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인간을 묻습니다, 연극 '공포'

“안톤 체홉은 왜 병든 몸을 이끌고 사할린에 갔을까?”
글 입력 2018.04.25 20: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2.jpg
 

[PREVIEW]
인간을 묻습니다, 연극 <공포>


한창 마음이 아프고 복잡할 때가 있었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어렵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과거가 끝을 알 수 없는 늪처럼 정신을 삼켜버리던 시기. 다가오는 미래가 두렵고, 새로운 매일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에 지치던 시기. 하는 수 없이 S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우울한 마음을 토해냈다. 사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공포 그 자체라고. S는 내게 매우 싸늘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누구나 다 그렇다”고 답했다. 위로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말은 오히려 삶을 더 무섭게 만들었다. 누구나 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냐고, 인간은 왜 삶을 지속하는 것이냐고, 차라리 모두 다 죽는 게 맘 편치 않겠냐고 나는 매섭게, 한편으로는 의미 없게 대꾸했다. S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답을 찾지 못한 채 울고 마는 내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어쩌면 S는 이런 질문을 나보다 먼저 겪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한 것은 나도, S도. 지금까지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체홉의 작품 속 인물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다. 매일 이 고민과 싸우진 않더라도, 적어도 보고 있는 우리에게 하여금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근심, 고민, 연민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더 깊숙이 들어가 본질과 성격을 꼬치꼬치 묻는다. 우리는 왜 사는지, 삶이란 무엇인지. 역시 답을 내주진 않는다. 다만 계속 파고들 뿐이다. 갈망하는 것은 서로 마주하지 않는다. 우울한 독백과 실패, 깊은 병이 작품을 감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체홉의 작품은 정말 처절할만큼 현실적으로 삶과 인간을 그려냈다.

그런 체홉극의 ‘정수’라 할 만한 작품이 나타났다. 연극 <공포>다.


시놉시스

사할린, 유배지로 악명 높은 러시아 변방의 섬. 극중 주인공 안톤 체홉은 험난한 사할린 여행에서 돌아와 농장을 경영하는 친구 실린의 집을 방문한다. 결혼 전 배우 생활을 했던 실린의 아내 마리는 체홉을 반갑게 맞이한다.

체홉의 방문에 잇따라 실린의 집을 방문한 조시마 신부는 실린의 집에서 쫒겨난 하인 가브릴라를 다시 맡아달라 부탁한다. 차갑게 거절하는 마리. 조시마 신부는 가브릴라와 자신의 특별한 인연을 얘기한다. 때마침 돌아온 실린은 마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브릴라를 집으로 받아들인다.

실린과 체홉, 마리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실린은 체홉에게 기이한 내기를 제안한다.


괜히 체홉극의 ‘정수’라 부르는 게 아니다. 이 연극은 ‘진정한 체홉극’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부터가 ‘체홉’이기 때문이다. 안톤 체홉이 사할린 여행 이후 발표한 단편소설 <공포>와 체홉의 사할린 경험이 독특한 상상력으로 묶인 ‘창작 체홉극’인 것이다.


“안톤 체홉은 왜 병든 몸을 이끌고
사할린에 갔을까?”

얼어붙은 대지와,
몰아치는 바다와,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의 그림자만
하염없이 일렁이는,
신(神)조차 눈을 감아버린 그곳에.


체홉의 작품과 마주할 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체홉도 나처럼, 혹은 S처럼 답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매번 오답만 떠오르는 삶 속, 관객 중 구원자라도 나타나 해결해주길 바라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고민 자체의 중요성을 나누려는 못된 괴짜인 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질문이든 고민이든 답이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체홉에 대한 그 수많은 의심을 이 극에서 풀어내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작품이다. 더구나 인상깊게 관극한 <고발자들>의 극단 그린피그 작품이라는 것에 큰 믿음이 간다.

신조차 눈을 감아버린 이 극한의 삶. 인간은 무엇이고, 또 삶이란 어떤 공포인지. 그리고 죽음은 또 어떤 존재인지. 연극 <공포>를 통해 그 깊은 본질을 들여다보고 오겠다.





공포-그린피그-공연사진1.jpg


<공포> 공연 소개_

1890년 4월, 자신의 문학적 이름이 막 세상에 알려지기 시점에 안톤 체홉은 모든 문학 활동을 접어둔 채 유형지인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3개월에 걸친 여행 끝에 사할린 섬에 도착한 체홉은 유형지의 실태를 상세하게 시찰한 후 8개월 뒤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 해 사할린에서의 조사 활동에 대한 보고서인 <사할린 섬>을 집필한다.

이 여행 이후 체호프의 작품들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적인 연민과 우수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초기작들과 다르지 않으나, 희극적인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고,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나 실존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극은 안톤 체홉이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후 발표한 단편소설 <공포>를 바탕으로 소설 속 화자인 ‘나’를 ‘안톤 체홉’이라 설정하여 희곡으로 새롭게 구성한 작품이다.

<공포>의 등장인물 모두는 삶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진부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의 행동 때문에 현재에 고통 받고 있지만, 고통의 원인이 되었던 과거의 행동에 아직도 취해 있다. 이 삶을 끝내는 방법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 체홉의 말대로 “삶이 생활의 고통에 대한 보답으로 끝나거나 오페라처럼 갈채를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왜 우리는 당장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연극적 탐구가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다.


공포-그린피그-공연사진6.jpg


<공포> 기획의도_

작가 고재귀가 이 극을 쓰게 된 이유는 근대적 인간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서다.
 
19세기말, 20세기 초 러시아의 지식인이 보여주는 솔직한 인간성은 삭막하게 개체화된 21세기 대한민국의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 보여주는 깊은 동정과, 욕망을 바라보는 차디찬 이성, 그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연약함.. 이들이야말로 진실치 못한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근대적 인간의 모습이며, 19세기말 러시아와 21세기 초 우리 사이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인간성에 대한 진솔한 물음과 대답이다.


공포_웹상세_700PX_최종.jpg
 




공포
- 제39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


일자 : 2018.05.04(금) ~ 05.13(일)

시간
평일 8시
토 3시, 7시
일 3시
월 쉼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0,000원

제작
그린피그

주최
서울연극협회

주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관람연령
만 12세이상

공연시간
135분




문의
그린피그
02-742-7563






f496cc8c8fd35358470fe70dbdf986ea_hghwKp658J6ar3.jpg


[이주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