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아노, 바흐의 소리 - 인터내셔널 마스터즈 시리즈 : 콘스탄틴 리프시츠 리사이틀

글 입력 2018.04.1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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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피아노, 바흐의 소리
인터내셔널 마스터즈 시리즈
콘스탄틴 리프시츠 리사이틀


필자는 종종 삶이 정해진 굴곡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상상을 한다. 필자는 적당한 시기에 행복해 하고, 적당한 시기에 가라앉는다. 그건 무엇이든 일을 실컷 벌여둔 다음에 오는 현자타임일 수도 있고, 단순히 호르몬 주기의 변화일 수도 있다. 그 이유를 굳이 정의하고 싶진 않다. 뭐가 되었건, ‘텅빈 날’은 한달에 한번, 초대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은 좋은 무언가를 만나거나, 글을 쓰면 풀리는데, 그냥 무작정 ‘텅빈 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문을 굳게 잠그고, 불을 끄고, 몸이 딱맞는 욕조에 틀어 박히고만 싶다. 슬프지도 않은데 뭔가 토해내고 싶을 때 음악은 늘 위로가 된다. 연주자는 치열한 방식으로 소리를 만들어내지만, 감상자는 뇌에 소리를 박아 넣는다. 음악이 지배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음악 감상법이 있지만, 단순한 ‘감상’ 외에는 정보를 뻗어나갈 경험과 지식, 그 외를 더 찾으려는 갈구가 없는 필자에게는 그게 전부다. 필자는 음악을 뱃속에서 들려온 고동소리처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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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시츠의 연주는 필자에게 온도가 있는 경험이었다. 필자는 피아노 독주회를 직접 듣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는 피아노와 가깝게 살았다. 어머니가 치는 피아노는 가정적이고 즐거웠지만, 뭔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연주하는 피아노도 그랬다. 피아노를 실컷 듣고 살았더니, 별달리 피아노 독주회를 들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들은 리프시츠의 독주회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악기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풍부함이 고막을 가득 채웠다.

짧은 언어 능력이 이 느낌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다른 악기의 독주회가 귀를 뚫고 들어가 심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면, 피아노는 귀 전체를 가득 채워 들어와 심장에 들이 부어졌다. 다양한 음계의 화음이 주는 풍족함도 만족스러웠지만, 그 무엇보다도 건반 위를 움직이는 리프시츠의 섬세한 손가락의 움직임이 감동적일 정도로 느껴졌다.

실제 연주가 주는 감상이 대단했다. 필자는 지금까지는 다소 이론적으로만 클래식의 본능적임과 실존을 받아들였는데, 이번 연주회로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왜 클래식에 감정과 해석이 중요하고, 단순한 로봇 기술자가 그것을 따라할 수 없는가를 이해하는 순간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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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를 회상하면, 초코 퐁듀에 빠진 딸기처럼 또다른 세상에 푹 들어갔다가 온 것 같다. 악보도 보지 않고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듯이 움직이는 리프시츠의 입술을 보는 것은 듣는 사람까지도 빠져들게 만들었다. 노트와 펜을 쥐고 입장했는데도, 나갔을 때까지 그 안에 적힌게 하나도 없었던 것도 평할게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몸을 맡기기가 너무 쉬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막연히 경계를 따라가며 어디까지가 알라망드, 미뉴엣, 지그라고 생각하며 들었기에 정확히 어떤 지점이 좋았다고 확신을 담아 이야기 하기 힘들었지만, 묘하게 익숙한 멜로디가 들린 첫번째 곡과 유난히 텀을 보였던 마지막 곡이 좋았다.

마지막에 연주자는 피아노를 올리고 지금까지와 다른 곡을 연주했는데, 매우 전위적이고 강렬했다. 바흐의 곡이 천국같았다면, 앵콜 곡들은 번개같았다. 끝나고 앵콜곡을 물어보니, 벨러 버르토크 Béla Bartók, 피아노를 위한 6개의 불가리안 리듬의 무곡, Sz.107, BB 105 중 6 Dances in Bulgarian Rhythm for Piano, Sz.107, BB 105 (excerpts) Dance No.1, Dance No.2 라고 했다. 여운이 가시지 않아 공지사항이 올라온 뒤로 매일같이 돌려듣고 있는 중이다. 리프시츠의 공연은 난생 처음듣는 피아노 독주회 방문자의 기억에 불을 붙였다. 다음에 언제 또 한국에 올지 모르겠지만, 그때 전까지 그가 연주한 바흐를 가끔 돌려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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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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