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선의 여성은 누가 죽였나 ⓵ [문화 전반]

삼강행실도 열녀편을 통해 알아보는 조선의 열녀 이데올로기
글 입력 2018.04.2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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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는 조선 세종 때 우리나라와 중국의 충신, 효자, 열녀의 이야기를 모아 만든 일종의 윤리서적이다. 효자도, 충신도, 열녀도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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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많은 사람이 삼강행실도를 단순히 윤리책으로만 알고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강행실도가 강조하는 유교적 이념이 얼마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열녀편에서 그 잔인함이 극에 달한다.

삼강행실도 3부작에서 여성은 열녀편에서만 등장할 뿐, 효자도와 충신도에서는 여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열녀편에 나타난 유교적 덕목이 당시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여성은 누가 죽였나


이 글의 제목을 ‘조선의 여성은 누가 죽였나'라고 지은 이유는, 열녀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던 조선의 지배계층이 여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죽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의 지배계층은 물론 양반이며,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해 본다면 남성이다.


조선의 지배계층은 과연
어떤 여성을 열녀라고 불렀을까?

함께 열녀편을 읽어보자.


혜사현(惠士玄)의 아내 왕씨(王氏)는 대도(大都) 사람이다. 혜사현의 병이 위독하여지자, 왕씨가 말하기를, “나는 들으니, 앓는 사람의 똥이 쓰면 병이 낫는다더라.” 하며, 그 똥을 맛보았는데 매우 달므로 왕씨의 낯빛이 더욱 근심스러워졌다. 혜사현이 왕씨에게 부탁하기를, “내 병은 반드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전첩이 낳은 자식을 그대가 잘 보호하고, 이 자식이 좀 자라거든 그대 마음대로 시집가오.” 하니, 왕씨가 울며 말하기를, “임자가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십니까?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나의 도리로는 죽어야 마땅한데 다시 다른 말이 있겠습니까? 임자에게 형수가 있으니, 이 아이는 갈 곳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며칠 뒤에 혜사현이 죽으니, 왕씨가 묘 곁에 있으면서 머리를 빗질하지 앓고 세수도 하지 않고서 애통하기를, 예(禮)에 넘게 하고, 항상 첩의 자식을 좌우에 두고 음식과 춥고 더운 것들을 오직 잘 보살피지 못할세라 염려하였다. 일년 남짓하여 첩의 자식도 죽으니, 울며 말하기를, “다시는 바랄 것이 없다.” 하고, 여러 번 칼을 가지고 자살하려 하였으나, 식구들이 급히 구제하여 면하였다.

상기(喪期)를 마칠 때에 친구들이 모두 술을 가지고 와서 혜사현의 무덤에 제사하고, 제사가 끝나자 여러 사람이 술잔을 돌려 마시려고 하는데, 왕씨는 이미 나무에 목매어 죽었다.

<왕씨가 목매어 죽다. 원나라 王氏經死 元> 전문


삼강행실도에 담긴 이야기들은 아주 긴 내용을 짧게 요약해놓은 것이다. 따라서 문장 사이사이에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을 수밖에 없다. <왕씨가 목매어 죽다>에도 분명 숨겨진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왕씨가 목매어 죽다. 원나라>의 왕씨는 남편이 죽자 애통해하다가 첩의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일 년 뒤 첩의 자식이 세상을 떠나자 왕씨는 제사를 마친 후 자살한다. 이 이야기를 언뜻 보면 단순히 남편과 시댁에 목숨 바쳐 헌신하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왕씨가 죽음을 택하기까지의 사고를 돌아보면 왕씨의 죽음은 오롯이 자의에 의한 선택이라고 볼 수 없는 지점들이 분명히 드러난다.





1. 아내는 아픈 남편을 위해 남편의 똥을 맛보아야 했다.

2. 아내는 남편이 죽은 뒤 남편과 첩 사이에 생긴 자식도 기꺼이 돌보아야 했다.

3. 첩의 자식이 자라면 아내는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과연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을까?).

4.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것이 아내의 도리로 여겨졌다.

5. 첩의 자식이 죽고 왕씨도 자살하려고 했으나, 식구들이 구제하여 죽을 수 없었다.

6. 그러나 자식의 제사가 끝난 뒤에는 자살할 수 있었다.





왕씨는 왜 죽지 못했을까? 혹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이 이야기에서 왕씨의 존재는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된다. 첫 번째는 ‘혜사현(惠士玄)의 아내’이다. 왕씨는 남편의 병이 위독해지자 똥을 맛보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머리를 빗질하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고서 애통해하여 아내의 도리를 다한다. 두 번째는 ‘어머니’이다. 왕씨는 첩의 자식을 남편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세 번째는 ‘집안의 무급 노동자’이다. 집안에 제사가 있을 때 자기 몫을 다한 뒤에야 나무에 목을 매어 죽는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왕씨는 열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무언가 이상한 지점이 보이지 않는가?

남편의 똥을 맛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왕씨는 남편과 첩 사이에 생긴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왜 그래야 했을까? 왕씨는 첩의 자식이 죽자 자살하려고 했다.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여성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왕씨는 생존을 위해 첩의 자식을 키워야만 했던 것이다.

왕씨는 첩의 자식이 죽은 후 자살시도를 했지만 식구들이 구제하여 죽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첩의 자식의 제사가 끝난 후에는 자살에 성공(?)한다. 제사가 끝나기 전에는 왕씨의 자살을 ‘여러 번’이나 말릴 수 있었던 식구들이, 제사가 끝난 후에는 왕씨의 자살을 말리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과연 식구들은 왕씨의 자살을 끝내 말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제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위해 제사 기간동안만 왕씨를 살려둔 것인지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씨는 여성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까, 아니면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끝나고 마침내 제사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서의 역할마저 끝난 뒤 존재 가치를 상실해 죽어야만 했던 것일까.

당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특히 여성들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손님을 맞이해야 하고, 제사에 필요한 음식을 장만해야 했다. 이땐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집안의 여성이 쉴 틈 없이 음식을 해 날라야 했다. 만약 왕씨가 제사 전에 목숨을 끊었더라면 제사 기간 동안 음식을 하고 일을 할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남성은 부엌에 발도 들이지 않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왕씨의 식구들은 제사 전에는 왕씨의 자살을 말리다가, 제사가 끝난 뒤에는 왕씨의 자살을 내버려 두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남편의 똥을 맛보면서까지 남편을 위해 헌신하다가, 남편이 죽은 뒤에는 남편과 첩의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첩의 자식이 죽은 후에는 제사를 치루기 위해 온갖 일을 도맡아 하다가, 더 이상 아내로, 어머니로, 노동자로 존재할 수 없을 때 목숨을 끊어야 했던 왕씨의 이야기가 바로 당시 조선이 여성에게 요구하던 유교적 이념의 집합체다. 죽을 때까지 타인을 위해 일을 하다가, 가족을 잃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집안의 음식이나 재산을 소비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죽어야 하는 삶, 이것이 바로 조선의 지배계층 남성이 여성에게 가했던 ‘열녀 이데올로기'의 폭력 중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열녀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
현대 사회에 남아 있는 열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의 여성은 누가 죽였나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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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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