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고도를 기다리며'가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 [공연]

글 입력 2018.04.2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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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발표된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표적인 '부조리극'이다. 우선, 이 작품은 일반적인 희곡의 서사구조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다.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하릴없이 오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내용이 전부다. 기승전결도, 논리도 없다. 대체 이들이 고도를 왜 기다리는지, 얼마나 기다릴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고도가 무엇인지조차 밝혀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른채 연극을 본다면 '이게 대체 뭐야?'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허무해보이는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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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uel Beckett
 

이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 작가 자신이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숨어 살던 피신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1953년이라는 연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이 발표된 당시는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기존 가치와 질서가 모두 부정되던 시대였다. 모두가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믿었던 가치들이 한순간에 파괴되면서, 인간 본질에 대한 회의주의, 허무주의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허무를 맞닥뜨린 작가가 '비논리'를 통해 던지는 인간에 대한 질문은, 지금 2018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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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떤 정해진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객마다 제각기 다른 의미를 지닐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체도 모르는 고도를 계속해서 기다린다는 이 주인공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현대인의 삶으로 읽힌다.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무의미한 것들로 현재를 때워나가는 인물들의 일상은 어쩐지 지금의 나를 비판하는 듯하다. 사회는 현재 네 삶을 투자하고 조금 더 인내하면 보다 더 나은 미래-고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유의미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고도'를 위한 일들로 현재를 채우라고 한다.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을 갈 것이고, 스펙 경쟁을 열심히 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할 것이고, 열심히 일하면 좋은 집을 살 것이다-는 기대들은 현대 사회의 끝없는, 공허한 고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착실히 고도를 기다리며 온갖 노력을 다해도 고도가 진정 올 것인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대체 그 기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누군가가 말하는 '더 나은 내일'이 정말 '나'라는 사람에게도 더 나은 내일이 될 것인지, 혹시 그것이 획일적이고 무의미한 외침이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타인이 말하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내 삶의 의미 자체를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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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극단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탄생하였고, 이 작품을 통해 성장하였다. 처음 만나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극단 산울림이 보여줄 연극과, 극이 지닌 빈 공간을 나 자신이 어떻게 마주하게 될지 기다려진다.


< 공연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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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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