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유 없는 만남, 이유 있는 인연을 만들어내다 - 연극 하이젠버그

글 입력 2018.05.06 22:1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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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손을 베였다. 손가락 끝에 쓰라린 생채기가 생겼다. 걱정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딱지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아, 지금은 형태 없는 마음에 생채기가 생긴 것 같다. 어떻게 해야 그 위에 딱지가 앉아 더 이상 안 아플 수 있을까. 마음이 다치는 건 정말 쉽다. 여과 없이 내뱉는 상대방의 말, 세상 혼자라고 느껴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오는 스트레스, 잡생각이 많아 상상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걱정 등.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런 감정들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단 필자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 지인들도 흔히 겪고 있는 증상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일상의 우울을 버텨낸다.

연극을 보러 가는 그 날도 썩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의 문화생활이고 일상의 쉼표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공연장에 들어갔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런지 무대 구성에 눈이 갔다. 무대는 협소했지만 두 남녀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공간이었고 관람석은 무대를 둘러싼 형태였다. 사방에서 모이는 관객들의 시선을 이용해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무대의 각 모서리와 정중앙에서 열연했다. 그러다 배우들과도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두 배우의 악센트 있는 발음과 섬세한 감정 표현은 금세 공연에 빠져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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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하이젠버그>는 우연히 기차역에서 마주친 두 남녀의 인연을 그리고 있다. 장르 구별하지 않고 음악을 듣고 시간이 빌 때마다 산책을 몇 시간씩 즐겨하는 70대 노인 알렉스. 그를 나타내는 키워드는 정직, 진중, 그리고 외부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는 삶이다. 고독을 스스로 즐겨하는 알렉스 앞에 나타난 33세의 어린 그녀 조지는 일단 끊임없이 재잘댄다. 끊임없이 대화를 주도하고 필요하면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톡톡 튀는 이미지가 그녀를 적절히 꾸며낸다. 때로는 거침없는 욕설로 알렉스를 비롯해 관람객들도 당황하게 했다.

항상 일정한 삶을 살던 사람과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않는 성격의 사람이 만나면, 당연 대화의 충돌이 생긴다. 둘의 대화는 예측 불가능의 상황이다. 극 초반 두 사람의 대화는 치열하다고 표현하면 될까? 말하고 받아치며 대화가 끊길만하면 조지는 새로운 주제를 꺼낸다. 알렉스와 조지는 서로에게 변수 X와 같은 존재이다. 자신과 정반대의 관성을 살아온 사람과 대화를 하면 피로함이 금방 몰려올 법하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만남과 대화를 이어간다. 둘 사이를 이어가게 해준 끈은 무엇일까?

그 공통점은 바로 ‘상처’이다. 서로 가족에 대한 상처가 있음에 이야기에 공감을 해줄 수 있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를 해준다. 그렇게 정이 들고 계속된 조지의 사랑 표현에 알렉스는 그녀를 말벗 이상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것 같아서 무섭다.’라고 고백하고 그만둬야겠다는 알렉스에게 조지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만 다시 관계는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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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정말 예측하기 쉬운 사람이야.”_알렉스의 말

- “같은 경험을 하면서 다른 시각을 가지지.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야.”_조지의 말




두려워하지 않는 오늘 그리고 함부로 예측하지 않는 내일


인생의 역사를 통틀어서 두 사람이 만나는 첫 순간부터 이상한 모험이었음을 그들은 당시에 알았을까? 조지가 기차역에서 말을 걸지 않았다면, 자신을 찾아 온 조지를 알렉스가 문전박대했다면, 둘은 함께 미래를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대하지도 않은 유쾌한 일들’이라고 칭하며 서로를 말미암아 이제껏 넘겨온 스케치북에 다른 그림을 그려본다. 마음에 난 상처를 내버려두면 더 깊게 덧나는 법이다. 상처의 깊이를 잴 수는 없지만 상처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신을 더 극하게 몰아온 알렉스에게 조지는 긍정의 변수였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앞서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우울을 버텨낸다고 말했다.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내 방식대로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것처럼 불확실하고 당장 내일도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모름’이 진실이다. 낯선 만남에서도 위로를 얻은 두 사람이 있는데 왜 혼자 있는가? 그저 밖으로 나가서 ‘기꺼이’ 낯설게 행동해보자.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상상도 못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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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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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다엑
    • 이유 없는 만남, 이유 있는 인연을 만들어내다. 이 제목이 정말 좋네요.
        공감가는 내용도, 좋은 표현도 너무도 많은 글이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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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johio
    • 2018.05.09 12:5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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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엑다엑님!!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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