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맺음 없는 400년의 약속 [예술철학]

약속의 가치와 인간다움
글 입력 2018.04.1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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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기록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진행 중인 공연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니며, 이 글을 쓰는 나는 어떤 종교에도 몸담고 있지 않음을 밝힌다. 이 글은 세상을 향한 약속과,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감동을 보다 오래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흔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연 글임에도 '예술철학' 카테고리에 담가두었다. 독자들도 글의 맺음 부분에서는 해당 의도에 고개를 끄덕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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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말기 유럽이 기독교사회로 접어들자, 기독교 교회는 연극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였다. 그렇게 숨어서 몰래 진행되던 중세 연극의 싹이 텄다. 연극의 문을 닫았던 교회에서 말이다. 예배음악극의 형태로, 연극적 행위를 통한 미사가 진행되었으며, 12세기 무렵에는 카인과 아벨, 아담과 이브 등의 내용을 토대로 한 대본까지 발견되었다. 이로부터 2세기 후 구약에서 신약까지를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의 연극이 성행했으며 이는 오늘날 cycle 연극으로 불린다. cycle 연극 중 예수의 수난을 강조하는 작품을 passion play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수난의 구원을 기리는 예수 수난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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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700명의 작은 마을, 독일 비비리아 지방의 오버라머가우. 이 곳에서 1643년 첫 passion play가 시작되었다. 몇 세기 째 흑사병이 생명을 앗아가던 때였다. 이 작은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이를 막을 방도는 없었다. 수난을 마주할 힘마저 사라지는 순간에 인간은 치료보다는 구원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오늘날과 다르지 않게, 약보다 기도를 먼저 택하고 육체 대신 정신을 다스리는 형태의 노력이 구원을 간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17세기 오버라머가우 사람들은 페스트를 멈추어 줄 것을 간청했다. 하늘에게, 신에게, 혹은 듣지도 못하는 페스트를 향해 외쳤을지 모른다. 그들은 죽음이 멈추기를 기도했다. 대신 구원이라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10년마다 한 번 씩 예수의 처형과 부활에 관한 연극을 무대에 올릴 것을 약속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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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구원받았다. 기적적으로 흑사병이 멈추었으며 주민들은 약속대로 예수 수난극을 진행했다. 구원의 크기에 비례하듯, 5천명의 주민들 중 배우로만 무려 2천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형태의 극이었다. 연기뿐 아니라 음악, 기술, 무대 등 연극의 모든 부분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담당하였다. 주민들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연극이라는 특징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세상에 신이 있다고 가정하자. 오버라머가우 주민들의 기도를 들어준 주체 또한 신이라 가정해보자.

신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완벽한 형태의 극을 바랄까? 혹은 인간의 극을 바랄까? 신을 믿지 않는 나마저도 신이 원하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일’일 것이라 기대해본다.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17세기의 passion play는 오늘날 21세기까지 이어졌다. 400년이라는 시간동안 극을 올리지 않았던 때는 수난극이 금지된 시기와 세계대전,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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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난극은 2020년에 열린다. 3년 전에 2020년 공연 예고 영상이 게재되었으며, 이미 표는 매진되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연 하나를 위해 작은 마을을 찾는다. 그들은 예술을 목격하려는 것일까? 전통 혹은 종교를 바라고 그 곳을 찾는 것일까? 내가 기대하는 답은 ‘인간의 약속’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을 형상화한 것이야말로 오버라머가우의 수난극일 것이라고. 오버라머가우는 약속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나는 2020년 극을 앞둔 시점이기에 400년의 약속이라 이름 붙였다. 500년의 약속이라는 타이틀 이전에 나는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약속을 직접 두 눈에 담을 것이며, 이 공연은 분명 4000년, 40000년의 약속이라 불릴 것이다. 인간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약속일까?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약속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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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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