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빠, 빠, 빨간 웃음을!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4.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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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주차, 트위터가 다음 소프트와 함께 지난 한 주간 (3월 30일 ~ 4월 5일) 트위터상에서 이슈가 된 주요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레드벨벳’을 화제의 키워드로 선정했다. 관련 키워드로는 평양, 공연, 김정은 등이 있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적어도 현재 ‘레드벨벳’은 단지 연예계에만 국한된 키워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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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 대화 분위기가 형성된 이후, 3월 초 파견된 대북 특사단은 회동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제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이끌어냈으니 가히 한반도 정세의 대반전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남북한 교류의 연장선에서 지난 4월 1일, 3일 각각 동평양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봄이 온다’를 주제로 공연이 개최되었다.
 
평양 공연 예술단 중 유일한 아이돌 그룹으로 선정된 레드벨벳은 단연 돋보이는 참가자였다. 막상 레드벨벳이 평양공연에 참여한다는 기사가 떴을 때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 당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레드벨벳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불렀던 모습이 화제를 모으며 레드벨벳의 평양공연 참가는 당위를 확보하는 듯 보였고, 이후 이들을 응원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빠, 빠, 빨간 맛! 궁금해 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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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7년 발매한 앨범 타이틀곡 ‘빨간 맛’을 계기로 레드벨벳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 여름, 버스 모니터에서 나오는 레드벨벳의 ‘빨간 맛’ 뮤직비디오를 본 순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너무 깜찍하고 상큼해서, 그 다음엔 ‘빨간’색이 본래 의미하는 '정열'과는 달리 레드벨벳의 '빨간 맛'은 시원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발매한 ‘Dumb Dumb’이나 ‘Ice cream cake’은 우연히 들어 후렴구만 익숙했고, 이 곡의 주인이 ‘레드벨벳’이라는 사실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빨간 맛’은 보통 ‘레드’와 ‘벨벳’의 컨셉을 번갈아 기획하는 레드벨벳의 앨범 중에서도 ‘레드’컨셉을 노골적으로 사용한 곡이다. 그래서 '빨간 맛'은 레드벨벳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색깔을 가장 간명하게 보여주는 타이틀곡이기도 했다. '레드벨벳'과 '빨간 맛'은 그날 이후 내 뇌리에 콕 박혔다. 그래서도 이 ‘빨간 맛’이 4월의 평양에 울린다는 사실이 기대되었다.

‘빠, 빠, 빨간 맛! 궁금해 Honey♡’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에 원래 ‘♡(하트)’는 없지만, 들을 때마다 사랑을 가득 담아 연인을 부르는 말투라 느꼈기에 필자가 임의로 붙여 보았다. 이 노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 그 맛’이라 반복하여 말하다가 마지막에는 ‘맛’을 ‘너’로 바꾼다. 즉 이 노래의 화자가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건 그 ‘맛’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노래를 바치는 ‘너’라 살짝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도 기대가 되었다. 마치 하나의 프로포즈와도 같은 이 노래를 평양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하트'를, 마음을 받아줄 수 있을까?



‘우리’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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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문체부장관이 “레드벨벳 공연 중에 이렇게 긴장된 공연은 아마 처음 일 것”말한 것처럼, 적어도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에 마음 편히 웃거나 박수를 치는 관객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케이팝, 아이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정서를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응이기도 했다. 예술단의 공동연출을 맡은 박석원PD는 “이게 어떤 음악이지 하면서 되게 신기해하고 궁금해 하는 모습”이라 말했고, 윤상 예술단 음악감독은 공연을 보며 걱정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우리가 여기에 민폐를 끼치는 공연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윤상 예술단 음악감독이 '민폐'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케이팝은 평양에는 새로우면서도 충격일 수 있는 장르였다. 1999년과 2003년, 오래 전 아이돌 그룹 가수들이 다녀간 바 있지만 케이팝, 아이돌 문화가 평양에 정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윤상 음악감독은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레드벨벳 무대에 대해 “우리는 얼마든지 공감하는 무대이니 편안하게 보시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가 공감한 케이팝이기 때문에, 세계의 일부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가 말한 '우리'는 원래 아이돌 문화에 익숙한 남한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었겠지만, 이 '우리'의 범위는 평양의 한 공간에서 확장되고 있었다. 이처럼 레드벨벳 무대는 몇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을 하나의 '우리'로 묶어낼 가능성을 인식한 지점에서 적극적으로 제안된 무대라는 점에서 뜻깊다.



15년만의 케이팝, 그리고 민낯



“같은 하늘 다른 곳에 있어도
부디 나를 잊지 말아요“

- 백지영, ‘잊지 말아요’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크게 소리 쳐 사랑해요“

- 정인, ‘오르막길’

 
백지영과 정인의 노래 가사에 비하면 남북 교류 및 화합을 위한 평양 공연에서 ‘빠, 빠, 빨간 맛’은 어찌나 맥락 없는 가사인가. 그만큼 메시지가 약하거나 뜬금없다 해도 반박할 말은 없을 것이다. 케이팝의 이런 '맥락 없는' 혹은 근본 없는 속성은 태생과 관련 있다.

케이팝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괴이쩍은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장르이며, 그래서 우리는 "케이팝을 이야기할 때 종종 '근본 없는'이란 수식어"를 사용한다. 이 '근본 없음' 때문에 "케이팝은 뻔뻔"하다. 한편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케이팝이 아니라면 평생 마주할 일 없었던 음악적 갈래들이 어느새 한 몸이 되어 무대 위 펼쳐진 독립된 하나의 세계로 수렴한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Littor, 2018 4-5월, 23-26쪽)

한 트위터리안이 “레드벨벳은 곡, 안무 구성 등이 케이팝의 문법 위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케이팝을 꾸준히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근본 없지만 그 안에서 독자적인 문법'을 구사하는 장르가 케이팝인 것이다.

레드벨벳의 평양 공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필자는 무의식중에 그들은 평양에서 북한 노래를 부를 것이라 예상했었다. 당연히 케이팝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레드벨벳은 중간에 자극적일 수 있는 안무는 고치는 섬세함을 발휘하면서도, 당당히 '빠, 빠, 빨간 맛!'을 외치고 왔다. 필자의 예상이 진부했던 탓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15년 만의 아이돌 그룹 북한 공연이 가공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 관객에게 다가갔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꾸밈 없는 소통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즐겁고 순진하게, 빠, 빠, 빨간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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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방송에 비춰진 게 현장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당사자인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이 "관객들 얼굴도 너무 잘 보였는데 웃으면서 보고 계신 분이 많았어요"라고 한 인터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빨간 맛' 무대 후에 아이린이 반갑다는 멘트를 하기 전 숨가빠하는 모습을 보이자 객석에서는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예술단 음악감독 윤상은 공연 이후 “방송을 보고, 제 눈으로 볼 때는 다녀온 것이 맞지만, 눈을 감으면 잠깐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은 꿈 같은 순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 나중에는 그들과 함께 케이팝 공연을 보며 순진하게 웃고, 환호하고, 그래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볼 꿈 같은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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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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