자극적인 음식들에 질려버렸다면, 이번 외식 메뉴로 평양냉면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보고 싶다. 만약 입맛에 맞는다면, 다 먹고 나서 완냉샷(냉면을 다 먹은 후 빈 그릇을 찍는 것)을 잊지 말자!


[류형록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