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읽는 수능 지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_박태원 [문학]

구보씨는 누구인가
글 입력 2018.04.1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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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_박태원
구보씨는 누구인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특징들은 '의식의 흐름 기법',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무력감'. 요사이 중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 특징들은 이 소설을 감상하는 데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일제 강점 시대상에 지나치게 편중된 문학 해석은 우리 문학 교육이 흔히 행하는 실수 중 하나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또한 위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구보씨가 우울감에 휩싸여 거리를 쏘다니는 이유가 정말 식민지라는 상황 아래 저항할 수 없는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무력감 때문일까?

구보는 동경에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기는커녕 일자리조차 얻지 못 집에서 소설이나 끼적이고 있다. 26살이라는 과년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와는 거리가 멀다. 구보는 홀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나가 거리를 쏘다니다 항상 자정이 넘은 시간에야 돌아온다. 늙고 쇠약한 어머니는 항상 구보 걱정뿐이다. 만나는 색시는 있는지, 일자리는 구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구보는 그런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살가운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요사이 구보는 고독을 두려워한다. 일찍이 그는 고독을 사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심경의 바른 표현이 못될 것이다. 그는 결코 고독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그는 그것을 그지없이 무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독과 힘을 겨누어 결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기어 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집 안에서 구보는 고독하다. 그렇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선다. 그는 서울의 곳곳을 쏘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벗, 동창생, 첫사랑, 다방의 여인들... 그러나 그들 누구에게서도 그 고독을 위안받지는 못한다. 구보가 매일같이 거리로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지만 구보에게는 여인네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정도의 용기도, 진실한 정을 나눌 벗도 없다.


"이거, 얼마만이야 유군"
그러나 벗은 순간에 약간 얼굴조차 붉히며,
"네, 참 오래간만입니다."
"그 동안, 서울에 늘 있었어?"
"네."
구보는 다음에 간신히,
"어째서 그렇게 뵈올 수 없었어요?"


한마디를 하고 그리고 서운한 감정을 맛보며 그래도 또 무슨 말이든 하고 싶다 생각할 때 그러나 벗은 그만 실례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리고 구보의 앞을 떠나 저 갈 길을 가버린다. 구보는 잠깐 그곳에 섰다가 다시 고개 숙여 걸으며 울 것 같은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한다.


그 왜곡된 감정이 구보의 진정한 마음의 부르짖음을 틀어막고야 말았다. 그것은 옳지 않았다. 구보는 대체 무슨 권리를 가져 여자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농락하였나,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하였으면서도 자기는 결코 여자를 행복하게 하여 주지는 못할 게라고, 그 부전감(不全感)이 모든 사람을 더욱이 가엾은 애인을 참말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그 길 위에 깔린 무수한 조약돌을 힘껏 차 흩트리고, 구보는 아아, 내가 그릇하였다, 그릇하였다.


구보는 유독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린다. 젊은 부부를 보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행복을 상상하며,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는 가족을 보며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행복을 상상한다. 또한 젊고 예쁜 여인을 데리고 다니는 중학교 부자 동창을 보며 역시 행복은 황금에서 온다 생각하기도 한다. 구보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행복을 찾고 있다. 행복을 사려면 얼마가 드는지 진지하게 계산해볼 정도로 구보는 행복이 절실해보인다. 그러나 오전 두시 쯤, 그러니까 소설의 결말에서 결국 구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거리를 헤매도 행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보는 벗이, 그럼 또 내일 만납시다. 그렇게 말하였어도 거의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생활을 가지리라.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
평안히 가 주무시오. 벗이 또 한 번 말했다. 구보는 비로소 그를 돌아보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하였다. 내일 밤에 또 만납시다. 그러나 구보는 잠깐 주저하고, 내일, 내일부터, 나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구보는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 본인의 생활을 찾고자 한다. 본인의 행복을 찾지 못했기에, 어머니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구보는 생활인(生活人-세상에서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여태껏 외면하고 있었던 생활에 대한 끈을 붙잡고 주변에서 원하는 행복에 맞추어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벗은 다음날 거리에서 구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1934년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약 100년 전의 구보씨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딱히 할 일이 없기에 느즈막히 일어나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거리로 나선다. 우연히 잘 나가는 친구를 만나 질투심을 느낀다. 사랑했던 여자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위로해줄 이 없이 고독을 씹는다. 진정한 나만의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익숙하지 않은가, 구보씨는 나와(혹은 우리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인 듯 하다. 나는 구보씨가 겪는 우울과 무력감 등등의 것들이 일제 시대의 외압이나 횡포에서 온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고독과 우울,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마음. 인간으로서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보씨는 '구보'라는 특정한 인물을 칭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오늘 구보씨와 같은 기분이라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으며 그에게 공감해보라.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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