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자들의 방문, '손님들' [도서]

글 입력 2018.05.0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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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똑.

  누군가 당신의 방문을 두드린다. 당신은 예고하지 않은 낯선 자의 방문에 현관문에 달린 조그만 구멍으로, 또는 인터폰으로 밖에 있는 존재를 확인한다. 기다리고 있던 택배 기사도, 이웃 주민도 아닌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처음 보는 얼굴이 눈에 가득 찬다. 당신은 쉽사리 현관문을 열어주지 못한다.

  여러 공포 영화에서 예상치 못한 낯선 방문자들을 소재로 사용한다. 평화로운 집 안으로 찾아온 손님, 공포영화에서 손님은 대부분 불쾌한 소식을 들고 오는 방문자이다. 만약 공포영화에서처럼 가장 익숙한 내 공간에 낯선 자가 불쑥 내 공간을 차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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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
 
  그녀의 집 문을 누군가 두드린다. 밖으로 나가 확인을 해보니 낯선 얼굴의 세 사람이 서있다. 서로 다룬 사람이 아닌 마치 한 뭉치처럼 보이는 세 사람이 그녀의 집 안으로 불쑥 들어온다. 그들은 그녀가 사는 동네에 최근 재개발로부터 그녀의 집을 보호해주러 왔다고 한다. 집 밖은 여전히 재개발을 진행하는 철거 단원들의 거친 발소리로 소란스럽다.


  집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지진의 중심에 있는 듯 집이 크게 한 번 흔들리고, 문짝과 창문들이 떼어내지고, 욕조와 세면대가 들어내지고, 벽들이 허물어지고, 철 자재들이 잘리고 ······ 35년, 35시간, 35분, 35초, 3초, 1초.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은 순간, 찰나.

  찰나의 사라짐.

  오늘 밤 집이 철거 단원들의 기습으로부터 운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집은 백 년조차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2, 30년 뒤에는 무참히 허물어질 것이다. 오늘 밤 무사히, 극적으로, 손님들의 목숨을 희생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김숨의 소설집 '침대'에 속한 소설 '손님들'은 재개발 풍경을 그린다. 김숨 작가가 그린 재개발 풍경은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풍경과는 다르게 특별하다. 재개발을 진행하는 철거 단원은 그녀의 집 안에 등장하는 낯선 손님들과 다르지 않다. 철거 단원들은 바깥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는 집을 외부에서 파괴하는 손님이다. 김숨 작가는 재개발을 원치 않는 불쾌한 손님, 나를 파괴하는 손님이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작가를 통해 우리가 새롭게 보는 재개발에 대한 시선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삶의 터전을 무차별하게 빼앗기는 것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지 여실히 드러낸다.


  무리는 또다시 여러 개의 무리로 나뉘어 철거가 선고된 구역으로 몰려갔다. 구역의 경계에 거대한 방음포를 둘렀다. 구역은 일시에 정전에 들었다. 암흑이 까마귀의 날개처럼 펼쳐져 구역을 덮었다. 철거 단원들은 집들을 무차별적으로 허물기 시작했다. 소음과 분진과 비명이 아비규환처럼 넘쳐났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3백여 채의 집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떼를 지어 강쪽으로 몰려갔다. 아이들과 노인들, 한쪽 팔이 없거나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떠밀리듯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여러 소설 속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사회 문제 '재개발'을 김숨 작가는 낯선 존재들이 주는 불쾌함과 공포감으로 표현했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서린 공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공간이 사라지는 안타까움, 나 자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공간을 파괴해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까지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으로 재개발을 바라본다. 재개발이란 소재를 이용해 '자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고유함을 파괴시키는 외부의 충격을 잘 보여준다. 낯선 자극은 때로 자아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 낯선 자극으로 자신이 고유하게 유지하고 있던 자아의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재개발로 인해 깨끗하게 정돈된 새로운 주거 단지가 들어서지만, 그 뒷편에 집을 잃고 떠도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과도 그 모습이 닮았다.


  그녀는 손님들과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손님들과 전혀 다른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격리'의 느낌이 손님들과 그녀 사이에 투명한 유리 칸막이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그녀의 집 거실에 폐수처럼 흘러들었다. 손님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손님들의 눈동자 흰자위들이 죽은 물고기들처럼 떠다녔다. 그녀는 격자무늬의 '반복'을 더듬어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냈다.
  적발되듯, 손님들이 형광등 불빛 위로 떠올랐다.

  불현듯 손님들에 대한 경계심으로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손님들은 무수한 양옥집들 속에서 그녀의 집을 발견하고, 선택했다. 선택은 우연이었다. 손님들은 현관문을 통해, 정식으로,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침입은 아니었다. 침입은 아니었지만, 손님들은 예고나 경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그 점에서는 철거 단원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집. 누구의 시선, 손길, 방해도 내 의지대로 피할 수 있는 나의 집. 그 안정적인 공간은 파괴당하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손님들' 속 재개발로 주인공을 파괴하는 '철거 단원'들이 아닌 그녀를 내부에서부터 파괴시키는 또 다른 손님이 있다. 바로 철거로부터 그녀를 지켜주겠다 말하며 불쑥 집을 찾아온 세 명의 손님들이다. 손님들은 단순한 방문자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주인공의 평화로운 공간을 가로채는 침입자다. 안으로는 낯선 손님들의 방문, 밖으로는 집이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철거의 공포. 이 모든 것들은 그녀가 가진 안정을 서서히 파괴시켜 나간다.

  집이라 표현되는 자아는 철거라는 외부의 폭력을 통해, 또 초대하지 않은 낯선 손님들이라는 내부의 폭력을 통해 그녀의 자아가 차지하는 공간은 점점 더 수축되어 간다. 철거 단원들이 호시탐탐 그녀의 집을 부수려는 것처럼, 낯선 손님들이 그녀뿐이던 집 안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차지하는 것처럼. 집으로 감싸져있던 안정적 자아는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안과 밖으로 낯선 자들은 그녀를 공격한다.

  '손님들'은 작품 자체로도 독자들에게 '낯선 손님'이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손님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 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가 특별히 없음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존재들은 공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낯설기 때문에 불편하고, 공포스럽지만 그래서 더 궁금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바깥은 벌써 저녁이 오려는 듯 어둑어둑하다. 똑똑똑. 누군가 당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방문 너머 당신을 찾아온 손님은 반가운 손님일까, 아니면 당신을 파괴하러 온 불쾌한 손님일까.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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