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의 온라인 스포츠팬 문화에 부쳐 [스포츠]

글 입력 2018.05.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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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팀과 소속선수 박병호가 수년간 포털사이트에 악플을 남긴 한 누리꾼(닉네임 국민거품박병호, 이하 국거박)에 대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거박은 대부분 여론이 ‘왜 이제야 고소를 하냐?’고 할 정도로 집요하고 악의적인 누리꾼이었다. 국거박은 실제로 법적인 과정을 거쳐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할 온라인상 범죄자이다. 그러나 이를 국거박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한국의 온라인 스포츠팬 문화는 상당히 왜곡되고 어긋나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에 대해 여론을 조성하고 격려를 전하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선수와 구단, 심지어 선수의 가족과 지인들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이고 날이 선 비난을 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1. 비난의 양상

 대부분 온라인 스포츠팬들은 포털 사이트 댓글창과 카페, 인벤, 갤러리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댓글을 통해서 여론을 형성하며, 그들의 글이나 댓글은 인터넷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지만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 사이트들은 ‘공감’이나 ‘추천’ 기능과 ‘비추천’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 더 많은 공감을 얻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일부 유저들을 중심으로 자극적인 글과 댓글을 쓰게 된다.

 실력이 모자란 선수나 경기에서 진 팀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고, 최고의 선수나 구단이라고 해도 그들의 치부나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한다. 또, 한 번 낙인이 찍힌 선수는 무슨 일을 해도 욕을 먹게 되며, 두둔하는 사람도 ‘적폐’, ‘알바’라는 낙인이 찍힌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악플을 남기는 네티즌들의 다수가 그들은 ‘농담’을 하고 있다거나 정당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댓글이나 일부 커뮤니티의 글들을 살펴보면 비난의 수위는 일상생활에서 도저히 뱉을 수 없을 것 같은 말들로 가득하다. 일례로 축구 국가대표팀이 계속해서 수비 실수로 인한 실점으로 인해 패하자 누리꾼들은 주축 수비수 한 명을 타겟으로 삼고 댓글로 공격을 시작했다. 단순히 선수 개인의 실수에 대한 지적 수준을 넘어서서 그가 ‘인맥’으로 발탁된 자격 없는 선수라는 낭설들, 선수의 가족들에 대한 비난, 심지어는 그를 발탁한 감독과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두둔한 지도자들과 기자들마저 ‘적폐’로 낙인찍혀 비난받게 되었다.

 이후 이 선수가 경기장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몇 차례나 보여줬음에도 한 번 찍힌 낙인은 좀처럼 긍정적 여론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으며 그와 무관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다른 기사에도 이 선수를 낙마시키라는 댓글들이 여전히 등장해 수많은 추천을 받고 있다. 이 선수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선수와 주변인에 대한 낙인과 무분별한 비난은 온라인상에 꽤나 만연해있는 풍조이다. 선수 개인 SNS에까지 찾아가 가족 욕을 남기거나 살해협박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물론 이런 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2. 팬의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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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해
어느 정도의 비판과 비난을 가할 권리가 있다


 물론, 스포츠에서 팬은 선수와 구단을 비판, 때로는 비난할 권리마저도 갖고 있다. 스포츠 경기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구매하는 재화이고 서비스이다. 비싼 돈을 내고 경기를 봤는데 졸전을 거듭하다 패배하면 화가 날 수 있고, 서비스의 공급자인 선수와 구단에게 항의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에선 간혹 원정경기에서 대패한 구단들이 팬들에게 티켓값과 차비 등을 돌려주는 것이 이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팬들의 비난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기준이 모호하다. 경기력에 한정지어야 할지, 사생활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는지 등 범위의 문제,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의 비난을 허용할 것인지 수위의 문제가 있다. 특히 한국에선 스포츠 선수에 대한 악플을 인터넷 명예훼손법 등을 근거로 처벌한 판례 자체가 매우 부족해 처벌 기준을 정하기가 아직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아직은 대부분 프로스포츠가 등장한지 30년 내외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온라인 서포팅 자체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규제할 마땅한 기준이나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축구 리그가 창설 100년이 넘은 영국에서도 온라인에서 가해지는 팬들의 비난에 대한 대응은 뜨거운 사회적 이슈다. 허용 기준과 더불어 구체적 처벌 수위에 대해 조속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3. 선수, 구단들의 의식

 팬들 뿐만 아니라 선수나 구단들의 의식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 일부 선수들의 경우 팬들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 기본적인 팬 서비스조차 하지 않는 경우들이 지적되고 있다. 프로 스포츠는 생산성이 전혀 없는 산업임에도 팬들의 소비와 투자에 의해 성립되고 유지된다. 그렇기에 팬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평소 팬들을 존중하고 팬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의 경우 필요 이상의 비판이나 비난이 달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있다 하더라도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구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적을 내지 못하고,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팬들을 상대로 수익을 거두는 데만 집중하는 구단은 결국 팬을 잃는다. 온라인 스포츠팬 문화의 본질 자체는 어쨌든 오프라인 상에서 이뤄지던 응원의 연장선이다. 경기장에 찾아오는 팬들을 기분 나쁘게 하면 온라인에서의 여론이 절대로 좋아질 수 없다. 팬이 있어서 구단이 있고, 선수가 있는 것이라는 프로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에 대해 재고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

 스포츠는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이젠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볼 수 있고, 수많은 누리꾼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순기능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현재 부정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온라인 스포츠 팬 문화에 대해서 그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올림픽 메달 개수보다도 훨씬 중요한, 스포츠 강국의 기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류형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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