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운명에 대한 고군분투의 연속, 연극 '하이젠버그'

글 입력 2018.05.0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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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제목인 하이젠버그는 독일의 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개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물리학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니, 그리 심오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용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중년남녀가 우연적으로 만나 서서히 의존하게 되면서 사랑으로 변하는 이야기이다.

연극을 보기 전에는 간략한 줄거리와 행복하게 탱고를 추고 있는 포스터에 담긴 사진으로 추측해보건대, 중년남녀가 기차역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이 이루어지는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우려가 약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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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들어서니, 독특한 무대가 시선을 끌었다. 직사각형 무대 형식과 관객들이 마주보는 형태의 무대. 완전히 오픈되어 있어서 신선했다. 이렇다보니, 간혹 공연에 집중해야 하는데 관객에게 시선이 분산되는 역효과가 나오진 않을까 우려도 됐다. 그리고 ㄷ자 형태로 되어 있어 뭔가 토론 방송에서나 볼 법한 무대같아 보였다랄까.

여기서 더 놀라운 점은 암전이 되는 순간마다 종소리가 울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봐온 연극에서는 암전이 되는 동안 노래를 들려준다거나 아니면 노래가 전혀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이곳은 암전임을 딱 암시해주는 효과음을 삽입했다니, 뭔가 관객들에게 장면 전환임을 확실히 각인시켜주면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랄까.

더불어 암전되는 순간 많은 관객들이 '우와'하고 감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익히 봐왔던 암흑 공간이 아닌, 수많은 암호 속에 갇혀 있는 듯한 공간으로 변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무대를 보면 빛이 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효과는 형광 물감으로 디자인하여 조명이 꺼지면 빛을 발하게끔 했다고 한다. 여느 연극과는 달리 무대연출이 굉장히 신박하다.

*

90분 내내 이야기가 굉장히 중구난방이다. 죠지의 첫 마디부터가 충격적이다. "내 기분이 그래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그녀는 무엇때문에 이 말을 첫 마디로 내던졌을까. 그리고 점점 갈수록 이야기는 난관에 봉착한다. 그녀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이 끊임없이 배출된다. 스포츠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알렉스는 배드민턴으로 가벼운 셔틀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있다면 죠지는 테니스로 강하게 스매시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랄까. 죠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격인가 싶은 착각도 들게 한다.

죠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의식의 흐름대로 흐르고 있고. 쉴 틈없이 대사를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너무 엉뚱하고 자유분방해서 삼천포로 빠지는 듯한 대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이 연극은 관객에게 그 어떠한 해석도, 이해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무의미한 대사들의 연속이었다. 인물의 대사가 잠시 이해되려는 순간이 다가오면, 그 진지함을 곧 무너뜨리곤 했다.

나이 설정에서도 놀라웠다. 75세 알렉스와 42세 죠지. 무려 33살 차이를 보여준다. 서로간의 세대 차이를 보여주듯 인물의 성격 또한 다름을 나타내고 있다. 알렉스는 진지한 면을, 죠지는 자유분방함을 표현한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독신으로 살아온 알렉스. 그리고 19살 아들을 둔 미혼모 죠지. 그들은 맞는 부분이 없다고 해도 사실 무방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발견한다. 서로의 힘들었던 부분들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심한 나이 차이에 죄책감을 느껴 급히 마음을 정리하려는 알렉스와 나이 차이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오롯이 사랑에 대한 마음을 숨김없이 내비추는 죠지.

어쩌면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 대하는 방식을 가감없이 보여준 것이 아닐까한다. 누군가는 숨김없이 자신의 모든 것들을 꺼내어 보일 것이며, 누군가는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쓰며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기도 할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도 맞는 퍼즐 한 조각 쯤은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가 아닐까. 어쩌면 90분 동안 쏟아낸 대사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 그들이 맞춰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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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하이젠버그> 공간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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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1.
죠지 : 난 특별하지 않잖아요.
알렉스 : 왜 그렇게 생각하죠?
죠지 : 돈이 많지 않잖아요.

2. 
죠지 : 가지마세요, 당신이 여기 있어서 즐거워요. 

3.
알렉스 : 그 동안 잘 있었어요? 한 동안 못 봤는데, 예쁘네.
죠지 : 내가 여기서 일하는거 어떻게 알았죠?
알렉스 : 검색했어요.

4.
죠지 : 쉬는 날 뭐해요?
알렉스 : 가게 문 닫죠.
죠지 : 휴가가고 싶은 날 뭐해요?
알렉스 : 휴가가본 적 없어요.
죠지 : 쉬는 날이 있다고 칩시다, 쉬는 날에 뭐하죠?
알렉스 : 산책.

