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앙팡 테리블을 비난하지 않기 위해 : 도서 <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

도서 <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 리뷰
글 입력 2018.04.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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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드를 허물며

     
“요즘 애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기성세대의 볼멘소리엔 짙은 불안이 숨겨져 있다. ‘앙팡 테리블’, 기성세대의 관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신세대에겐 ‘테리블’을 느낀다. 나와 내 다음 세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어려움이 첫 번째 문제일 거고, 나의 가치가 낡고 고루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두 번째 문제일 거다. 사회 면면을 들여다보면 기성세대와 신세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 싶다. 다수의 사람들은 늘 그렇듯 새롭고 파격적인 것을 만나면 가지고 있던 것을 방어적으로 끌어안게 된다. 물밀 듯 밀려오는 서양 문물에 나라의 문을 굳게 닫기도 하고, 결혼이나 젠더에 관한 새로운 인식들엔 반발 기제가 강하다.
 
그래, 새로운 것은 두려움을 함께 가지고 온다. 정해진 야구 룰 위에서 매번 다른 경기가 펼쳐지는 것을 좋아하지, 타자가 글러브를 쥐고 포수가 배트를 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은 그것을 쉽게 비난할 깡다구를 준다. 그리고 ‘사회 통념에 어긋난다’라는 말로 거대한 바리케이드를 쳐버린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미 파격으로 인정받은 이상의 시를 보고선 ‘와, 대단하다’ 하면서도 동시대 실험적인 연출, 실험적인 극작, 실험적인 그림에는 갸웃거리기 일쑤다. 전적으로 내 얘기이다. 아직 현대무용이 어려워서 싫고, 현대미술은 난해해서 곤란하고, 실험적인 공연엔 적응하기가 힘들더라. 많은 것을 수용할 각오가 있다고 나름 자부하는데도 그렇다.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겠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혹은 사회 속 다양한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으레 겪는 고민 아니겠나.
 
 
 
앙팡 테리블의 발자국 밟기

 
내게 이상하고, 난해하고, 괴상한 작품이 평론가에게 극찬을 받는다면? 휴, 역시 예술은 어렵고 난해해. 아니면 어차피 지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하고 말 수도 있다. 내 눈에 파격을 위한 파격 같아 보이는 ‘괴랄함’도 새롭다, 파격이다, 신선하다,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표찰을 받는다. 도서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 표찰을 자박자박 따라가며 소개한다. 그러나 이 책은 예술인을 위한 헌사가 아니다. 평론가의 자만은 더더욱 아니다.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도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주류에서, 전통에서, 통념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을 마냥 난해하게, 괴상하게 보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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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는 차례로 우리 시대의 시각 예술, 과거의 시각 예술, 공연예술을 되짚으며 작가와 작품의 궤적을 좇는다. 서문에서 소개하듯 화가 사울 스타인버그의 말처럼, “어떤 작품이든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에 맞춰진다.” 때론, 관객과 비평가 간의 온도 차가 여기서 발생한다. 작가와 예술이 걸어왔던 길을 꾸준히 주목하는 사람에겐 그 길을 비켜나가는 것이 새로움일 테지만, 예술을 향유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비켜난 기울기가 너무 크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내가 현대무용과 현대미술을 보며 갸웃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란 지도는 그 기울기에 대한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라고 우리를 이끈다. 파격을 위한 파격인지, 새로운 예술의 탄생인지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낯설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작품들은 예술이란 큰길, 그리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예술가들의 내면이 서로 침범하고 교란하여 만든 ‘새로움’이다. (물론 새로운 작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책의 저자는 새로움이 탄생하게 된 배경설화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며, 동시에 이 시도들이 거시적인 사회·예술과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길잡이이다. 우리는 이 발자국들을 차례로 밟으며 새로움에 깃든 창작자들의 삶과 고뇌를 읽어낼 수 있고, 또 그 새로움의 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아무래도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공연예술인지라, 공연예술의 앙팡 테리블을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이 챕터에선 창작자의 고민과 삶보단 관객으로서 향유한 새로움이 주가 된다. 한정된 공연장과 무대를 벗어난 공연예술은 색다른 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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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된 옛 매표소 자리에서 입장권을 건네면, 무선 헤드폰 하나를 받는다. 공연 시작과 함께 헤드폰을 쓰면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가수의 숨결이 하나가 되어 흘러나온다. 관객들은 오페라를 감상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중략)
 
