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THE FOOL 0: 절벽으로 내딛은 그 황금빛 첫걸음

글 입력 2018.04.1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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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EA] THE FOOL 0: 
절벽으로 내딛은 그 황금빛 첫걸음



누가 미친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거요?

-돈키호테-


 존재하지 않는 것을 표현한 기호인 0은 오묘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그 기호에는 순결한 잠재력이 있다. 0은 모든 숫자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 예로 곱을 하면 처음으로 돌릴 수 있는 원점같은 기호다. 생각해보면 0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출발지에서 가기 시작해 많이 왔다고 생각했을 때, 정신차리고 보면 출발한 곳에 도착했던 적이 있지 않았는가? 마치 출발점을 넘은 마라토너가 다시 출발점에 도착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인간에게 발전이 없다고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의 출발점, THE FOOL 카드는 출발이자 끝이다. 절벽을 넘는 소년은 여정을 시작하고 끝내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다. 0은 자유의 숫자기도 하다.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에 자유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가 있다. 그 가사에 따르면 자유란, 잃을 것이 없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잃을 것이 있는 순간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젊은이가 기성세대들보다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잃을 것 없는 0이라는 숫자는 자유롭다. 기호 0의 카드, 바보는 자유로운 자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돈도, 지식도, 경험도 없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경험과 현실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자, 이제 타로카드의 긴 여정을 시작하는 바보의 모습을 읽어보자. 카드의 주인공인 소년은 겁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도, 주저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자신감에 찬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는 춤을 추는 것처럼 가볍고 즐겁게 움직인다. 그의 머리는 붉은 깃털과 월계관이 씌여져 있다. 붉은 깃털은 삶에 대한 열정을 의미하고, 월계관은 그의 여정 앞에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한다. 보따리는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인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겁없이 떠난 여행치고는 그의 보따리는 작다. 지팡이는 땅을 짚는 용도로 쓰는 것이 대부분인데 보따리를 묶어 어깨에 지고 있다. 그는 별다른 준비도 없어보이고, 지팡이를 제대로 쓸만큼 똑똑해보이지도 않다. 더군다나 치켜올린 그의 시선 아래에는 사실 가파른 절벽이 있지 않은가? 그런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에는 흰 장미가 있다. 흰 장미는 순결과 순수한 마음을 상징한다. 옷은 화려하지만 옷소매는 엉망이고, 소년은 그걸 신경쓰지 않는다. 현실과 걸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단순히 어리석음을 넘어서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를 태양은 사랑스러운 듯이 밝게 빛나고 있다. 이렇게 희망만 가득 찬 소년같이 보이지만, 외로운 여행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의 주변에는 충실한 흰 강아지가 있다. 강아지는 때로 그에게 위험을 알려주기도, 도움을 주기도 할 것이다. 강아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바보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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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돈키호테-


 바보카드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돈키호테>다. 이 감동적인 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필자는 돈키호테를 바보 카드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서론부터가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같은 작품이고, 일단 읽어보면 '순수함'을 중심으로 하기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품이긴 하다. <돈키호테>에는 세르반테스가 가진 르네상스적 휴머니즘과, 당시 서서히 몰락해가던 절대군주 사회, 정치, 종교 규범들에 대해 비웃음이 잘 녹아들어 있다. 그만큼 세르반테스의 사회비판 의식이 녹아 들어 있는 작품이고, 돈키호테도 바보카드처럼 싱싱한 젊은이는 아니다. 돈키호테는 오히려 소년의 모습과 정반대다. 그는 박식했지만 무료한 노년 생활로 마주한 실존적 절망으로 미쳐버리고만 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카드를 볼 때마다 말을 탄 돈키호테가 생각나는 이유는, 그가 삶에 대한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를 가지고 자신이 바라는 가치와 사회를 실현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는 광기와 무지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순수한 가치와 목표를 가슴에 품고 있다.

 필자가 생각했을 때, '바보'카드는 결코 '무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 숨쉬는 미숙함과 열정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초도 돈키호테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입으로 빌린 유토피아는 감동적이다. 돈키호테는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 계급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각자의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완성시킬 수 있는 평등한 조건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영웅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그의 광기 속에 진리가 녹아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광기에서 진화하지 못했다. 바보 카드의 소년은 성장하지 못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돈키호테도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했다. 필자에게 말년에 정신이 돌아온 돈키호테의 죽음은 서양 고전 중에서도 특히 손에 꼽는 비극 중 하나였다. 사랑스럽기는 해도, 판타지로만 삶을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소년은 성장을 피할 수 없다.

 필자는 어디서 주워들은 문구인,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참 좋아한다. 우리 모두가 삶에 있어서는 초행길 이다. 우리 모두가 말도 안되는 꿈을 꾸고, 수많은 실수를 한다. 영원히 바보로 남을 수는 없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는 바보의 사랑스러운 웃음은 우리의 삶을 늘 처음과 끝과 닮았다. 때로는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아보자. 절벽을 향해 내딛은 그 황금빛 첫걸음에 축복을, 땅에 그려진 시작점에 키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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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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