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한성으로 표현된 무한한 예술의 힘 [시각예술]

쿠사마 야요이의 예술 세계를 살펴보다
글 입력 2018.04.2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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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한 번씩은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범상치 않은 무늬가 반복되는 그녀의 작품은 전시장을 나와서도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무한한 어떤 곳으로 관람자들을 인도하는 듯 하고, 알 수 없는 새로운 생각에 잠기는 기분이 든다. 국내에서 쿠사마 야요이를 항상 만날 수 있는 곳은 제주의 ‘본태 박물관’이다. 얼마 전 제주를 방문해 그녀의 작품을 직접 마주했다. 쿠사마 야요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작품을 살펴보며 그녀의 예술세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쿠사마 야요이. 그녀와 그녀의 작품을 소개할 때 아픔과 악몽이 예술로 승화되었다고 말한다. 강박증과 환영이라는 개인적인 질병을 반복되는 형태로 나타내어 하나의 예술로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치유하기 힘들었던 정신질환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이상 행동으로 사회 내에서 고립을 느꼈으며 사람들과의 사교도 어려웠다. 그런 그녀를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이었다. 그녀의 환각 속에서 자주 등장했던 물방울 무늬, 동그란 어떤 형태들을 시각화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듭하며 그녀만의 독자적인 예술관을 구축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 어느 날 캔버스 전체를 아무런 구성없이 무한한 망과 점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내 붓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캔버스를 넘어 식탁, 바닥, 방 전체를 망과 점으로 뒤덮기 시작했다.(이것은 아마도 환각이었던 거 같다.) 놀랍게도 내 손을 봤을 때, 빨간 점이 손을 뒤덮기 시작했고 내 손에서부터 점이 번지기 시작해서 나는 그 점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점들은 계속 번져가면서 나의 손, 몸 등 모든 것을 무섭게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고 응급차가 와서 벨뷰 병원에 실려갔다. 의사가 진단하기를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고 정신이상과 심장수축 증상에 대한 진단이 나왔다. 이러한 사건 이후에 나는 조각과 퍼포먼스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방향 변화는 언제나 내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결과다.

- 쿠사마 야요이 자서전 中


원에 대한 강한 집착, 크기에 따라 조화를 이루는 무늬, 강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색상 등은 그녀의 작품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균일한 원의 반복이 아닌 미세하게 다른 원이 반복되어 리드미컬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와 같이 무질서 속의 질서는 작품을 오랫동안 보고 있을시 어떠한 환상에 사로잡히게끔 한다. 그녀가 시달렸던 환각이라는 몽환성이 무엇인지 감상자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게 한다. 감상자는 자연스레 작가의 세계관과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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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


위의 작품은 가장 대중성 있는 <호박>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나는 호박의 넉넉한 순수함에 매료됐다.”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호박이란 즐거움을 일으키는 재밌는 매개체이다. 이 매력적인 매개체에도 그녀만의 패턴을 입력시켰다. 특유의 땡땡이 무늬가 호박 전체와 벽면에 나타나 있다. 호박이 가지고 있는 곡선을 둥근 원의 모양을 달리하여 적극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방식으로 인해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운동성을 느끼게 한다.

이 생동하는 느낌에 대해 매력적이다 혹은 무섭고 혼란스럽다 라는 반응으로 나뉜다. 감상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소 색다른 표현으로 인해 감상자들이 그녀의 작품에 집중한다는 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해본다는 점, 작품을 보고 쉽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에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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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 거울의 방 


이 작품은 <무한 거울의 방>이라는 작품이다. 제주 본태박물관에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이 작품으로 꼽아도 될 만큼 유명하다. 모든 면이 거울인 이 방은 그녀가 ‘무한함’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음을 느끼게 한다. 거울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감상자들을 끝없이 펼쳐진 반복되는 공간에 놓이게 한다. 그녀의 평면 회화, 조각 작품에서 느꼈던 반복성과 무한함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LED 라이트와 함께 환상적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거울에 비쳐 무한한 곳에 놓여 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생각에 잠기고, 손에 닿을 수 없는 저편을 바라보며 멍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작가가 꿈을 꿨던, 환각에 사로잡혔던 그 미지의 공간을 느껴본다.


물방울 무늬는 우주와 우리 삶의 에너지의 상징인 태양의 형태다. 또한, 고요한 달의 형태이기도 하다.

둥글고, 부드럽고, 컬러풀하고, 무의미하고, 미지의 물방울 무늬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무한으로 가는 길이다.

- 쿠사마 야요이 자서전 中


야요이는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점들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 신경증과 병들을 스스로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이 예술가를 만들었다. 야요이의 작품을 보며 예술의 힘을 느낀다. 그녀가 생에서 느꼈던 아픔들을 예술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던 무한한 원의 형태를 세상 밖으로 표출시켜 그녀는 악몽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악몽의 미화’라고 일컫는다.

악몽과 아름다움. 두 단어는 분명하게 의미로서 대치되지만, 그녀의 작품 안에선 두 단어는 공존한다. 오래도록 대치되었던 악몽과 이상을 예술로서 합치시킬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에 대해 ‘무한성’으로 표현되는 ‘무한한 예술의 힘’을 느꼈다고 정리하고 싶다.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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