그러다 문득 헤드폰을 벗으면 바로 상대적인 정적에 휩싸인다. 나지막한 소음들로 채워진 일상의 공간 속 어디선가 성악가의 노랫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온다. 그제야 호기심으로 상기된 관객들의 얼굴과 역 안에서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와 충돌한다.
 
(p.263-264 도시의 재발견 : 기차역의 오페라 中)

 
LA의 오페라단 인더스트리가 선보인 오페라 <보이지 않는 도시들Invisible Cities>은 로스앤젤레스 도심 중앙역을 무대로 삼는다. 무대도 객석도 따로 없는 곳에서, 오페라 관객과 일상을 꾸리는 사람들은 섞이고 지나쳐간다. 일상성을 영위하는 공간에서 오페라를 듣고 보고, 또 그 오페라를 듣고 보는 보습을 보고 지나치며 로스앤젤레스의 기차역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우하는 도시를 함축한다. 하나의 공연예술은 제 텍스트를 넘어 기차역의 사람들 즉, 한 도시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유할 수 있도록 확장된다. 객석이 없어도 무대가 따로 없어도 빵을 먹고 통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섞여도. 도시와 사람을 새로 바라보게 만드는 이 공연예술은 정말이지 공연예술다운 품새를 지니고 있다.
 
 
 
애정 어린 안목을 갖추기

  
멀리 LA의 예만은 아니다. 지금도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예술가들의 고통은 곳곳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테다. 머릿속에 수많은 작품들이 올랐다가 내린다. 진부하지 않은 것, 새로운 것을 기다린다던, 관객으로서의 내가 새로움을 향해 이상하다고 침 뱉고 무리수라며 외면해 오진 않았는가. 물론 모든 파격에 고개를 주억거려줄 넓은 아량은 없지만 그래도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순전한 노력엔 손뼉을 쳐줘야 하지 않았었나.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부닥쳐 있고 곧 또 부닥쳐 올 문제아들을, 이 앙팡 테리블들을 어떤 눈으로 봐야 할까. 물론 대답은 가지각색일 거다. 신랄한 비판도, 격려 어린 칭찬도, 평론가로서의 비평도, 관객으로서의 대중적 반응도. 예술을 향한 애정 어린 반응들은 그것이 좋든 싫든 정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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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엔, 이 책을 통해 하나의 답을 찾았다. 1920년대 이십 대 젊은 나이로 미술계를 뒤흔든 ‘앙팡 테리블’, 마르셀 뒤샹과 만 레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던 사람이 있었다. 캐서린 드라이어. 그는 젊은 작가들을 돌보고 그들의 작품을 밖으로 전파하며, 결국 그들의 작품을 후학들의 이정표로 남겨주었다. 그가 보여준 “새로운 예술에 대한 애정”, “긍정적 변화를 보는 안목”,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은 예술을 향유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이정표가 되어준다.
 
무섭다고 도망치지 말고, 두렵다고 외면하지 말고 ‘앙팡 테리블’들의 새로움을 직시하기. 그게 예술이란 큰길에 어떤 샛길을 열어줄지 지켜보기. 작가의 인생과 작품은 어떻게 공명하는지 긍정적으로 살피기. 때론 쓴소리도 필요한 법이지만, 모든 피드백은 애정에서 시작하기. 지도를 덮으며 새롭게 찍은, 관객인 나 나름의 발자국이다.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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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지은이∥최도빈
펴낸곳∥아모르문디
발행일∥2016년 10월 17일
판  형∥153*210
면  수∥282면
정  가∥20,000원
분 야∥예술․미학․예술기행․인문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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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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