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음악]

글 입력 2018.04.1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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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고요하면서도 어쩐지 생기가 넘치는 듯한, 진한 파란색 물감을 투명한 물에 융해시킨 듯한, 하늘이 아침 7시만의 색을 내뿜을 때, 나는 집을 나선다. 따뜻한 봄 날이 왔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고개를 들고 있으며 목이 아픈지도 모르고 바라볼 만큼 아름답고 맑은 하늘 빛을 내보내는 그 거대한 공간에 각종 더러움에 이리저리 찌든 내 마음을 정화시키 듯 새하얀 구름들이 때로는 무리를 지어, 때로는 흩어져 놀고 있다. 그 구름들이 역동적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의 하늘빛을 시커먼 어둠이 내쫓는다. 나는 그 때 집으로 돌아온다.

시간의 흐름 만큼, 몸과 마음이 지친 나에게 있어, 같은 하늘, 다른 공간에서 저마다의 몸과 마음을 자의로 혹은 타의로 지치게 했던 이들은 작은 손에 놓인 더 작은 네모 상자만을 바라보면서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한 데 모여있다. 그 안에 풀들이 무성한 초록 공간에 놓인 티나지 않는 잡초처럼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서 있다. 지친 하루의 끝,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이 나에겐 힐링이며, 단조로운 일상에서의 작은 도피이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반기고, 바람마저 따스하고 수줍게 속삭이는 봄 날 제주 바다가 품고 있는 에멜랄드 빛 물결이 잔잔하게 출렁거리며 해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나의 눈에 가득차며 다가오 듯, 요즘 나를 담담하게 위로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고등어의 삶을 이야기 하는 루시드 폴의 <고등어>이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로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나는 또 다시 바다를 가르네
몇 만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나는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

루시드 폴, <고등어> 中


엄마와 아빠가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할 때, 손 쉽게 부담 없이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고등어. 마트 안 생선 코너에 가면, 눈을 뜬 채로 차디 찬 얼음 위에 일렬로 누워 있는 등푸른 생선. 이 하찮은 고등어가 작고 힘 없는 생명체인 고등어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연민도, 어떠한 감정도 없는 우리 인간에게 오늘 하루도 수고 했다고 한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튼튼한 지느러미를 지녔지만 결국 인간의 그물 속으로 헤엄쳐 오게 된 고등어, 죽을 때 눈을 감는 것조차 하지 못했지만 가난한 이들의 저녁 밥상에 스스로 헤엄쳐 간 고등어, 그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는 고등어, 그가 전하는 담담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가 나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어쩌면 이 고등어가 '나'와 같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격식을 갖추어야 할 때,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다 모일 때, 어떠한 뜻 깊은 자리에서, 아직 어린 학생이 첫 월급을 탔을 때 등 찾는 가치 있고 귀중한 음식으로 여겨지는 꽃등심에 비해 가난한 이들도 부담 없이 그냥 아무 때나 집어 들어 장바구니에 툭- 던져버리는 하찮은 음식으로 여겨지는 고등어가 어디서나 눈에 튀거나 반짝반짝 빛나지 못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길을 조용히 묵묵히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무채색인 나와 동질적으로 느껴졌다.

언제부터 였을까. 어렸을 적, 원대한 꿈을 가졌으며, 내면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눈부신 반짝임으로 인해 당당하고 화사했던 내가 이제는 스스로 그 반짝임을 검은 색 천으로 뒤덮고 있다. 너무나 다양하고 수많은 반짝임 앞에서 나의 반짝임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나의 반짝임은 그저 나의 안에서만 빛나는, 여러 반짝임들과 어울리게 될 때면 그저 너무나 평범하게 변하는 그 빛을 잃고 마는 '무채색'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나의 반짝임을 무채색으로 변질시킨다. 튀지 않게. 지극히 평범하게. 남들처럼만 하게. 언제부터 였을까.

그러나 <고등어> 속 고등어는 지극히 겸허한 말투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그저 그물에 잡혀 인간의 밥상에 올라오게 된 하찮고 힘 없는 생선이라는 인식을 가난한 이들의 저녁 밥상을 지켜주고, 그들에게 위로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희생한 생선으로 바꾸어놓는다.

한 인간은 모든 면에서 눈부시게 반짝일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반짝임이 극대화될 수 있는 어느 특정한 영역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비록 하찮은 고등어일지라도, 누군가의 식탁에서는 고마운 존재이다.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고마운, 소중한, 그리고 필요한 존재이다. <고등어>가 건넨 작은 위로의 손길을 나는 오늘도 덜컹거리는 긴 지하철에서 수많은 고등어들의 틈에 껴있는 채로 긴 줄을 통해 전해 받는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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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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