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형태는 마치 물과 같아서, 'Shape of Water' [영화]

있는 그대로의 사랑에 대하여
글 입력 2018.04.1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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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을 비우고, 오로지 영화에 집중할 때 더 명확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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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과 의무감에 보게 된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이 영화를 처음 영화관에서 접했을 때 한동안 멍 때렸던 기억이 난다. 잔잔히 흐르는 노래는 덤, 난해하고 복잡해진 머릿 속, 여주인공 대사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이 영화가 주는 어떤 심오한 철학이나 의미들을 생각해 볼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고서 여러 사람들의 평론을 보기 시작했고, 아 이 부분에서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델 토르 감독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이 영화가 주고자 했던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지고, 두번 째로 보았을 땐 영화 자체의 메세지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02. 조금은 불완전한 관계에서 생기는 사랑이 가장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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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을 왜 귀는 들리지만 말은 할 수 없도록 설정했을까, 그리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까. 괴물은 왜 어류를 모티브 했을까? 왜 그녀의 목에 세 개의 상처를 내었을까? 왜 2분에 한번 씩 물이라는 소재가 계속해서 등장할까?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이 간결하면서 심오하다. 그 괴물은 결국 그녀이다. 엘라지아가 자일스에게 괴물을 구해야 한다고 할 때 수화를 통해 이야기를 한다. 그때, 그녀는 괴물을 ‘그’라는 하나의 인물로 설정한다. 자일스는 “너는 그 괴물을 이제 ‘그’라고 얘기하는 구나”라고 한다. 아마 엘라지아에겐 그는 괴물이 아니라, 그녀에겐 하나의 인격체였을 것이다.

그 괴물, 아니 ‘그’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 때문이다. 엘라지아는 말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말, 즉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인물이다. 고아원에서 힘들게 자라온 인물이다. 직업은 청소부다. 그녀는 사회의 밑바닥에 속한 인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괴물은 그녀와 부속해서 따라오는 것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녀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랑이 우리에게 와 닿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감정 그 자체를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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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이프 오브 워터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르는 주인공을 설정한 배경에 영화 ‘미녀와 야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랑을 하는 인물들은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미녀,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왕자로 변해야하는 야수이다. 그렇게 완벽한 인물들만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어딘가 부족하고, 또 완벽하지 않은 인물들이 어쩌면 더 온전한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럼 이제 조금은, 인물 설정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는 사랑은 이 증오의 시대의 연고 같은 존재라고 한다. 사랑을 다루는 배경을 어쩌면 ‘미래’로 향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시대로 설정한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미래로 향하는 시간들을 쫓다보면, 잔혹하고 증오스러운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표면 위로 솟아오른다. 영화에서 미 항공 우주센터라는 미래로 가기 위해 잔혹하게 싸우는 공간 속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청소부의 사랑 이야기를 설정했다는 것은 아마도 그의 계획된 설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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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Shape of Water, 물(Water)이 나타내는 의미과 상징성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영화 제목이 쉐이프 오브 러브(Shape of Love)가 아니라, 물(Water)일까? 물이라는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엘라지아는 하루를 물로 시작한다. 욕조에서 일과를 시작하고, 계란을 끓인다.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자면, 그녀를 맴도는 물은 그 자체를 완전하게 만들어준다. 욕조에서의 그녀의 행위가, 그녀는 부족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액체같이 불완전한 계란을 물로 삶으면 딱딱한 고체가 되듯이. 그녀와 그가 욕조에서 사랑을 나눌 때도,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와 함께 운하라는 공간에 뛰어들 때도 그들의 주변은 물로 가득 차있다. 남이 재단한 모양으로 봤을 때 부족해 보이는 그들의 사랑도 물로 인해 완전하고 또 온전한 사랑이라는 점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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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물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엘라지아가 뽑은 문구 중, '시간은 과거로부터 흐르는 강물에 불과하다'라는 글귀가 있었다.이 영화에서도 물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 하다. 그와 그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 창가에 고인 물방울들은 합쳐져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방향을 갖고 움직인다. 그와 그녀가 화장실에서 사랑을 나눌 때, 극장으로 떨어지던 물은 사람을 깨운다. 괴물인 그를 놓아주려고 운하를 갈 때도 비가 내리고, 운하가 흐른다. 이 영화에서 물은, 영화의 배경이자 상징이다.



04. 스트릭랜드의 시각이 아닌, 엘리지아의 시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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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심오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영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그런데, 이런 해석을 보았다. 우리는 어쩌면 언어,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진 차별주의자 스트릭랜드가 아니었을까라고 하는. 그렇다. 처음에 나는 스트릭랜드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말, 언어로 표현하는 감정이 아닌 눈빛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쭉 따라가보니, 나는 스트릭랜드의 시각이 아닌, 그와 헤어져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올때의 그녀의 눈빛과 눈물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아마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랑은 어떤 능력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어떤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05. 동성애도 사랑의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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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왠지 공감 가고 위로해주고 싶었던 케릭터가 있다면 자일스일 것이다. 결국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엘라지아 너 뿐이라는 대사에서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가 괴물을 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일(그림)이 더 중요했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또 자일스를 통해 동성애에 대해 좀 더 거부감 없이 풀어냈다. 자일스도 사랑하고,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일스의 사랑도, 정말 사랑인 것처럼 사랑에는 모양 따윈 없다. 동성애라고 해서 그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해피앤딩은 되지 못했지만.



06. 사랑에 정해진 모양따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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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처음과 끝에, 자일스의 목소리가 깔린다. 그와 그녀가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분명 영화인데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끝낸 느낌이었다. 모르겠다.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다. 둘 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으니. 이 영화를 보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우선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너무 좋았다. 두 번째론, 엘라지아의 대사가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말에 대하여,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이 갖고 있기에, 더 많이 감출 것이 있고, 감출 것 뒤에 숨어있기 때문에 우리를 있는 그대로 봐 줄 수 있는 사람을 점점 잃어가고 있진 않을까. 어쩌면, 덜 가지려고 할 때 혹은 부족할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사랑도, 사랑의 한 모양이다. 당신의 사랑을 아무도 평가하고 재단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도 누군가의 사랑을 평가하고 그들의 무게를 잴 권리는 없다. 사랑은 어디에서든, 그 자체로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에.


[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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