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대예술의 2가지 경향 알아보기 [예술철학]

숭고미학과 관계미학
글 입력 2018.04.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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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은 모더니즘이 주장한 ‘보편 원리의 가능성’에 대한 것을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모더니즘의 특징은 ‘보편적 원리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류는 보편적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역사를 인간에 의해 좋은 세계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한 통제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이성 능력을 강조하며, 이런 인간이 좋은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더니즘의 주장에 대해 여러 의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세계의 진실이 보편 원리에 따른 질서정연한 모습인가?’라는 의문을 던짐으로써 보편 추구의 불가능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보편 원리는 인간이 본인의 삶의 편의를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를 세계의 보편적인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편 원리라고 믿는 것은 진정한 보편 원리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의문으로는 ‘보편 추구의 실패’에 대한 것이다. 모더니즘에 따르면 우리 보편 인간은 우리의 이성 능력을 통해 좋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를 보면, ‘보편 인간’과 ‘보편적으로 좋은 사회’는 서구 유럽 문명과 남성 주의적인 시각 중심이다. 결국 우리 인간의 이성은 보편 추구에 실패한 것이다.
 
이런 보편 원리에 대한 의문들은 ‘탈-보편’의 정신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곧 현대 예술의 중심 정신으로 이어진다. 현대 예술은 탈-보편을 주장하며 ‘지금-여기 현재(특수한 시공간)를 살기’를 강조한다. 이러한 현대 예술에는 두 경향이 있다. 하나는, ‘일상을 찢는’ 숭고 미학으로서, 일상을 중단시키고 불쾌하게 만듦으로써 보편인식으로 포섭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경향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상이 되는’ 관계미학으로서, 보편 목적에서의 자유로운 놀이를 강조하는 경향이다.
 




첫 번째 경향: 숭고 미학.
 
숭고 미학은 무한한 인간 정신을 찬양했던 모더니즘의 숭고와 달리, ‘인간의 수동성과 한계’를 강조하는 현대적 숭고(Neo-Sublime)적 입장을 지닌다. 현대적 숭고는 모더니즘적 숭고와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크기와의 마주침’을 말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수동성과 한계’를 강조한다. 즉,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 또는 이해 불가능한, 보편 범주로 포섭 불가능한 것의 존재를 강조한다. 숭고 미학의 현대 예술은 이런 이해 불가능한 것이 ‘존재함’ 자체를 강조함으로써, 이질적이고 불편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체험하도록 해준다. 결국, 이해 불가능한 존재와의 마주침을 통해, ‘이질성’과 ‘타자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이것들이 삶, 인간, 그리고 나 자신에서 분리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이 이질적이고 불편한 것들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현대 예술은 보편 원리에 따른 통일적 기획을 거부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추구한다.

 
두 번째 경향: 관계 미학.
 
관계 미학은 말 그대로 ‘관계’를 적극 활용하는 경향이다. 이 경향의 현대 예술은 사회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상적이고 상업적인 교환 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적 소비 및 소유 질서를 변형해서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이 경향은 예술을 ‘만남과 대화에서 의미가 발생하는 놀이’로 보여준다. 즉, 이 경향에서는 관객의 참여와 개입으로 작품이 실현되고 완성된다. 이런 만남과 대화가 계속되는 한 이 작품은 결코 끝나지 않는 Never Ending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또한, 관객의 참여로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은 Aura가 관객으로 이동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객은 모두 그때까지의, 그때 당시의, 저마다의, 몸(개개의 경험과 과정이 축적된 것으로서의 몸)과 반응을 지니고 있는 ‘일반화 불가능한 존재들(개별적인 존재들)’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관계 미학의 경향으로 바라본 예술은 ‘삶, 일상, 지속이 되는 예술’인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작품의 의미가 생겨나고, 이러한 의미는 ‘하나의 경험’으로서 관객의 삶에/일상에 흔적으로 남게 되고, 이러한 흔적은 관객의 삶 속에서 계속 지속된다. 이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관계 미학의 현대 예술은 새롭고 예측불가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사건과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이를 경험하게 하고, 그 시간(과정)을 겪게 함으로써 그 관객의 삶 속에 흔적으로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 


현대 예술의 공통 경향.
 
현대 예술의 숭고 미학과 관계 미학 두 경향은 ‘일상을 찢어 버림’과 ‘일상으로 녹아 들어감’이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이 두 경향은 공통적인 모습 또한 지니고 있다. 우선, 두 경향 모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 세계를 재분할하였다. 공동체를 보는 방식, 규정하는 방식, 인정하는 방식을 재구성한 것이다. 또한, 두 경향은 모두 ‘정치성’을 지녔다. 정치성이란 공동 세계에서 공통의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제기하고 함께 논의하고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 되기’ 및 그 ‘존재함’에 관련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결국 이를 종합해보면, 현대 예술의 두 경향은 모두 관객에게 ‘공동체’ 내의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문제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과 특성을 지닌 현대예술은 이전의 예술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와 기능을 보여 준다. 때문에 현대예술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이전의 예술을 수용 하던 태도나 관점과는 확연히 다른 자세로 현대예술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현대 예술의 예_'슈즈트리'.

서울로 7017의 개막작 '슈즈트리(Shoes Tree)'가 바로 이러한 현대 예술의 대표적이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작가인 황지해 작가는 폐기처분 될 예정인 헌 신발들로 폭포를 표현함으로써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옛 것의 멋과 가치를 잊어버리는게 아닐까?’라는 그녀의 고민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녀는 신발을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비하는 것으로서, 우리 ‘소비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재료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황지해 작가는 '슈즈트리'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소비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엔 늘 이렇게 ‘새로운 것을 사고 헌 것은 버리는 소비 문화’가 존재하고, 이 문화 속에는 또 늘 ‘슈즈트리'에 달려 있는 헌 신발들 같이 버려진 헌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흉물’같다는 이유로 예정된 기간보다 더 빨리 철거되게 되었다. 여론과 언론이, 특히 언론이 이 작품에 대한 ‘흉물이다.’ ‘예술이 아니다.’ ‘세금 낭비다.’와 같은 생각을 더 촉진 및 확장시켜 <슈즈트리>는 9일 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만 전시되고 철거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완전히 실패하고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를 보고 어떠한 ‘불편함’은 느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불편함’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전에 작품이 철거된 것이다. ‘불편함’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게 되기도 전에 ‘불편함’이 제거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 예술이 지닌 특성과 기능은 이전의 예술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감상하거나 대하는 태도 또한 이전의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는 확실히 달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 예술은 그저 우리들에게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예술'로만 남을 것이다. 아니면, '슈즈트리'처럼 '흉물'로 치부 되어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 또한, 아직 어떤 태도로 현대 예술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그 예술의 성격에 부합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 예술이 어떤 성격의 예술인지 안다면, 현대 예술이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존재로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현대 예술과도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소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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