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畵談)] 제 4 화(畵) : 두려움, 검정으로 화(化)하다

죽음, 분리, 트라우마의 검정
글 입력 2018.04.2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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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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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괴담' 포스터 ]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공포물은 애니메이션 ‘학교 괴담’이다. 일본에서는 2000~2001년 우리 나라에서는 2002년에 더빙 방영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는 더 겁이 많았기 때문에, 초등학생 형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함께 벌벌 떨며 만화를 보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몇 에피소드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바바사레’, 한국어로 ‘가라귀신’이라 번역된 요괴의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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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라귀신' ](지금봐도 무섭다)


 ‘가라귀신’은 누더기를 걸친 노파의 모습을 하고 낫을 휘두르는 요괴다. 혼자 집을 지키는 아이들을 찾아가 부모나 지인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속이고 해친다. 주인공 일행은 뜨거운 물이 약점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까지는 성공하지만, 봉인에는 실패한다. ‘학교 괴담’ 전체 스토리 중 봉인에 실패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지금도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요괴의 존재 자체가 내 감정에 달려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가라귀신’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아이들 눈에만 보인다. ‘가라귀신’의 존재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무서워하지 않으면 돼’라는 말만큼 불안한 말이 어디 있을까. 나는 이미 그 요괴의 모습을 TV에서 보고 기억했는데. ‘귀신’이라는 단 한 번도 실제로 목격하지 못한 존재를 생각할 때 낫, 누더기, 비행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 데에는 분명 ‘가라귀신’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들이 어떻게 보이나?

그것들은 왜, 어떻게 당신을
두렵게 만드는 것일까?




1. 죽음 –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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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rnica, Pablo Picasso, oil on canvas, 1937 ]


흑백의 단조로움 속에 모두의 울부짖음이 담겨 있다. 여인은 힘이 빠진 아이의 목을 부둥켜 안은 채로, 쓰러진 용사는 부러진 검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로, 도망치려 하지만 도망치지 못한 채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가며, 짐승들 역시 두려워하는 것. 죽음의 현장을 두려워하는 울부짖음이 그림에 가득하다.

그림은 1937년 4월 26일 발생한 게르니카 공습을 배경으로 한다. 스페인 내전 중, 공화주의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주요 근거지인 게르니카 일대를 폭격한 사건이다. 주변의 교량과 도로를 타격해 공화주의자들의 보급과 병력 이동에 지장을 준다는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마을 중심부를 2시간 넘게 폭격했다. 정확한 사망자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적게는 250, 많게는 1,6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성인 남성들이 대부분 전선에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피해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집중됐다. 공화주의자들에게 잔인한 폭격을 통해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 마을 중심부를 타격했다는 해석이 가장 많다.

역사적인 사건이 예술의 소재로 쓰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게르니카 공습 역시 다른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진 경우도 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지닌 차별점은 흑백 단색조와 사실적인 묘사를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가 낭자하고, 시체가 널린 학살의 현장은 사실적인 묘사가 더 설득력 있을 것 같지만, 전쟁의 본질적 비극성을 느끼게 하는 그림으로는 피카소의 그림이 더 적합하다. 그림 전반에 깔린 검정은 죽음의 현장을 강조하면서 인류에게 양심의 행방을 묻는다. 20세기 미술의 대표 아이콘으로 ‘게르니카’가 꼽히는 이유는 탁월한 조형적 성취는 물론, 인류의 양심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2. 분리 – 에곤 실레, 죽음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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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ath and the Maiden, Egon Schiele, oil paint, 1915-6 ]


