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5] 언니네 이발관 2집, '후일담' (Remastered)

글 입력 2018.04.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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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후일담'


순간의 영원한 기억처럼,
그들을 닮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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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것들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고, 이 앨범은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층층이 자살을 암시하는 사람들이 그려진 앨범 커버와는 달리 사실 암울하지만은 않은 수록곡들.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누군가의 카세트테이프 안에서 분명히 청춘으로 자리 잡고 있을 앨범. 바로 언니네 이발관의 2집, ‘후일담’이다.

    
 
# ‘후일담’에 대한 후일담


2017년 6월,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 6집 ‘홀로 있는 사람들’의 발매 소식과 비슷하게 접하게 된 이야기가 ‘후일담’ 리마스터링 앨범 발매 소식이었다. 뮤지션에 대한 막연한 애정으로 당연하게도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리마스터링된 앨범에는 아티스트의 참여가 전혀 없었다는 점과 몇몇 트랙의 일부 부분이 삭제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 후 자연스럽게 관심이 줄어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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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 알았는데. 기다릴 것이 없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삶은 참 무료하더라. 아, 그들의 긴 자취를 쫓아가기에 나는 너무도 어리고 보잘 것 없는 사람. 작가 이석원도 좋지만 더 이상 보기 힘들 음악인으로서의 면모가 그리웠다. 그리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음악 목록 사이에서 떠올랐던 것이 기억의 끄트머리에 있던 ‘후일담’ 이었다.

 
 
# 어제 만난 슈팅스타


1998년에 발매된 언니네이발관의 2집 ‘후일담’은 아이러니하게도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보다도 오히려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1집의 높았던 반응과 시기적인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2집은 20년이 지나 리마스터링될 만큼 매니아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보컬 이석원을 비롯해 지금은 ‘가을방학’과 ‘줄리아 하트’에서 정바비로 활동 중인 정대욱, 이석원의 친구이자 멘토가 되어 주었던 원년 멤버 이상문까지. 멤버들의 조화뿐만 아니라 음악 전문가들이 꼽은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2번이나 선정될 정도라면, 모르긴 몰라도 결과와는 상관없이 12개의 트랙에 쏟긴 노력이 가늠될 것이다.
 
모든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필체가 있는 것처럼, 나는 뮤지션에게도 그들만이 가진 고유한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일상의 허무함을 담백하게 노래하는 아티스트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는, 언니네 이발관은 비교적 최근 앨범인 5집과 (발매하고 10년이 지났으니 최근이라 하기에는 사실 무리가 있겠다.) 6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20년 전의 ‘후일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았던 날들을 회상하면서도 다가올 알 수 없는 날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2번 트랙 ‘어제 만난 슈팅스타’는 몽환적인 사운드로 일상적인 헛헛함을 극대화시킨 음악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기도 하다.


 

그리운 마음이 있어 너를 볼 때면
허전한 마음이 있어 그 곳에 서면
미래를 보네 볼 수가 없는,
보고 싶지만 할 수가 없는 것들


후반부 기타솔로 부분에 가사를 넣을 것인지, 뺄 것인지 고민하는 것으로 2주를 보냈다던 에피소드가 있는 만큼, 들을 때면 노래에 들인 뮤지션의 노력이 귀에 음표로 다가오는 기분이다. 처음 들을 때보다는 여러 번 곱씹어 들을수록, 그리고 도입부보다는 후반부로 치닿을 수록 매력이 드러나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놓쳐버린 언니네 이발관의 모든 무대가 아쉽지만, 라이브로 듣지 못해서 가장 아쉬운 노래이기도 하다.

    

# 무명택시, 인생의 별, 청승고백


8번 트랙 ‘무명택시’는 본 적이 없는 그 시대의 청춘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내가 20년을 빨리 태어났더라도 고샅고샅 음악을 찾아듣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고, ‘후일담’이 그 시대에 아무리 흥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노래는 분명 좋아했을 것이다. ‘어디쯤에- 푸른 날은 있을까-’ 강한 사운드를 뚫고 들리는 헛헛한 노랫말은 내내 귓가를 맴돈다.

‘알라의 뜻에 모든 걸 맡기라’는 뜻의 연주곡 ‘인샬라’로 신비로움을 더하며 쉬어간 후, 트랙은 ‘인생의 별’과 ‘청승고백’으로 이어지며 더욱 다채롭게 진행된다. 특히 청승고백은 7분이 넘는 곡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후반부 악기 사운드를 들으면서 역시나 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쩔 수 없는 후회를 늘어놓아야만 했다.
 
빛이 바란 종이에 덤덤하게 쓰여 있는 가사말들과 아티스트의 사진 대신 채워진, 의미를 고민해보게 만드는 삽화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투박하게 나열해놓은 Thanks to에, CD를 고샅고샅 채우고 있는 보석같은 노래들까지. 현재의 그것들처럼 트렌디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묻어있는 아날로그한 분위기가 참 따뜻했다. 음악은, 하나의 결과물은 결국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닮아있나보다. 그래서 언니네 이발관의 그것은 처연하며 예민하고, 또 때로는 너무 섬세하다.
 
 

# 역시나, 사랑과 삶을 노래해온 보통의 존재들


‘아마추어리즘’이 하나의 매력이 되었던 1집에 반해,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했던 발매 당시의 반응에 비해 2집 ‘후일담’은 매우 잘 만들어진 명반이라는 평이 많다. 그랬기에 상업적인 결과와는 별개로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고, 20년이 지나서 다시 사람들에게 찾아올 수 있었겠지. 어쩌면 ‘후일담’은 언니네 이발관이 이야기하는 노래의 본격적인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98년도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바쳤던 노래 ‘꿈의 팝송’은 6년 후 4집 ‘순간을 믿어요’에서 역동적인 분위기로 리메이크되었고, ‘어떤 날’은 아이유가 피쳐링으로 참여했던 곡 ‘누구나 아는 비밀’과 가사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번. 참 한결같았구나, 싶었다. 지나온 날을 아파하지 않고, 다가올 순간들을 기대하지 않은 채 묵묵히 오늘을 살아나가는 보통의 존재들.

영원한 건 없지만 순간은 영원하다. ‘후일담’은 자신의 10대를 관통했던 앨범이라는 혹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흐릿한 순간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건 모름지기 음악이 가진 분명한 힘일 것이다. 한 작사가는, 인생의 어떤 부분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명곡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20대 중 하나의 편린으로 자리 잡을 이 앨범 역시나 언제 들어도 좋을 앨범으로 남을 것 같다. 정말로, 언제 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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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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