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행복하기에, 연극 하이젠버그

글 입력 2018.05.0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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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별’을 겪는 일이 잦아졌다. 비단 나 뿐 아니라, 주변 전체를 통틀어서 말이다. 25살의 키워드는 이별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꽤나 오래 사겼던 연인과 결별한다거나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에게서 일방적인 끊어냄을 당한다거나, 절교까진 아니지만 과거의 친했던 이들과 이제는 예전같지 않음을 깨닫고 서서히 멀어져가게 되는 여러 상황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다. 언젠가 세상의 전부였던 이를 아무렇지 않게 뒤로하고,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관계가 너무도 허무하게 깨져버리는 모습들을 보며 내가 무언가를 소중히 하고, 믿고, 사랑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어차피 변하고 사라져버릴 것을 지금 붙들고 있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지금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미래의 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아닌 ‘소중했던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 ‘나’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고 나니 하루가 무기력해졌다. 지금 내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들이라 해봤자 언제 어디서 갑자기 소중하지 않아질지 모르고,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말이다. 대체 삶은 왜 사는 걸까. 역사에 이름 석자 남기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나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며 나의 역사를 세워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중한 것들을 뒤로해가며 찾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 내가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연을 맺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개인들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런 고민들로 한창일 때, 연극 하이젠버그를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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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3살이나 차이가 나는 조지와 알렉스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봤을 때 내가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조지에 비해 알렉스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혼자 남겨질 조지는 어떡하지. 빠른 시일 내에 나를 떠날 것이 분명한 이와 연을 맺는 게 과연 옳을 일일까.

“33살 차이라니, 와우!”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이 무색하게 정작 당사자인 조지는 한번 놀라고 크게 웃고 넘어갔다. 그녀에게 33살의 나이 차이는 ‘한번 크게 놀라고 웃고’ 넘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기차역에서 갑자기 낯선 남자의 목덜미에 키스를 했다는,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어떤 관점으로 보면 성추행에 속하는 행위로 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이라 처음엔 공감을 못했었는데. ‘미래’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조지의 태도에 처음으로 그들을 주의 깊게 보게 됐다. 나는 지금 내게 닥쳐온 이별들로도 벌벌 떨고 있는데, 조지는 어쩜 저렇게 거침없을까. 무엇이 조지를 저토록 거침없게 만들까.

결과적으로 ‘무엇이’ 조지를 그토록이나 거침없게 만드는지는 연극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거침없는 모습들이 만들어낸 그들의 미래가. 섹스를 하고, 알렉스에게 돈을 받고, 함께 아들을 찾으러 뉴저지로 향한 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대책 없고 충동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애틋하고 아름다워 보였을 뿐이었다. 아마 평생을 모아왔을 돈을 ‘당신에게 돈 때문에 접근했었다’는 조지에게 덜컥 내주면서 처음으로 영국을 벗어나보는 알렉스의 모습이. 아들을 찾을 수 있을지 어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알렉스와 왈츠를 추는 조지의 모습이. 그저 좋아보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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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의 관계를 보고 나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알렉스는 나같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 세상을 떠난 누나와, 젊은 시절 연인과의 연을 끌어안고 과거에 사는 사람. 이미 떠나버린 그 연들을 홀로 붙잡고 있는 사람. 조지를 만나기 전까지의 알렉스가 상상할 수 있던 자신의 미래는 기껏해야 정육점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영국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삶을 마감하는 것 정도였으리라.

그의 75년 삶에 조지와의 만남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종류의 것이다. 그렇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이 그 묵돈을 주며 처음으로 뉴저지로 떠나리라고는 더더욱. 과거의 연을 붙잡고 살던 사람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행복을 맛보는 것이다. 여전히 그의 곁에는 누나도, 과거의 연인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알렉스는 행복해보였다. 그의 삶엔 수많은 이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연으로 행복해진 것이다.

조지가 부엌으로 간 뒤 홀로 눈물짓던 알렉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는 그 장면은 그들에게 앞으로 닥칠 미래가 어떻든 왈츠를 추는 그 순간만을 축복하게 만들었다. 사실 여전히 그 둘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미지수다. 조지가 아들을 찾을 수 있을지, 조지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갈 알렉스의 삶을 둘이 어떻게 견뎌나갈지. 아니 여기까지 가기도 전에 알렉스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지가 곁에 있을 수 있을지 조차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함께 하기에 지금 당장 행복하다.

내가 쥐고 있던 연들이 나를 떠나는 것은 분명 마음이 아프다. 내가 그 연들이 없이도 잘 살아갈 거란 사실이 더 뼈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들 중에 그 사람들만한 연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사람들만한 연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그들조차 뒤로 해야하는 어느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맞딱뜨린 조지 덕에 행복해진 알렉스처럼, 알렉스 덕에 행복해진 조지처럼. 그 순간 함께하고 있는 이들 덕에 그 순간 행복하다면 그래도 우리 삶을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해서 떠난 인연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진 것도, 허망감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여기기보다 약간은 더 기대하고 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듯 했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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