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와 나의 특별한 여행, 기쿠지로의 여름 [영화]

글 입력 2018.04.2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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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이 곡을 들어봤을 것이다. 인생의 회전목마, 생명의 이름 등의 지브리 OST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의 Summer. 이름 그대로 여름의 청량감이 느껴지는 곡이다. 하지만 수 백번을 들으면서 이것이 어느 영화의 OST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작 영화 자체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인지 굉장히 궁금해졌다.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은 할머니와 사는 초등학생인 마사오가 이웃집 날라리 아저씨와 주소가 적힌 종이와 사진 한 장만을 가지고 엄마를 찾으러 나서는 이야기이다. 얼핏 보면 지루하고 평범한 스토리라인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두 사람의 교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1. 마사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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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는 잘 웃지 않는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있는 아이이다. 아빠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났다는 사실만 알고 있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잘 보살펴 주시기는 하지만 할머니도 일을 해야 하셔서 집에 오면 마사오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마사오에게 여름 방학은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친구들도 모두 다른 곳으로 놀러 가고 혼자서만 지내야 하는 지루하고 외로운 시간이다.

여느 때처럼 혼자 지내고 있을 때, 마사오는 우연히 엄마의 사진을 보고 엄마가 살고 있는 주소를 알게 된다. 그리고 무작정 짐을 챙겨 엄마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안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돈을 뺏길 위기에 처했을 때, 이웃집 부부가 마사오를 도와주게 된다. 사정을 알게 된 이웃집 아줌마는 자기 남편을 마사오의 여행에 강제 동행시킨다. 누구의 의지도 아니었지만 혼자였던 여행은 두 사람의 여행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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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저씨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마사오에게 자전거 경기 도박에서 이길 것 같은 선수 번호를 물어 이겼을 때는 잘 대해주지만 그 뒤로 계속 맞추지 못할 때는 구박만 한다. 제대로 된 보호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저씨 때문에 둘은 함께 다니기는 하지만 그저 '동행'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마사오는 그 흔한 불평불만도 하지 않고 아저씨를 따라다닌다. 자기 혼자서는 엄마에게 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서운 아저씨 하나뿐이다.

그래도 아저씨는 완전히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치한에게서 마사오를 구해주기도 하고 돈이 없어 계속되는 히치하이킹에도 끝까지 책임지고 마사오를 엄마가 사는 곳까지 데려다준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새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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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는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아이다. 아이처럼 떼를 쓰지도 않고 울 때도 조용히 숨을 죽이면서 운다. 치한에게 당할 뻔했을 때도, 감당하기 힘든 사실을 마주했어도 화를 내거나하지 않고 저 멀리서 혼자서 눈물을 훔친다. 그렇게 혼자서 괴로움을 감수하려는 마사오를 보니 슬픔이 배가 되는 듯하다. 차라리 자기 감정을 표출해 줬으면 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마사오의 여행은 새드 엔딩이 아니다. 마사오에게는 아저씨가 있으니까. 그리고 여행 중에 만난 커플, 한량 같은 젊은이, 폭주족 콤비처럼 마사오가 즐거워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으니까.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고 마사오는 결국 웃음 짓는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마사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가 아니다.



2. 사실은 기쿠지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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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기쿠지로잖아 이놈아,
그것도 몰랐어?"


이 영화의 제목은 '기쿠지로의 여름'이지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다. 그래서 왜 제목이 '기쿠지로의 여름'인지 의아해 했었는데 영화가 끝나기 3분 전에 그 의문이 해소됐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어린 마사오가 아니라 같이 동행했던 아저씨 '기쿠지로'라는 것을 알자마자 이때까지 기쿠지로 아저씨가 보여준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뜻깊게 보이면서 굉장한 감동이 밀려온다.

기쿠지로는 처음에 아이를 보고 무슨 아이가 저렇게 우울하게 생겼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억지로 마사오의 엄마를 찾는 여행에 동행하게 됐을 때 아이를 짐짝처럼 여기고 엄마를 찾아주려는 노력보다는 순간의 도박과 유흥에만 집중하면서 아이를 '숫자 점지해 주는 도구' 취급을 한다. 그러다 아이가 치한에게 당할 뻔했을 때 구해준 이후, 조용히 우는 아이에게 연민을 느꼈는지 본격적으로 마사오를 도와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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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는 자존심과 등짝의 문신밖에 남지 않은 능력 없는 양아치다. 할 줄 아는 것은 남에게 시비 걸기와 막무가내로 원하는 대로 해줄 때까지 화를 내는 것. 그래도 그 모든 행동은 마사오를 즐겁게 해주거나 그의 엄마를 찾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사람 대하는 게 서툰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의 행동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데 기본 예의를 모르거나 남의 자동차에 펑크를 낸다거나 수영을 할 줄 모르면서 할 줄 안다고 큰 소리치고 죽을 뻔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아이인 마사오보다 더 철부지 같은 면모를 보이는 기쿠지로를 보면 때론 답답하지만 이상하게 순수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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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의 엄마가 새 가정을 꾸린 장면을 본 기쿠지로는 그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위로한다. "엄마 어디 다른 데로 이사 갔나 보다. 다른 사람이 사네."라며 아이도 다 아는 거짓말을 하고 폭주족에게 '천사의 종'이라는 부적을 뺏어서 아이에게 선물한다.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쿠지로는 마사오를 위로하고 싶었고 마사오도 아저씨의 노력에 응하며 이후 천사의 종을 정말 부적처럼 가지고 다닌다. 마사오에게 있어서 기쿠지로 아저씨는 천사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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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과거는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엄마와 관련해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것 같은 뉘앙스의 장면은 있었다. 자신을 찾지 않는 엄마를 직접 찾으러 가는 마사오를 자신과 같은 팔자라고 생각하고 양로원에 있는 자신의 엄마를 찾아가서 그저 멀리서 보기만 하고 돌아오는 장면을 볼 때 그도 마사오와 똑같이 엄마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기쿠지로는 마사오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열심히 아이가 웃을 수 있도록 도와줬나 보다. 자신처럼 비뚤어져서 한심한 인생을 살지 말고 바르게 클 수 있도록,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말이다.

마사오와 함께한 기쿠지로의 여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따뜻한 여름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힐링이 되는 영화를 본 것 같다. 이렇게 아이를 통한 어른의 성장을 다룬 영화는 어른도 완벽하지 못하며 상처를 위로받고 싶은 것이 아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서 큰 위로가 된다. 마사오도, 그리고 기쿠지로도 서로가 서로의 천사가 되어 행복해지는 것을 보니 흐뭇해지는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아직 안 봤다면 꼭 한 번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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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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