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가? - 고야가 답하다

글 입력 2018.05.0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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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가?
- 고야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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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시스 고야, <철학은 가난하고 헐벗은 채로 간다>


선과 악.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두움.
삶과 죽음.
이성과 비이성.


이 단어들을 마주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느 누구라도 이 단어들을 양쪽 끝에 놓고, 좋고 나쁨을 구분지을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 우리는 (인간은) 항상 경계를 구분 짓고자 한다. 자신이 세운 경계 안에서 옳고 그름을 따진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과연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프란시스코 고야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라고 말한다.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의 저자 츠베탕 토도로프는, "잔인한 괴물들을 잊지 않는다면, 진실은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옮긴이, 류재화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가?
절대는 없다. 차라리 모든 것이 악이다."



프란시스코 고야, 어떤 화가였나?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프랑스군이 자행한 야만적인 대량 학살 장면을 묘사한 작품 <1808년 5월 3일의 학살> 혹은 기괴한 그림으로 평가받는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 등을 통해 알게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진데, 고야를 그저 기괴한 '검은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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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의 표지를 장식한 작품 <1808년 5월 3일의 학살>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는 프란시스 고야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일대기가 있다면 고야의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내용이며, 삶의 궤적과 더불어 그가 이루어낸 예술적 혁신을 살핀다.


"그는 가장 용감한 겁쟁이였다."


체코 출신 영화감독 밀로시 포르만이 영화 ‘고야의 유령’(2008)에 등장하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를 평한 발언이다. 고야야말로 평생 세속적 영광과 예술적 성취 사이에서 방황한 불쌍한 영혼이었다며. 용감한 겁쟁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말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고야의 초기 최대 삶의 목표는 '사회적 성공'이었다. 1746년 사라고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야는 '그림'으로 자신의 진로를 정한 후부터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결혼, 그리고 그로 인한 인맥 쌓기, 주문자의 입맛을 맞춰줄 계산된 그림을 통해 그는 서서히 마드리드 고위층이 가장 선호하는 초상화가가 되어 갔다. 재능 있는 그는 늘 야망을 품고, 기회를 엿보고, 성공에 집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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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센테 로페스 이 포르타냐, <프란시스코 고야 초상화>
출처 : wikimedia commons


하지만 성공에 집착했다고 해서 그림을 향한 그의 진심까지 왜곡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한가지의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듯, 프란시스코 고야는 (남겨진 흔적들로 볼 때) 명예뿐 아니라 우정, 사랑, 그리고 특히 그림을 향해 각각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향한 고야의 눈은 항상 명예와 돈을 쫓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그는 끊임없이 그림이라는 예술을 탐색했다. 그의 영원한 친구, 사파테르에게 쓴 편지에서 고야는 말한다. "난 항상 초조함 속에 살고 있어.", "파고든 주제의 끝까지 가지 못하면 난 잠도 잘 수 없고 휴식도 취할 수 없어. 지금의 이 삶을, 난 '산다'라고 말할 수도 없어."라고.

결국 고야의 명예와 돈에 대한 욕구 이전에 '그림'이 있었음 알 수 있다. 고야의 가치 서열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그림이었던 것이다. '산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고야의 삶은 그가 선택한 '화가의 삶'이었다. 애초에 그가 바랐던 세속적 영광의 본질은 그림이 아니었을까?



고야, 우리의 세계가 숨기고 있는 것을 표현하다

친구에게 고백한 것처럼 고야는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파고들며 그림을 탐구했다. 대중의 눈에 비치는 그는 당대의 사회 규칙을 따르고 왕실과 교유하는 궁정화가였지만, 곧 자신만의 사적인 세계에서는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며 한 번도 탐험해 보지 않은 길을 탐색해 나가는 예술가였다. 그렇게 이중생활을 했던 고야는 점차 예술적 변혁(물론 당시 그는 미처 알지 못했던)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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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마귀쫓기>


그의 그림에는 점차 점차 광기와 폭력이 나타난다. 고야는 청각을 잃고, 사랑에 상처를 받는 등 개인적인 사건과 나폴레옹의 침략 및 잔혹한 전쟁을 겪으며 판화집 <변덕들>과 <전쟁의 참화들>을 제작한다. 사회적 풍자, 성적 내용, 미신과 마녀 및 유령을 소재로 하는 그의 그림은 '환상적'이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섬뜩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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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사투르누스> 혹은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이러한 고야의 그림을 '비이성'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고야는 자신의 (계몽주의를 추구하는) '깨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계몽주의자들이 비판하는 사회적 모순, 이를테면 미신과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그림에 표현했다. 고야가 친구들과 달랐던 점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믿고 '비이성적'인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신과 환상을 이해하고 '이성'과 '비이성'을 같은 위치에 있는 인간의 특성으로 보았던 점이다. 이성의 빛으로 어둡고 혼탁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계몽주의 역시 사실은 야만과 공포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고야 스스로 예감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그의 '비이성'적인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고야의 예감처럼 계몽주의를 내세우며 들이닥친 나폴레옹 군에 의해 스페인은 황폐화 된다. 계몽주의 사상과 유럽 문명은 다른 나라를 점령하기 위한 구실 또는 변명으로 사용됨으로써 신뢰를 잃었고, 그 이후 식민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해 자행되는 정책적 위장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고야의 전쟁 그림에는 잔혹한 학살의 장면이 담겼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참혹한 사회적 현상들을 데생 연작으로 그려낸다.

사람들이 '빛'과 '이성', '지식'을 방패 삼아 우리의 공포를 하찮게 취급할 때, 고야는 그 공포를 직접 드러냈다. 그는 우리의 세계가 숨기고 있는 것을 알았고,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 표현할 줄 알았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예술가(창조력을 지닌 작가들)이 어떻게 현실적 정치와 국가장치라는 폭력에 맞서 예술로써 싸우는지 조명하고 탐색했던 화가였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진실'이라 믿는 우리와 달랐다. 고야가 열망하는 진실은 눈에 보이는 형태들의 진실이 아니라 열망, 사랑, 폭력, 전쟁 그리고 광기의 진실이었다.


고야가 예견했고, 토도로프가 증언하듯, 우리가 경계해야 할 위험은 뚜렷한 경계 없이 부유하는 ‘미몽’과 꿈, 마술과 주술이 아니라, 전체주의 같은 국가적 장치로 일제 소탕하는 가면 쓴 이성이다. 정확히 경계선을 긋는 무차별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적대감이자 자신을 늘 선으로, 빛으로 규정하는 오만함이다.

-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327p


이제 우리는 스스로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무엇이 악이고 무엇이 선인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에서
그 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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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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