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인 에어 : 불순물 [도서]

제인은 불순물을 눈치챘다.
글 입력 2018.04.2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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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폭풍 속에서 올곧은 사람



 부모를 일찍 여의어 외숙모 손에 자란 아이. 부모처럼 사랑해주던 외삼촌도 죽자 그녀 곁에 남은 온갖 악랄한 사람들. 불쌍한 배경은 주인공을 극적으로 만들며 성공하는 순간 쾌감이 배가 되게 하는 장치지만 '제인 에어'는 너무 심했다.

 계속되는 외숙모의 학대와 사촌의 따돌림은 아이에게 있던 생기마저 앗아갔다. 아이가 보는 작은 세상에서 제 편이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런 아이가 어떻게 그 시대에, 부조리에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  어린아이에게 어른은 하나의 세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룰이었을 테다. 적어도 경제적으로 귀속됐다면 말이다. 제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성이 곧고 강단 있는 그녀에게 외숙모는, 아무리 학대하더라도 세상이자 규칙이었다. 그렇지만 제인은 룰을 거부했다. 저가 옳다 생각한 건 밀고 나갔다. 그녀에게 향하는 삿대질과 조롱이 너무 당연해 꿋꿋한 태도가 오히려 이상해보일 정도다. 그녀의 태도와 세상의 간극이 그녀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그녀는 로체스터의 저택에 가정교사로 취직하며 대부호 로체스터에게 청혼 받는다.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는 나로서도 흐뭇한 아빠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미소는 다음 장에서 깨졌다. 제인 에어는 꽃길 대신 가시밭길로 향했다. 불길하게도 한참을 고민하더니 돌연 저택을 떠났다. 제인은 그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떠난 걸 후회하진 않았다. 말이다. 결말부터 말하자면 제인 에어는 돌고 돌아 결국 로체스터 곁으로 돌아왔다.


로체스터를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왜 그를 떠났을까?

그렇다면 왜 몇십 년이 지나서야 찾아와
사랑을 맹세했을까?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를 사랑했지만 그의 사랑엔 권력을 통한 협박, 억지, 강요 따위가 어느 정도 담겨있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그가 진정 사랑하는 방식을 배우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 시대엔 비교적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근데 현대로 가져오면 협박과 강요가 과연 사랑일까? 웃기다.

 총명한 제인은 무의식적으로 로체스터 사랑 속, 불순물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열렬히 사랑했음에도 그를 떠났다. 물론 작 중에서는 스스로 내린 결론을 하느님께서 내린 답으로 여기지만.

 감싸주자면 물론 로체스터는 악인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그시대 사람들에게도 그 정도야 별 흠이 아니었고. 제인이 떠나고 로체스터는 사고로 시력과 팔 하나를 잃었다. 나는 잃어버린 팔 하나가, 특정 종류의 힘을 상징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권위. 잃어버린 시력은 이성.

 하지만 근대적 이성이다. 성 프레임 등 온갖 고정관념을 담은 이성 말이다. 사고를 기점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건 로체스터가 어떤 이유에서든 근대적 이성을 버렸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고 이후에도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제인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녔다. 행방을 모르자, 소유의 별장으로 가서 하인 둘만 데리고 요양한다. 제인은 소식을 듣고 로체스터를 찾아간다. 그리고 사랑을 진정으로 약속하고 평생 같이 살기로 한다.

 제인은 쇠락한 로체스터에게서 봤을 것이다. 그가 진짜로 나를 사랑했다는 것. 마음대로 되지 않자 귄위로 그녀를 묶어두려 했던 그는 권위를 잃어도 그녀를 여전히 사랑했다는 것. 그녀가 그에게서 봤던 권위주의적 모습과 편견, 고정관념이 희미해졌다는 것. 이제 그녀는 그를 사랑해도 된다는 것. 제인과의 관계가 호전되자 로체스터는 시력을 회복한다. 새로운 이성을 정립한 것이라.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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