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꽁의 소견]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인간은 왜 외로울까
글 입력 2018.04.30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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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고, 벚꽃도 피었다 졌고, 또 이런 변화를 막연히 보다 보니 꽤 이젠 곁이, 마음이 허전한 것이다. 우습지만, 인간은 참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동물이다.

연인, 혹은 친구나 주변인과 함께 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꽤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하고 바라고 있는 누군가이면서도 가끔은 왠지 외롭고 고독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사무치는 외로움과 고독과 그에 동반된 쓸쓸함을 견뎌왔다. 생각해보면, 그래 생각해보면 '결혼'이라는 것도 '연애'라는 것도, 우리는 외롭지 않기 위한 의례와 약속들을 모양새만 다르게 생산해왔다.

인간이 아무리 '사회적인 동물'이라지만, 꽤 이상한 것이다. 본래 태어나기도 혼자이고, 죽어가기도 혼자일 '우리'들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하다가도 왜 또 우리는 '외로움'과 그 비슷한 '우울함'에 휩쌓이는 걸까. 또 이 것은 시간이 지나고 꽤 많은 날짜를 세어가더라도, 어느 샌가 더 강도 높은 무게로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밤, 덩그러니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적막 속에서 '외로움'이라는 돌멩이에 머리를 맞고, 갑자기 떠오른 물음을 이곳에 가져왔다. '우리의 외로움에 관한 고찰.'
 
오늘의 <민꽁의 소견>에선,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외로움'에 관해 고찰한다.


이번의 물음, 인간은 왜 외로울까.


아마도, '함께 해본 경험'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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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3 中


그런 말이 있다. 평생 혼자였던 사람은, 외로움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딱 그 모양인 것이다. 우리는 혼자로 지내기 이전, 누군가와 '함께'였던 경험이 있다. 애인이라던가, 혹은 보호자, 형제라던가 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관계를 맺고 함께여왔다.

'혼자'인 것이 불완전하고, 꼭 함께여야 한다며 '왜 애인 없으세요?'등의 이야기를 건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는 그 자체로 만족스럽고, 그 자체로 행복하기도 하다. 하지만 '함께'와 '혼자'의 만족감의 종류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함께'의 느낌이, 그 따뜻함이 그리울때다.

'함께'라는 것은 물론, 보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도 종종 수반하는 무언가지만, 또 '함께'만이 줄 수 있는 그 온기와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혼자'는 너무 차갑고, '함께'는 너무 뜨겁다. 하지만 왠지 우리는 차가운 세상에서 차가움을 지속적으로 느끼다보면, 꽤 그 뜨거움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해 본 경험이 있기에, 그 온기를 그리워한다. 아예 몰랐으면 좋았을텐데, 그 ‘함께’가 누구와 공유되는 것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단 ‘함께’라는 것의 따뜻함과 온기, 그리고 그 든든함이 좋은 것이다.
 


아마도 ,'나누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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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中
   

인간은 꽤 나누기를 좋아해왔던 것 같다. 원숭이와도 같던 우리의 옛날 모습에서부터, 우리는 꽤 나누기를 즐겼다. 그것이 필요에 의한 것이든, 혹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일어난 ‘나눔’이든, 우리는 무언가를 나누고 나눠왔다. 음식을 나누고, 힘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이든 나눠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힘들어 진 것이다. 우리네의 지금 사회 모습은, 꽤 옛날과 달라져 있어서, 쉽사리 무언가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굳이 함께 될 일이 없기에, 우리는 다른 누군가와의 접촉조차 나누기 쉽지 않아졌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또 일상과 같은 자신의 무언가를 누군가와 나누어 갖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SNS가 이렇게 열화와 같은 인기를 얻었던 것은, 그만큼 SNS가 우리의 ‘나누고자’하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무언가였기 때문이다. 꽤 나름대로의 힘든 일상을 지내고 있는 우리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 이야기를, 일상 속의 짜증을, 혹은 기쁨을 누군가와 나눠 갖고 싶다. ‘나눔’의 욕구의 불충족이란, 꽤 외롭고 절망스러운 것이다.



결국엔, '불완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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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中


결국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불완전’하기 때문인 것이다. 유명한 책 <자존감 수업>의 저자 윤홍길 작가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외로움도 덜 느낀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은 ‘자아’가 두사람인것처럼 행동하고 사고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혼자 놀아도, 혹은 혼자 여행을 가도 외롭지가 않다. 자신과 함께 노는 일이기에 그렇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완전함의 척도는 아니더라도, 윤홍길 작가의 책 속의 말은 꽤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있는 말같다. 자존감이라는 것과 외로움이라는 것은 감정 중 하나이고, 그래서 비슷하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혼자 노는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그렇게 즐겁지 않고, 더 대단한 감정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 이전에 우리가 우리의 ‘불완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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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무언가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채워주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 앞의 사진을 보고, 우리는 불편함을 느꼈다. 왠지 완전해야 편하고, 조금 더 채워지고 완벽해져야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완전하지 못한 동물이다. 아마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무언가를 보았을 때, 무언가를 부어 넣고 싶어지는 우리는, 우리의 불완전함에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아마 그리고, 우리는 막연하게 나마 그 ‘부어넣어야 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무언가임을 알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외롭고, 그래서 조금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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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中


우리는, 결국 함께 해본 경험이 있어서,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서, 그리고 외로워서 그런 종류의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밤의, 새벽의, 혹은 한낮에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껴왔다.
 
이 글의 끝에서, 말을 걸고 싶다. 당신은 외로우신가요? 당신이 빨리 그 외로움을 벗어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라기보다는, 그저 혼자만의 완전함을 향해 달려가서, 그러다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잊어버리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마 외로움이라는 글자와 감정을, 완벽히 잊어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더라도, 혹은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더라도 계속 ‘외로움’이라는 크레바스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필자의 경우엔 외로움이라는 것은, 꽤 다른 무언가를 하게 찾아나서는 감정들이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외롭지만, 또 내일은 ‘외롭지’ 않으려고 어딘가로 나가고 향할 것 같다. 적당한 외로움은 괜찮다. 다만 그 속에 당신이 너무 빠져, 오래 고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다면, 조금은 외로워지시길. 괜한 필자의 심술이 맞다.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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