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력으로 만드는 가족

글 입력 2018.04.1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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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우리 가족은 저 지경은 아니다.’ 예상대로 승리감과 함께 왠지 씁쓸한 위안까지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함께 본 엄마에게 이런 내 감상을 얘기했더니 실소와 함께 돌아온 대답. “뭐래, 우리도 다 똑같아.”



모두들 이렇게 산다


한 마디로 ‘노 답’ 가족이다. 보고 있자니 고구마 백 개 쯤 먹은듯한 답답함이 밀려든다. 3년 만에 만나서 각자 얘기만 신나게 떠들고, 대화라고는 온통 신경전에 말다툼뿐이다. 만나자마자 다단계 회사의 신제품 치약을 홍보하는 어머니, 이혼하고 나서도 여전히 전 부인의 과민성 신경을 긁어대는 아버지, 끊임없이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설파하며 환경운동 배지를 강매하는 언니, 할 줄 아는 유일한 영어 “유 노 와람 쌔잉~”을 외쳐대며 락 스피릿에만 도취된 오빠. 이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결혼 상대를 소개시켜주려 했던 막내딸의 속은 타들어가기만 한다.

그런데 사실, 과장 조금만 덜어내면 지금 우리 시대의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진 모습 그대로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서로에 대한 무관심, 그로 인한 소통의 부재. 이 삼박자를 고루 갖춘 채 ‘가족’이라는 허울뿐인 이름으로 간신히 묶여있는 관계인 것이다. 분명 옛날 옛적 언제쯤에는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한때는 서로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자식의 입장에서, 한때 가족은 내 세상의 전부였지만 점차 성장하며 내 세상도 더욱 넓어지고, 가족과는 분리된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건, '어쩔 수 없다'와 '그래야 한다'는 아주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해체된 가족이 남기는 상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점점 멀어져가는 가족을 가깝게 끌어당기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되는 이유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 멀어짐이 내 삶의 근간을 흔드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가족 관계가 크게 틀어졌을 때 이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잘못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나는 꿋꿋이 ‘어차피 언젠가는 독립할 건데’라는 자기합리화와 ‘정서적 독립’ 운운하는 자기기만을 유지했다. 실은 가족과 멀어짐으로써 나는 끝없는 불안과 공포에 빠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시 돌아온 가족의 어쩔 수 없는 따뜻함 속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이 극은 막내딸의 목소리를 통해 가족 해체가 남기는 상처를 드러낸다. 자신의 미래 신랑을 초대한 자리니 오늘 딱 하루만 화목한 가족인 척 해달라는 자신의 부탁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쉴 새 없이 다투며 자기 생각만 하는 가족들에게 크게 실망한다. 사실 그는 딱 한 번만이라도, 비록 그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가족과 평범하게 식사하는 척이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울음 섞인 대사에서, 가족과 멀어지면서 그간 가슴에 쌓였던 상처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티는 안 내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 상처를 묻어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힘


도대체 가족이 왜 이렇게 중요한 존재인가? 나는 오로지 함께 한 시간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혈연도, 법적 관계도 중요하지 않다(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유전적·법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관계상의 의미이다. 따라서 본인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족이다). 피로 법으로 묶여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당연하게 묶이는 것은 아니다. 반면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마음을 묶는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시간에 익숙해진다. 그래서 내 삶에 어느 부분이 크고 어느 부분이 작은지 옳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판단착오로 인해 종종 삶의 큰 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가장 연약했을 때 나를 돌봐준 사람, 나와 함께 성장한 사람, 내 곁에서 나의 치부와 과오를 모두 겪은 사람. 내가 이들을 사랑하든 증오하든 상관없이 이들은 이미 시간의 힘으로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하지 않은 드라마


이 극의 장르를 정하자면 가족 드라마이지만 대단히 드라마틱한 부분은 찾기 힘들다. 눈물을 쥐어짜는 장면도 없고, 개그 포인트들도 어딘가 시시하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에 웃고 울고 있다. 이유는 극 중 캐릭터의 현실성이다.

굉장히 전형적인 인간군상에 섬세한 디테일로 숨을 불어넣었다는 점이 이 극의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가족은 가부장적인 부모세대와 가족 해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세대가 공존하는 오늘날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캐릭터 하나하나가 나름의 사연과 개성을 갖고 있다. 알고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유부남인 바람에 상처만 남은 사랑을 지구 환경에 대한 사명감으로 승화시켰다는 언니의 사연, 가족과의 식사에서 하고많은 음식 중 이탈리아 음식을 준비하는 막내딸의 요리세계, 그리고 중간 중간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아버지의 우수한 계산능력과 지식수준. 이러한 디테일은 단순히 보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현실성을 한결 높인다.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디테일, 그리고 그 디테일을 모두 전달하면서도 관객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끔 적절히 정보량을 배치한 대사들에서 작가의 고심과 애정이 느껴지는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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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재미있는 디테일, 끝까지 끝나지 않는 다툼이다. 극적으로 화해한 뒤 결국 집에서의 식사를 포기하고 외식하러 나가면서도 끝까지 서로 티격태격하는 이 가족의 모습에서 영원한 다툼이 없는 만큼 영원한 화해도 없다는 걸 느낀다. 영원한 가족은 없다. 당연한 가족도 없다. 오직 노력으로 만드는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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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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