한 쌍의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다. 있는 힘껏 안기고 있는 소녀. 몸을 기울여 체중을 싣고, 그 가녀린 팔로 남자를 꼭 껴안으려 한다. 소녀를 안은 듯도, 밀쳐내는 듯도 보이는 검은 남자. 제목에 따르면 남자는 죽음인데 마치 자기가 죽음을 본 것처럼 그의 표정은 굳어 있다. 소녀를 떠나는 것이 두렵지만 자신을 죽음이라 칭하며 이별을 합리화하려 한 화가의 표정인가.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작가다. 죽음에 대한 공포, 관능적 욕망 등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들추어 실존에 대한 고민을 기울이게 만드는 그림들을 주로 그렸다. 표현을 위해 그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인간의 육체였다.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거칠게 묘사하는 것이 그의 표현 방식이었다. ‘죽음과 소녀’는 실레 자신과 연인인 ‘발레 노이칠’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실레의 스승인 클림트가 실레에게 17살의 모델인 노이칠을 소개해준다. 둘은 사랑에 빠져 동거했고, 노이칠은 헌신적으로 실레를 보살폈다. 하지만 실레는 노이칠과 가정을 이룰 생각은 없었다. 실레는 노이칠 대신 반듯한 부모 밑에서 교양 있게 자란 에디트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죽음과 소녀’는 실레와 노이칠의 이별을 표현하는 그림으로 해석된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불안은 엄마와 떨어져 느끼는 분리 불안이다. 생후 7~8개월경에 시작하는 분리 불안은 대상이 바뀔 뿐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애착을 가진 대상과 떨어짐으로 생기는 불유쾌한 신체적, 심리적 상태를 분리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 가족, 친구, 연인 등 애정을 주고 받는 대상과 분리되는 상황은 인간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상황 중 하나다. ‘죽음과 소녀’에는 자신이 선택한 이별임에도 연인과의 마지막을 두려워하는 감정이 무엇도 담기지 않은 검은 눈동자에 표현됐다.




3. 트라우마 – 르네 마그리트, 거대한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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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itanic Days, Rene Magriite, oil on canvas, 1928 ]


벗고 있는 여자를 더듬는 손이 있다. 아연실색한 그녀의 표정에 나까지 덜컥 겁이 난다. 밀려고 하지만 밀리지 않는 손은 끈질기게 여자의 몸을 더듬는다. 존재 자체가 허구인 듯, 그러나 떨쳐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어디까지, 언제까지 엉겨붙을 지 모르겠다는 점이 가장 무섭다.

초현실주의 작가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는 이 그림을 강간의 현장을 그린 것이라 설명했다. 성별을 떠나 마음을 허락하지 않은 존재가 내 몸을 지배하려는 충격적인 순간. 상처로 남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영구적인 정신적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일컫는데, 대표적인 사건으로 전쟁 또는 전투, 아동기의 학대, 성적 혹은 신체적 공격 등이 있다.

세상에는 두려워할 만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사람에 따라 두려워할 상황과 대상이 다르고, 두려움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지 않나? 내 인생에서 최악이었던 경험, 무서웠던 상황 같은 것들. 그림 속 검은 남자처럼 나에게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는 어두운 상처가. 떠올리는 것만으로 지긋지긋할지라도, 트라우마는 쉽게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4. 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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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Still Life, Pieter Claesz, oil on canvas, 1630]


검정죽음을 상징한다. 검정은 이면에 있는 것을 감추고, 모든 색을 덮는다는 점에서 죽음과 유사하다. 죽음은 생물에게는 가장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신체적으로는 고통이 위험 신호를 담당한다면, 감정적으로는 두려움이 위험 신호의 역할을 하여 죽음을 경계한다. 두려움은 임박한 위협이나 위험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라 정의할 수 있다. 같은 위험이나 위협에 대해 두려움의 정도에 따라 적당한 두려움이 있을 경우 투쟁, 심한 두려움이 있을 경우 도피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며, 얼어붙는 듯이 멈춰서는 반응을 추가할 수도 있다.

‘게르니카’는 죽음, 특히 대량 학살의 공포와 두려움을 검정의 단색조로 표현하고 있다. 저런 두려운 상황을 다시 만들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죽음과 소녀’는 연인과의 이별을 앞둔 화가 자신의 두려움을 검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검은 눈동자에 어려있는 것은 보는 이에 따라 두려움, 죄책감, 슬픔 등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나 나는 두려움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는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두려운 상황을 묘사한다. 가해자, 상처, 우울 등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남자를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여름철 끈적하게 녹은 타르처럼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효과적으로 드러났다.

감정의 가치는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향한 위협에 피할지, 맞설지를 결정하는 것은 두려움의 정도에 달려 있다. 위협에 대응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은 아주 중요한 감정이다. 물론 위험 신호를 아무 때나 울린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두려움이 얼마나 나를 지켜주었던가. 내가 무서워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거나 고개를 돌릴 수 있게 해주었고, 맞설 수 있는 형태의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으며, 막상 맞섰을 때 별거 아닌 상황도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두려워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두려움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두려움과 긍정적으로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도서]

감정의 재발견, 조반니 프린체르, 프런티어, 2013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 아트북스, 2009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나카노 코쿄, 이봄, 2012





[다음 화(畵) 예고]

제 4.5화(畵) - 두려움, 다르게 화(化)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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