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공포 -제39회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글 입력 2018.05.0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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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과 함께 바라본 
불가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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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놓쳐 버린 탓에 손꼽아 기다리던 연극 <공포>를 첫 무대로 만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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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마지막 부분에서 메타포로 등장하는 모자를 기억하는 필자로서 '그런데 모자가 여기서 무슨 상관이 있는가?'의 원문처럼 먹먹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털신을 가지러 왔다가 아내의 부정을 목도하지만 별말없이 이내 돌아서며 한참을 가다가 구토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쓸쓸하고 처연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한 세기 전이 배경인 이 극은 시대상을 보여주진 않지만,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에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고, 목숨을 끊기도 하고, 타인을 해치기도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은 닮아있습니다.

'당신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시요?' 극 중 드미트리는 이 대사를 여러번 반복합니다. 그는 삶을 이해할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데요, 그래서 그는 삶을 잊기위해 일합니다. 드미트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가 함께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떨고 있고 그에게 유령이나 저승이나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바로 '삶'이었습니다.

삶의 불가해함은 누구에게나 공평할까요? 산다는 것 자체에 공포를 느끼는 농장주 실린과 거친 삶이지만 사는 거 자체가 인간의 의지임을 알고 있는 하인 가브릴라. 신의 작은 말씀에도 귀 기울이는 조시마 신부와 '신은 자신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라는 요제프 신부. 인물의 대비와 각각 삶을 대하는 방식을 지켜보면서 나의 삶을  반추하게 되었는데요, 농장주 실린이 가브리엘에게 던져준 포도주 10병은 어쩌면 신이 인간을 시험에 들게하는 듯 보였습니다. 친구로서 실린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체홉의 신적투영이었을까?

막과 장이 바뀔때면 시편이나 예레미야서의 성경구절이 나오며 해당하는 장을 설명하며 무대를 이어갔는데요, 가난하고 낮은 자들에게 보여주는 깊은 동정과, 욕망을 바라보는 차디찬 이성, 그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 연약함... 이들이야말로 진실치 못한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근대적 인간의 모습이며,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인간성에 대한 진솔한 물음과 대답일 것입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문득 존재를 드러내는 심연, 침묵, 그리고 공포.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다가올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알 수가 없음의 공포. 

무대위의 실린이 느끼는, 어쩌면 체홉이 느꼈을 공포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던 19세기 말에서 근대라는 문명의 전환기가 깨어 나오는 고통일 것임과 동시에, 그 불안과 고뇌는 21세기초, 지금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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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4월, 자신의 문학적 이름이 막 세상에 알려지기 시점에 안톤 체홉은 모든 문학 활동을 접어둔 채 유형지인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3개월에 걸친 여행 끝에 사할린 섬에 도착한 체홉은 유형지의 실태를 상세하게 시찰한 후 8개월 뒤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 다음 해 사할린에서의 조사 활동에 대한 보고서인 '사할린 섬'을 집필합니다.

이 여행 이후 체호프의 작품들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인간적인 연민과 우수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초기작들과 다르지 않으나, 희극적인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고,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나 실존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후 발표한 단편소설인 '공포'를 바탕으로 소설 속 화자인 ‘나’를 ‘안톤 체홉’이라 설정하여 희곡으로 새롭게 구성한 이번 작품에서 체홉으로부터 시작된,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합니다.

'공포'의 등장인물은 삶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진부하다고 말하는데요, 체홉은 삶을 어찌 바라보았을까? 왜 병든 몸을 이끌고 사할린에 갔을까? 얼어붙은 대지와,몰아치는 바다와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곳에 왜 머물렀을까?

공연장을 나서며 수많은 질문이 스치면서도 결국은 먹먹합에 원작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요, 체홉의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연극적 탐구가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오는 13일 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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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호흡으로 무대를 열어준 배우들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근대적 인간에 대한 재조명을 위한 고재귀 작가의 고민을 담은 연극 <공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이해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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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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