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꾸로 가는 남자 : I am not an easy man 2018 [영화]

쉽지 않은 남자가 되고 싶다.
글 입력 2018.04.28 14:0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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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남자


남성우월주의자 다미앵이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깨어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흔히 들어봤을 소재지만 정작 흔하지 않은 소재, 장르는 위트와 로맨틱이다. 남녀 위치가 뒤바뀌고 일어나는 상황들이 웃기긴 웃겼다. 초반에만. 영화는 중반부터 끝날 때까지 지독했다.

 나는 섣불리 여성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여자로 살아본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다시 한번 내가 여성을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고 다니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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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언어폭력을 당해왔다. 세심하다는 이유로 여자 같다고 프레임을 씌우고 제멋대로 재단하고. 세심한 것은 장점 따위가 아니라 으레 그렇듯 '흑염룡'을 동경했던 그들에게는 하찮은 것이었을까? 세심하고 꼼꼼하다는 것으로 나는 일종의 별난 놈이 돼버렸다. 강제로 성 프레임을 씌워지면서 웃긴 게 하나 있었다.

 그런 말 저변을 살펴보면, 뉘앙스가 여자 같다는 건 일종의 '폄하'였고 남자 같다는 건 일종의 '칭찬'과 비슷했다는 거야. 어렸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커보니까 알겠더라. 내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근데 늦었다. 익숙해졌고 세뇌당했다. 합리화는 습관이 됐다.

 그런 것까지는 괜찮았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30분 전에 인사한 여자애들이 걸레인지 아닌지 갑론을박 벌이고, 친했던 여자 선생님과 적나라하게 섹스하고 싶다고 떠들 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하루에 몇 번 자위를 하는지 물어보고 허리를 돌리는 모션이나 역겨운 짓들을 할 때, 나는 헛구역질 대신 화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반응이 시원찮은 지 나중엔 그마저도 안 했지만.

 압권은 학교 선배의 말. 그 새끼는 놀랍게도 패드립과 성희롱을 동시에 했다. '너희 어머니 질 좋으시냐?' 의기양양하게 내뱉은, 자기 딴에는 자랑스럽게 내뱉은 말은 뇌에 쾅 박혀 5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그 선배가 어디 사는지, 이름이 뭔지 다 기억나. 나로서는, 누나와 여동생, 엄마, 할머니가 있는 나로서는 이해 못 할 말이었다. 그저 정색할 뿐이었는데, 그때 내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매어두고 살고 있다. 나는 기숙사를 나가고 싶다고 엄마와 싸웠고 엄마는 사회생활, 집단생활을 하라는 명목으로 지긋지긋한 기숙사에 다시 처넣고 나는 나오고, 다시 처넣고 나는 나오고. 마치 교통카드 충전기에서 인식이 안되는 지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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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연적으로 몇 명 빼고 남자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엄마는 걱정이 됐나 보다, 왜 남자애들하고 놀지 않고 여자애들과 노냐고 그런 말을 쏘아붙였다. 누나도 나를 이상한 애로 보고 깎아내렸다. 트러블은 자주 있었다. 나는 그럴 때면 화가 났다. 그래도 잘 참았다. 눈치는 있었기에 서로의 엄마를 향해 창녀촌 에이스라고 욕하는 애들과 놀아야 하냐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우리 엄마를 창녀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엄마는 자꾸 그런 애들과 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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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생각이 어렸어도 그게 잘못된 일이란 걸 알았다. 그래 그래서 난 나름 깨어있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어왔다. 대학 와서도 인간관계 스펙트럼이 확장되면서 겪은 일들은 나를 개방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근데 멀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자라고 생각했던 거다. 마음속 깊숙이 내가 남자라는 사실을 기반에 묻어두고 중립적인 척 방관했다. 가끔씩 묻혀있는 귀퉁이가 보일 때마다 나는 자기혐오에 빠지고 또 빠지고. 내가 혹시에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는지 혹시 빻은 말을 했는지 자기검열을 해보고 또 하고.

 하여튼 영화는 자기가 나름대로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 외에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내겐 공포가 그들에겐 여전히 위트거나 로맨스겠지.

 제목은 거꾸로 가는 남자.

 원제목은 'I am not an easy man'이다. '거꾸로'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형편 따위가 반대로 되게' 의아했다. 남성의 거꾸로가 여성일까? 여성과 남성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여성의 반대는 남성이 아니고 남성의 반대도 여성이 아니다. 그냥 생물학적 성일뿐이고, 사람은 누구나 다 대상이다.

 미투 운동을 유머랍시고 떠드는 사람들이나, 미러링의 본질을 잊고 그냥 줘패면서 웃기려고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 주제가 쉬운 거다. 심각하지 않은 거야. 오래 알던 친구는 나를 두고, 내가 성 프레임으로 고생했단 걸 알면서도, 남자친구냐는 지인의 말에 '얘는 그냥 여자예요.'라고 말했다. 지긋지긋한 성 프레임은 여전했다. 다른 친구에게 용기 내어 언어폭력 보따릴 잠깐 풀었는데, 개인의 경험을 두고 사회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 다시 보따리를 묶었다. 그래도 여자를 걸어 다니는 성기로 보는 특정 남자들과 다르니까. 그만하면 됐다. 적어도 나는 쉽지 않은 남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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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 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디에 속해야 할지 모를 때, 나는 인식이 안되는 지폐가 된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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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김나연
    • 저도 넷플릭스에서 너무 재미있게 + 여러 생각을 하면서 본 영화라서 리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리뷰를 쓰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놀라면서 리뷰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인식이 안되는 지폐라는 표현도 재미있었고 의미있었습니다! 항상 어느 편에 서야할지, 나의 스탠스를 정하는 것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어느 순간에서는 '너무 PC함에만 집착한다'는 얘기를 듣고 또 그런가 생각하다보면 무지해서 폭력도 저지르고요. 이런 문제에 예민한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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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은서람
    • Thanks for writing and sharing this review with your own story. 쉽지않은 남자가 되는 것, 말 그대로 쉽지 않은 길이기에 힘 내시고 포기하시지 말아달라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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