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on] 이제는 선택 아닌 필수 : 방송가에 부는 사전제작 시스템 열풍 [기타]

왜 그들은 사전제작 시스템에 주목하는가
글 입력 2018.04.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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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방영한 송중기 송혜교 주연의 <태양의 후예>는 말 그대로 초대박을 터뜨렸다. 태양의 후예의 흥행 성공으로 인해 드라마의 주연들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인기까지도 엄청난 상승세를 찍었으며 문화적 파급력 또한 어마어마하다. 이 드라마의 특이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사전제작드라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태양의 후예>가 최초의 사전제작 드라마는 아니다. 이미 과거에 <비천무>, <사랑해>, <탐나는 도다>, <로드 넘버원> 등 사전제작 드라마가 여러 번 시도되었지만, 시청률 저조 등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시청률의 부진이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지자 방송국에서 사전 제작 프로그램은 기피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 업계에선 사전제작제가 우리 시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는 방송 관계자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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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양의 후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드라마 업계는 발 빠르게 사전제작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벌써 여러 편의 작품들이 사전제작 열풍의 그 뒤를 이었다. 김우빈 수지 주연의 <함부로 애틋하게>, 박서준 박형식 고아라 주연의 <화랑: 더 비기닝>, 이준기 아이유 주연의 <보보경심: 려>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영애의 복귀 작인 <사임당 the Herstory>가 그러하다.
 
 
그렇다면 사전 제작 드라마가
급증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재 방송가가 주목하고 있는
사전제작드라마가 갖는 문제점은 없을까?


  
시간적 여유

 
사전제작드라마는 일단 원고가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기 때문에 소위 ‘쪽 대본’이 갖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가 있다. 배우들은 이미 완성된 대본을 통해 극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더 수월해지며 한 층 더 성숙한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들은 충분한 탈고의 시간을 거쳐 대본을 완성할 수 있고 피디들 또한 그러한 대본을 바탕으로 더 세심한 연출을 할 수 있어 작품의 완성도 자체가 전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또한 사전제작 드라마를 통해서 배우들의 수입은 더욱 폭증할 수 있다. 이전에는 드라마가 아무리 대박이 나서 CF 계약이 몰려 들어와도 드라마가 종영될 때까진 CF 출연이 불가능했다. 드라마 촬영할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CF 촬영 스케줄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전제작시스템의 경우는 다르다. 회를 거듭하며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CF 제안도 늘어날 것이며 이를 충분히 소화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군 입대를 고려중인 남자 배우들에게 사전 제작 드라마는 최고의 카드다. 미리 촬영이 끝나기 때문에 군 입대를 앞두고 휴식기를 가질 수 있으며 군에 입대한 뒤에 방영이 되면 군 공백도 크게 줄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 입대 앞둔 마지막 작품을 선정하는 데 고민을 거듭하는 연예인들이 많다.

 
 
즉각적인 피드백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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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제작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장점 중 하나가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작품과 배우들의 연기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전 제작 드라마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실제 촬영 전 대본을 완성해 놓는 반 사전 제작을 한 ‘치즈 인 더 트랩’이 그렇다. 극중 캐릭터인 ‘백인하’의 연기가 원작인 웹툰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시청자들의 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지막 촬영까지 마친 상태라 시청자들의 반응을 수용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사전 제작 드라마는 트렌드에 뒤처지거나 드라마의 배경이 현재와 달라 흥행에 실패하기도 한다. 2008년 방영된 <비천무>는 무협 장르가 인기를 끌었던 2004년에 제작되었지만 2008년에 방영됨으로써 인기를 끌지 못했고, 2010년 방영된 ‘로드 넘버원’은 드라마의 배경이 한국 전쟁 당시의 겨울이었지만 드라마가 6월에 방영되면서 흥행에 실패하였다. 또, 촬영에 시간제한이 없다보니 다른 드라마보다 촬영 소요시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 비용의 폭이 올라가는 문제점도 있다.
 
  
 
사전제작 시스템 급증의 배경

 
<태양의 후예>의 사전제작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완성도를 위한 결정도 아니었고 해외 촬영을 위해 선택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기존의 작업방식대로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기껏해야 반 사전제작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사전제작을 하면 촬영일수가 늘어나 필연적으로 제작비가 상승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느 누구도 먼저 완전 사전제작으로 가야 한다고 쉽사리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전제작은 한국에서 시도하기엔 힘든 일이었다.

