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5] FEATURE.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 - '생일소원'

우리의 매일은 혹시나, 와 역시나, 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글 입력 2018.04.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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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생일은 조별과제 발표를 망쳤었고, 작년의 생일에는 보통의 주말처럼 아르바이트를 했다. 코끝을 에는 추위의 시작, 한 해의 끄트머리, 매듭달 아흐레. 내 생일은 중학생 때부터 늘 치열한 시험기간과 함께해왔다.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매일을 함께하던 친구들이 챙겨주던 소박한 과자 박스에 참 행복했었는데. 키가 자랄수록, 각자의 삶이 무거워질수록 나 또한 급격하게 외로워져버렸다. 뭐가 문제일까, 돌아봤더니 역시나 내가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부터 앞으로의 생일은 꼭 누군가와 함께, 소란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은 하루 중에서도 적어도 이 날만큼은 기분 좋게 기억됐으면 하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마음. 그래서 내 생일 소원은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왁자지껄한 축하를 받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지키지 않을 것을 알면서 돌아오는 방학이면 계획표를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는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매번 알뜰하게 공부 플랜을 짰고, 대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적어도 이맘때쯤의 나라면 무언가가 완성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고 지냈다. 바라는 대로 이뤄지는 건 사실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번번이 반복되는 후회였다.
 
노래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네 삶은 저마다의 그리움과 희망으로 번져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뤄지기 힘들 것을 알면서도 케이크 앞에서 눈을 꼭 감고 빌게 되는 소원처럼 우리의 매일은 혹시나, 와 역시나, 의 연속이라고.
 
꽤나 오래 전, 이별을 하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 사람의 부재가 느껴지는 상황과 맞닥뜨리는 일이었다. 당연하게 외우고 있던 일상을 이제는 묻지 못한다는 것과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더 이상 꺼내지 못하는 것, 그리고 맞이하게 되는 매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은 꽤 애달픈 일이었다. 그렇게 가깝던 사이에서 그렇게 멀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별 다를 것 없는 오늘을 보내고서도 별 다를 것 없을 내일을 기대해야만 했다.
 
초가 꺼지겠지 소원을 다 빌면은
웃는 얼굴로 말을 하겠지, 정말 고맙다고
내가 갖고 싶은 건 아무도 안 가져온 것 같아
그럴수록 더욱 짙어져 그리움
오늘이 지나면 또 일 년을 써서
늘 그렇듯 아무 일 없는 듯, 빌어 생일 소원
 
군중 속의 외로움은 홀로 있을 때의 고독보다 견디기 힘들다. 못다한 마음 아래에서는 어떤 나날도 큰 의미가 없는 걸까. 다른 이는 채울 수 없는, 특정인만이 메울 수 있는 공백은 오히려 ‘생일’이라는 이름 아래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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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파커스, 'Fantasy' (2018. 4)
 

‘생일소원’은 2년 3개월만에 발매된 리차드 파커스의 미니앨범 ‘Fantasy’의 타이틀곡으로, 안개를 닮은 리차드파커스의 목소리와 스텔라 장의 솔직한 랩핑이 돋보인다. 실제 절친한 친구사이임을 보여주듯 뮤지션으로서의 조합 역시 바람직하다. 눈 감으면 오히려 선명해지는 환상처럼, ‘생일’이라는 상황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이별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나예진.jpg
 

[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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