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권력과 비굴에 대하여 : 반토막 에세이 [기타]

반토막 에세이
글 입력 2018.04.2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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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공모에서 상을 받았다. 큰 대회나 유명한 공모전이 아니었음에도 기대가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을 언제나 사랑해왔지만 나의 글에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고, 글을 보여주는 일에는 더욱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르는 이에게 글을 보여주고 평가받는 행위가 부담스러웠다.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덜컥 지원해버렸고 이어서 덜컥 당선 연락을 받은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글이 먼저 업로드 된 온라인 게시물을 누르는 순간 읽은 것을 후회했다. 그 이유는, 내 글이 내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송두리째 바뀐 부분은 본문이 아닌 자기소개였다. 당선 이후 메일로 적어 보내라 하였던, 몇 줄 되지도 않는 자기소개 부분이었다. 혹자는 원 글도 아닌 자기소개 몇 줄 수정이 대수냐 하겠다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나를 소개하라는 말이 글을 한 편 내라는 것 보다 훨씬 큰 부담이었고, 주최 측에서 아무 조건도 내걸지 않았기에, 나는 보잘것없는 글쓴이일 뿐이지만 그 소개의 순서, 형식, 단어 선택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더랬다. 공모전 이후 상을 받은 글이라도, 그 글이 타인에 의해 수정된 후 세상에 공개되는 일은 허다하다. 하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거나, 공모 지원단계 이전에 조건 명시가 되어있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하다못해 뒤늦게라도 일방적인 통보를 하는 케이스다. 나의 경우에는 사전 공지도, 사후 통보도 받지 못했다.

몇 가지는 삭제되었고 몇 가지는 잘못 이어 붙였다. 이름 모를 아무개님은 두 가지의 테마를 믹스해서 한 문장에 우겨넣으셨다. 순식간에 따로 두어야 할 두 테마에 link가 생겼고,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이 탄생한 것이었다. “여왕이 죽었다. 왕이 죽었다.” 와 “여왕이 죽어서 왕이 죽었다.”가 어떻게 같은 이야기인가? 수정은 보완이나 개선의 여지가 있어야하는데, 일개 대학생인 내가 읽어보아도 그저 ‘달라짐’만 느껴졌다. 인쇄는 이미 들어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따로 메일로 연락을 드려, 간단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자기소개로 온라인에서만 변경하는 수준이었다. 나를 소개하는 그 글에는 내가 없었다.

나에게는 본문과 자기소개 모두 대등한 ‘글’이었다. 누군가는 둘 중 하나가 메인, 혹은 중심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하겠지만 나에게는 똑같이 소중한 문장의 집합이었다. 내게 글을 쓰는 일은 사랑이었으며 이를 보여주는 일은 도전이었다. 게다가 이는 내 글이 세상에 공개되는 첫 경험이었다.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문장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글 앞에 실린 유명인사들의 글 밑 빽빽한 자기소개와는 달리, 나는 조촐하고 소박해야 했다. 소박한 나의 소개 글이 도드라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왜곡되기까지 바란 적은 결코 없었다. 아무리 권력이 없고 유명세 없는 사람이더라도, 보잘것없는 학생 한 명이더라도, 본인의 문장 하나를 소중해 할 권리는 있지 않은가. 반대로 아무리 보다 더 어른이더라도, 그들 눈에 아무리 멋없어 보이는 글이라 해도, 마음대로 남의 글을 바꿀 자격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사건 두 달 후 전화를 받았다. 앞뒤로 다른 언사가 오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통화의 목적은 내가 블로그에 올린 한탄 글 때문이었으리라 짐작한다. 7분 남짓한 통화 끝에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첫 째, 7분간 단 한 차례도 사과의 말을 듣지 않았다. 둘 째, 오해라는 단어는 수없이 들었다. 셋 째, 여러 사람이 나의 블로그 일기를 돌려 읽었다. 통화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넷 째, 상대는 술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옆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다. 나와의 통화내용을 옆 사람들도 듣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나의 일기가 술자리 안주거리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보장은 있는가? 다섯 째, 통화 내내 나는 ‘무례’를 귀로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섯 째, 그보다 더한 감정은 불안이었다. 일곱 째, 불안은 내가 절대적인 ‘을’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힘없는 학생의 문장은 무시해도 되는가? 라며 고민에 빠졌던 나야말로 스스로를 철저히 을로 규정하고 있었다. 통화 내내 몸이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기분 상하는 말에도 맞대응할 수 없이 웃는 척을 했다. 글을 지우라는 무언의 협박처럼 들려 일기를 비공개로 돌리기도 했고 느낀 감정,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상황은 하나도 전달하지 못했다. 이 글을 적어 내려가는 순간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철저한 비굴이었다. 고발이나 ‘이르기’ 따위의 의미로 적는 글이 아니다. 나에 대해, 권력관계에 대해 더 생각하기 위한 기록이다. 내가 무의식중에 권력관계를 규정한 기준은 나이에 있었을까? 혹은 직업, 성별, 등의 프레임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자존감 때문이었을까. 몇 개월 째 생각이 많은 밤이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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