5.
죠지 : 몇 살이에요?
알렉스 : 75.
죠지 : 진짜? 75?
알렉스 : 진짜!
죠지 : 나 태어났을 때 서른 세 살이야? 하하하하하. 어머 미쳤나봐.
알렉스 : 아,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난 웃는 거 보는 게 좋았으니까.

6. 
알렉스 : 결혼할 생각 있었어요, 20대땐. 약혼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갈수록 다른 남자들만 쳐다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50대 때 계약을 파기해버렸어요.

7.
알렉스 : 부모님은 내가 17살 때 돌아가셨어요. 폐암 선고 받고 2주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5개월 후 아버지는 엄마를 따라갔어요. 아버지는 감당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난 영국 군대 자원입대 했어요.

8.
알렉스 : 나보다 두 살 많았으니까, 나보다 항상 두 살 많을거야.
죠지 : 누이 목소리는 어때? 항상 그 모습인가? 신기하게도 항상 똑같아?
알렉스 : 똑같아.  
죠지 : 무슨 얘기 했어요?
알렉스 : 당신에 대해 물었지.
죠지 : 아 그래요? 뭐라고 해요?
알렉스 : 아무말도 안 하더군. 내가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할 땐, 슬쩍 사라져 버리더군. 집중하기가 어려워.
죠지 : 뭘 판단해야 된다는 거에요?
알렉스 : 조금씩, 조금씩 두려워.
죠지 : 뭐가 두려워?
알렉스 : 내 예감이. 내가 조금씩..
죠지 : 그냥 말해요.  
알렉스 : 당신하고 사랑에 빠진거 같애.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야. 내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겠어. 그렇게 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내가 멈출게요, 지금 당장!

9.
죠지 : 내 남자친구 할래요?
알렉스 : 무슨 말이지?
죠지 : 제대로 데이트 좀 하자구. 뭐 나도 좀 안아주구, 돌봐주구, 수프같은 거 좀 끓여주구, 섹스라도 하는 날엔 당신이 자고 가거나. 티비보면서 발 마사지 같은 거 좀 할 수 있구. 나를 안아주기도 하거나. 그런거 하고 싶지 않아요? 
알렉스 : 아니, 그렇지 않아. 아니.
죠지 : 아니구나.
알렉스 : 당연히 아니지.
죠지 : 아, 그렇구나.
알렉스 : 내 여자친구하기엔 당신이 너무 어려. 아니, 사실 내가 여자친구하기엔 너무 늙었다고 할 수 있는게 맞겠지.  
죠지 : 나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
알렉스 : 아냐, 어려! 나에 비해서 너무나. 그야말로 졸라 어린 10대라고!  
죠지 : 하하하하
알렉스 : 웃지 말아요.
죠지 : 아니, 미안해요. 행복하네.
알렉스 : 사람은 누구나 한 곳에나 신경쓰지. 예를 들면 우린 오래간만에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겠지. 난 당신이랑 섹스하는 게 좋아. 생각만 해도 굉장하고. 난 지금 이 나이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유쾌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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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개요 >

 
□ 공연명  : 연극 '하이젠버그'

□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공연기간 : 2018년 4월 24일(화) - 5월 20일(일)

□ 공연시간 : 90분

□ 공연시간 : 화-금요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3시, 6시/ 일요일 오후 4시 (공휴일, 월요일 공연없음) 

□ 주최 :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 한양대학교, 한양레퍼토리씨어터, 샛별당엔터테인먼트

□ 등급 : 중학생 이상 관람가 

□ 작 : 사이먼 스티븐스

□ 연출 : 김민정
- 2017.10월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상>,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2017.07월 연극 <비너스 인 퍼>, 두산아트센터 Space111
- 2016.11월 오페라 <사랑의 묘약>, 롯데콘서트홀
- 2016.09월 뮤지컬 <씨왓아이워너씨>, 홍익대 아트센터 소극장
- 2016.08월 뮤지컬 <트레이시 유>, 아트원씨어터
- 2015. 10월 뮤지컬 <명동 로망스>,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 2015. 02월 뮤지컬 <52blue>, 프로젝트박스 시야
- 2015. 01월 뮤지컬 <파리넬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 출연 : 정동환, 방진의

□ 스태프 : 번역 김희수, 무대 김종석, 조명 장원섭, 음향 David Van Tieghem, 분장 백지영, 의상 박소영, 조연출 조민정, 포토그래퍼 김일다, 그래픽디자이너 이샘, 프로듀서 박용호 석재원

□ 가격 : R석 50,000원 / S석 35,000원

□ 공연문의 : 리앤홍 070-8795-6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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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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