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맥주 따라 방방곡곡, '오늘은 수제맥주' [도서]

글 입력 2018.05.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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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주를 좋아해! 그중에서도 흑맥주를 가장 좋아해!'라고 주위에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 나는 그동안 내가 그 말을 해왔다는 사실이 창피해졌다. 내가 좋아하던 둔켈이 라거 타입 맥주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또 내가 매번 맛있다며 집어 들던 기네스가 상면 발효로 만들어진 흑맥주였음을 알았다.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알고 있었다고 맥주를 좋아한다고, 흑맥주를 좋아한다고 말했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빨개지는 얼굴을 감추며 책을 들추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좋아한다 말했던 맥주에 조금이라도 당당하기 위해, 앞으로는 맥주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연인에 대해 잘 모른다면 그건 그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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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부분에 맥주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담겨 있다. 맥주의 처음은 무엇이고, 맥주가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 그리고 맥주의 제조 과정까지. 맥주에 특별한 맛을 만들어주는 '홉'은 참 흥미로웠다. 맥주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홉'에 숨어 있었다. 그 외에도 맥주 전용 잔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었는데, 평소 와인에만 특별한 잔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맥주 잔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와인만큼이나 맥주 잔도 그 잔에 따라 어울리는 맥주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

가장 내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맥주 궁합'에 대한 부분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테마에 맞춰 각각 맥주의 맛을 설명하고 취향에 맞게 골라 마시도록 한다. 내가 좋아하는 둔켈은 역시나 중후하고 쓸쓸한 느낌인 '가을'에 속해 있었따. 그전에는 단순히 흑맥주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둔켈이 가을의 맛으로 표현된 것을 보자 그 당시 느꼈던 맛이 더 풍부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다른 부분을 아는 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맥주 궁합을 저자의 시선에 맞춰 나누어 놓은 부분은 참 좋은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다양하고, 그 아래 적힌 설명을 아무리 보아도 수제 맥줏집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기 일쑤였다. '뭘 골라야 나한테 딱 맞는 맥주를 고를 수 있을까'하는 고민으로 복잡한 메뉴판은 결정 장애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맥주의 다양한 맛이 메뉴판 앞에서 난처함을 겪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덤으로 이 정도 맥주 지식이라면 어디 가서 '나 맥주 좀 안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쉽게 꼭 알아야 하는 정보를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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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팔도에 이토록 많은 수제 맥줏집이 있었다니!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이렇게나 많은 맥줏집에서 내가 가본 곳은 고작 두 곳 정도였다니. 그동안 어떤 맥주를 먹어왔던 건지 나 자산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대부분 어느 정도 비슷한 메뉴를 두고 있었지만, 하나씩은 꼭 그 맥줏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맥주가 있었다. 또, 지역에 따라 맥주의 맛도 달라졌다. 대나무가 유명한 담양에는 댓잎이, 귤과 한라봉이 유명한 제주도에는 꼭 상큼한 귤 향이 나는 맥주가 빠지지 않았다. 왠지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문경에는 한옥으로 지어진 맥줏집이 있다. 각각의 맥줏집이 담고 있는 사연도 남 달랐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든 이 책이 아니라면 쉽게 듣기 어려운 이야기와 여러 팁까지, 저자의 오랜 시간과 노력을 책 한 권으로 쉽게 얻는 느낌이었다. 특별히 내 구미가 당기는 가게는 형관펜으로 표시를 해가며 '다음에 이 지역에 방문하면 꼭 까먹지 않고 들려야지'라는 생각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책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처음 '둔켈'을 먹고 반했던 광주 송적역 근처에 있는 '밀밭 양조장'이었다! 전라남도 고창에 있는 파머스 브루어리에서 공급해온 맥주였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둔켈을 먹고 완전히 빠져버렸던 것처럼 '오늘은 수제맥주'의 오윤히 작가 역시 이곳을 소개하며 '둔켈'을 추천한다는 부분을 보고 '내 입맛이 틀리지 않았군'이라 생각하며 내심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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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앵
@JEJUSIEN_OFFICIAL


전국 곳곳에 가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특히나 제주도에 있는 '제주지앵'을 보고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귤과 맥주의 조합이라니! 제주지앵의 주인 역시 제주에서 제주의 귤을 먹고 자란 제주 토박이 청년들이었다. 진정 제주도를 대표할 만한 수제 맥주였다. 페일 에일 스타일의 감귤의 새콤한 맛이 돋보이는 제주 감귤 맥주 역시 좋았지만, 흑맥주인 시트러스 스타우트도 무척이나 마셔보고 싶었다. 풋풋하고 싱스러운 흑맥주는 어떤 느낌일까. 무겁고 풍미가 깊은 흑맥주만을 생각하던 내게 제주의 여름 같은 싱그러운 맥주 맛이 궁금했다.


제주 감귤은 제주의 흙과 바람과 햇살, 그리고 제주 사람들의 꿈을 먹으며 자란다. 한마디로 제주의 소울이 담긴 과실이다. 제주의 감귤로 만든 제주지앵의 맥주 또한 제주의 소울이 담긴 맥주다. 제주지앵의 맥주는 제주 고유의 풍경처럼, 이를테면 돌담처럼, 바다처럼, 혹은 오름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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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스바운더 브로잉 컴퍼니
@SOUTHBOUMDERBREWERY


사운더 바운더 브로잉 컴퍼니는 다른 말로 '남쪽으로 튀어 브로잉 컴퍼니'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에서 따다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남쪽으로 튀라는 이름을 증명하듯 이곳은 제주도의 끝 서귀포 중문 단지 근처에 있다. 정말 남쪽의 끝에 있다. 이 책의 그름을 담당한 원관연 작가는 '국내에서 가장 멀리 떠나고 싶을 때 가기 좋은 곳이다.'라고 했다. 왠지 마음이 심란하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이곳을 떠올리며 나도 남쪽으로 도망가고 싶다. 멀리멀리.

맥주를 단순한 맛있는 '술' 정도로만 생각했다. 딱 그정도로만 생각하고 '좋아해!'라고 말했지만 더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맥주를 좋아한다고 말할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저 계속 좋아한다고만 말할 뿐. 이제는 조금 당당하게 맥주 앞에서 '나 정말 맥주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맥주와 예술은 닮은 구석이 많다. 물, 홉, 보리, 효모로만 만들지만, 누가 어디서 양조했는냐에 따라 맛은 무척 다양하다. 예술도 연필, 물감, 붓 등 도구는 간단하지만 작품마다 고유한 표정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 않는가?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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