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을 사랑할 시간이다. [기타]

언제부턴가 바람 냄새를 맡게 됐다.
글 입력 2018.04.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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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바람 냄새를 맡게 됐다.

 외출한 지 몇 시간이 지나면 맡을 수 있는 바람 냄새는 묘한 안정감을 준다. 딱 맡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갓 외출하면 손에 바람이 닿지 않기 때문에, 몇십 번 아니면 몇백 번 바람 가닥이 손가락을 스치고 나서야 바람의 체향을 어설프게라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말마 따마 바람은 너무 자유로워서 금세 내 손을 벗어난다. 맡게 된다고 안도할 때쯤에는 이미 코가 피로해져서, 냄새에 익숙해져서 맡을 수 없게 돼버린다. 익숙해진다는 게 슬플 수도 있구나,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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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그런 게 끌린다. 오롯이 그 시간대에만 마주할 수 있는 것. 상술한 바람 냄새나 집 가는 길에 그러데이션 노을빛. 노을 질 때 빛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노을을 가리는 도시 건물들마저 응달져서 검게 빛난다.

 특히나 환절기 저녁이 좋다. 미세먼지나 감기 같은 건 치지도외해버리고. 그즈음 저녁 어스름에 특히 그렇다. 언제나처럼 익숙하게 저녁 하늘을 바라볼 때, 해가 조금 짧아졌거나 길어졌다는 게 체감이 될 때 뭉클해진다. 달이 해에게 구애하는 시간. 해가 답을 유보하면서 머뭇거렸던 기억과 다르게, 구애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멀리 도망치고 있을 때. 익숙함에서 낯섦을 발견했을 때가 참 좋아.

 비와 눈도 같은 맥락이다. 멀리서 가만가만 지켜보면 예쁘다. 지루해진 일상에 무언가 변화가 생기고 그 순간이 아름답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뭔가 새로운 게 나타났을 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건 위로받고 싶고 싶어서일까?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게 됐다. 젖은 빨래의 섬유 유연제 냄새, 포근한 이불 촉감, 감청색 공기가 내려앉은 어두운 방 안. 눅눅하면서 이따금씩 소란스러워지기도 하며 주황빛 조명이 맴도는 술집, 자글자글 끓고 있는 무언가.

 기실 이런 것들도 바람 냄새처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많이 사랑하기 싫다. 계속 눈길을 주고 있으면 바람 냄새처럼 익숙해져 버릴까, 소중함을 잃게 되어버릴까 봐. 가끔 내게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찾아온다면 기꺼이 포옹할 테야. 행운이라는 말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행복을 마주쳤을 때 잠깐 환대하고 다시 작별한다. 아쉽지만 금세 또 찾아올 거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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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로 온갖 어두운 것들도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지나친 우울과 좌절도 행복처럼 나를 찾지만 뿌리치는 척하면서 붙들고 있는 건 오히려 내가 아닐까? 거짓 없이 우울을 사랑하고 보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글거림을 옷장 깊숙이 넣어놓고. 대신 숨겨놨던 낭만을 꺼냈다. 날씨는 따뜻해졌지만 마음은 아직 시리다. 핫팩처럼 품 안에 넣어놔야지.


자, 낭만을 사랑할 시간이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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