그때 모든 걸 바꿔놓은 건 중국의 강화된 규제 정책이었다. 중국은 외국 드라마 쿼터제를 2014년 9월 공포하고 2015년 4월부터 시행했다. ‘전편 사전심의’ 없이는 한국 드라마를 방영할 수 없다는 지침이었다. 이전까지는 중국에서도 드라마를 한 편씩 실시간으로 방영하는 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드라마가 완결이 나기 전까지는 방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태양의 후예>는 2011년부터 기획되어, 2014년 KBS가 합류하기 전에 이미 중국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와 계약이 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으로 사전심의를 받지 못하면 중국 판권 가격이 1/4 이상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한국에서 드라마가 완결 난 이후 심의를 진행하면 최소 두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이 불법사이트를 통해 중국 시청자들이 이미 드라마를 접할 수 있어 중국 동영상 사이트 입장에서는 판권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전심의를 위해 사전제작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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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사가 100% 사전제작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시장 내 수익구조 다변화로 기존의 방송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제작사는 지상파 의존도가 매우 높다. 방송사가 절대 갑이라 작품에 대한 권리 등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많다. 요즘은 다시보기 수익이 많이 나지만 드라마에 대한 권한이 적은 제작사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제작사들이 먹고 살 궁리를 하다가 주목한 게 바로 중국시장이다.

사전제작을 하면 중국에 비싸게 팔 수 있고, 그 수익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또 방송사와 협상할 때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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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도 있다. 중국에서는 클릭수가 몇 억 뷰 넘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등 수익구조가 여러 개다. 국내 방송사기 제작사에 지불하는 회당 제작비가 낮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방송사보다 중국시장을 겨냥하는 것이 수익구조가 더 나은 것이다. 중국시장에서 대박나면 한국시장에서와 비교했을 때 규모부터 달라지기 때문에 배우나 작가, 감독 등도 중국시장이 매력적이다.
 
사전제작을 하면 중국투자사의 ‘니즈’도 반영가능하다. 중국에서는 드라마를 일종의 마케팅툴로 활용한다. 국내에서도 드라마가 히트하면 출연 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패션, 뷰티 등 관련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이를 온라인 쇼핑과 연동하면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를 비롯한 기업들이 콘텐츠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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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장과의 관계성과 더불어서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급증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하자면, 영상품질에 대한 제작자와 수용자들의 인식변화도 한 몫하고 있다. 방송의 디지털 도입과 함께 다매체‧다채널이 되면서 경쟁이 심화되었는데 특히 드라마 장르가 프로그램 경쟁의 가장 선두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용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제작자들의 근본적인 목적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용자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의 수용자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성향을 볼 때 영상부분의 고품질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작자들은 수용자들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자 한다.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제작시스템의 문제이다. 특히 대본의 지연 문제, 제작비 문제에 의한 사전 협의 체제의 시스템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고품질영상제공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텔레비전드라마의 영상품질 향상을 위해서는 사전제작시스템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점들

    
중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 시청자보다 규모가 큰 중국 시청자의 입맛에 맞춘 콘텐츠가 제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배우 캐스팅에서부터 시작해서 극의 줄거리, 지향하는 가치관 등이 한국 시청자의 정서보다 중국 정서에 맞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 드라마가 한 국가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문화 콘텐츠라는 점에서 한국의 색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인 취향에 부합하는 배우가 출연하고, 중국 시청자를 타겟으로 한 소재의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방송콘텐츠가 국내를 기반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형태가 아닌 중국을 기반으로 국내에 역수입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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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중국에서도 빅히트를 쳐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런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가 전체적인 완성도 역시 높은 드라마냐 하는 문제에는 쉽사리 그렇다는 답을 하기는 힘들다. 총알을 수차례 맞고 피범벅이 되어 심 정지까지 온 환자가 몇 번의 심폐소생술로 눈을 뜬 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돌아다니는 모습은 판타지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그 안에서 리얼리티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리얼리티는 꼭 현실적일 필요는 없으나 작가 스스로 정한 설정자체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드라마의 개연성이고 리얼리티다. 현실에 없는 우르크라는 지역, 그리고 현실에 없는 군인 캐릭터 등은 작가의 상상력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의료진의 자문마저 제대로 구하지 않은 어설픈 설정은 명백한 연출과 대본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전제작 드라마들의 '리얼리티 위반'은 더 아쉽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쪽 대본이 존재할리 없던 사전제작드라마에서 이런 쪽 대본스러운 막장 설정이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충분히 생각하고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전개과정이 어설펐다는 것은 문제 자체가 사전제작에 있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전제작은 분명 한국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전제작 안에서 그만큼의 자기 점검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면 끝으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는 드라마의 결말을 보게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님을 몇몇의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증명하고 있다.


[김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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