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몸 안에 새겨 영원히 품은 예술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4.1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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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와 그 위에 새겨진 글귀 사이에 공존하는 어떤 것, 그것은 아름다운 상처, 혹은 고통스러운 장식이다." 천운영 작가의 단편소설 '바늘'에서 문신을 표현한 구절이다. '문신', 바늘을 통해 피부에 새겨지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 톡톡 바늘이 지나가는 자리에 핏방울이 맺히며 고통과 함께 새겨지는 예술 작품. 사람들은 이러한 강렬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문신을 한다. 하지만 과거 미디어에 등장하는 갱스터 몸에 새겨진 문신이 주던 충격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문신을 폭력적인 이미지와 연관시켜 음지에 존재하는 문화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나 역시 문신을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남이 하는 건 괜찮지만, 여전히 내가 하기에는 꺼려진다. 나는 4월의 어느 추운 날, 나의 문신에 대한 편견을 부수기 위해 전시장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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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타투 (2017. 11. 25~2018. 6. 24),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에서 특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아시아의 타투'는 문신을 통해 인간이 만든 문화적 행위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 문신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떻게 변했으며, 어디로 흘러왔을까. 전시는 하나하나 이 질문에 답을 해나간다. 전시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가 가진 문신에 대한 선입견은 산산조각 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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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물 속 문신



문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고대 유물 중 사람의 형태를 본뜬 조각상에 특수한 문양을 신체 여러 부위에 넣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고대에도 유물뿐만 아니라 실제 사람에도 지금의 문신과 비슷한 형태의 다양한 무늬를 피부에 새겼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추측을 확실히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바로 미라에 있다. 세계 곳곳의 미라에서 문신이 발견되고 있다. 담석증과 같은 병의 흔적이 남아있는 하복부에 문신이 몰려있는데 학자들은 이 당시에는 치료를 위해 문신을 새긴 것으로 본다.

 태평양, 아시아, 유럽, 중동, 아메리카 등 거의 모든 지역에서 고대부터 다양한 형태의 문신이 행해졌다. 대부분 사회적 지위나 종교를 나타내기 위해 문신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과거 한국에서도 문신이 행해졌을까? 중국 역사서에 현재 한반도 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한(韓) 사람들이 문신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범죄자, 노비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것도 하나의 문신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흔치는 않았으나 일반 민중 사이에서 사랑이나 우정의 증표로 몸에 글씨를 새기는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민중들이 행했던 문신은 지금 우리가 행하는 문신과도 상당 부분 그 의미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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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주술 문신 '싹얀'



문신, 어떻게 흘러왔는가?

 문신은 여러 나라에서 주술적 의미를 담아 이용하기도 했다. 태국의 '싹얀'은 몸에 새기는 부적이다. 싹얀은 우리가 아는 부적이 갖는 효능처럼 불길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데 목적이 있다. 몸에 새기는 부족인 만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영험한 힘을 가진 스님이나 '아짠'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싸갼을 받은 뒤에는 스님이나 아짠에게 그에 합당한 예를 차리고 공물을 바쳐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몸에 새긴다는 점을 제외하면 우리가 부적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싹얀은 단순히 몸에 부적을 새겼다는 것으로 지나지 않고 시술 후 올바른 삶의 태도와 경건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어야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문신의 의미와도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싹얀이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행해졌던 점은 우리가 문신을 통해 자신의 행복한 앞날을 꿈꾸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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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옷 오가이 (제이크 베르조사, 2011년)


 사진 속 여인은 필리핀 깔링가 지역의 현재 유일하게 생존한 전통 문신사이다. 필리핀 산악에 거주하는 여러 소수민족들은 오래전부터 문신을 하는 풍습이 존재했다. 그들은 문신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 표시를 하기도 하였으며 복을 비는 주술적 의미를 담기도 했다. 그리고 승리의 상징이나 통과의례, 신체장식 등 다양한 의미로 문신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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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뚜친 부족 여성 (딜런 골드비, 2016년)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다소 단순한 상징적 의미로 문신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복을 빌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강화시키는 등 긍정적 의미로 문신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문신이 긍정적 의미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미얀마 북부 친족, 중국 원난성 두룽족 여성들에게 문신은 '아름다움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이 지역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문신은 다른 마을, 적으로부터 여성이 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문신을 새겨 흉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문신이 가진 한번 새겨지면 지우기 힘들거나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특징이 하나의 '낙인'과도 같은 역할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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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별로 문신을 한 일본 사람들


 단색 위주의 문신이 주를 이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의 전통 문신은 화려하다. '사물을 새기다'라는 의미로 '호리모노'로 불리는 일본의 문신은 16세기 에도의 유녀들, 야외에서 노동을 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생겨난 하위 문화였다. 그 후 우키요에(에도시대 서민들의 일상생활 풍속을 그린 회화) 화가들이 묘사한 화려한 문신의 캐릭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일본의 도시민에게도 유행이 되었다. 일본 개항 후 들어온 서구인들은 일본인들이 몸에 새긴 문신을 보고 반하여 일본의 전통 문신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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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어디에 도착했는가?

 이제 문신은 단순한 상징, 주술적 의미를 넘어서 더 넓은 의미를 품게 되었다. 패션 브랜드 장 폴 고티에의 광고에 자유로움을 한층 더해주기도 한다. 섬세하게 몸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타투이스트들은 '아티스트'가 되었다. 배우, 가수, 모델, 화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 수많은 유명인사들도 자신의 신념을 담아 몸에 자국을 남긴다. 선과 색채로 지워지지 않는 자신만의 강렬한 생각을 새긴다. 다양한 책으로 문신의 형태가 기록되어 출판되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문신은 소수의 문화, 음지의 문화가 아니다. 문신은 과거부터 흘러왔던 시간을 넘어 더 강렬하고, 화려하고, 확실하게 자신만의 독보적인 예술적 영역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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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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