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감각의 축제, 오늘은 수제맥주

글 입력 2018.05.0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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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감각의 축제
오늘은 수제맥주


 20살의 나도 알코올이 주는 뇌기능의 마비에 중독 되어 있었다. 뇌에 들이부어진 알콜은 많은 것을 약속했다. 코가 아려오는 알콜의 첫 기억은 회기역 파전집 주변에서 파전이 아니라 피자 비스무리한 것을 구웠을 때부터 시작된다. 당시 나는 비로소야,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진다는' 김광균 시인의 시구를 몸소 느꼈다. 중학생 때 나는 저 시구가 이해가 가지 않아 국어 선생님한테 질타를 받곤 했는데, 어깨춤 몇 번 술 몇 병에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받아들였다. 아직까지 나는 물 젖은 솜이 되어가는 육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이 고속도로를 붕붕 달리는 기분을 그리 꺼리지 않는다.

 지금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술만이 주는 다양한 감각을 쫓기 위해 마셨다. 친구의 기행이 재밌었건, 뇌가 어린이 의자에 앉아 침을 흘리고 있어서였건, 술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감각을 찾게했다. 개인적으로도 매력이 넘치는 술자리지만, 더 매력있는 점은 나의 이런 '인간 언저리'스러운 생활에 반응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는 점이다. 일분 일초가 관리의 대상이 되는 현대인들에게 가격 저렴한 일탈의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가끔은 집단적인 광기에 휩쓸리는 것도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생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술 한잔 하자'라는 말도 그 사람과 딱딱한 환경을 더 많이 공유할수록 쉽게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엉망진창인 술습관을 고백함에 있어서 이 글의 끝에 '이제 회개 했습니다. 취할정도로 마시는건 멍청한 짓이죠.'라는 말을 기대한다면, 먼저 사과드린다. 아쉽게도 나는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리고 왔다. 지금 리뷰를 쓰는 지금을 포함해, <오늘은 수제맥주>와 함께 하는 경험은 다이어트로 멈추고 있었던 술덕후의 기억을 깨우는 작업이었다. 맥주에 대해서 간단히 연구하고, 가이드에 따라 마시고, 노트를 마구 휘갈기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새로운 감각을 찾아 떠났던 인간 언저리' 생활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것이다. 알 껍질을 파괴해야만 자유의 신에게 날아갈 수 있다는 데미안의 구절처럼, 술을 도구가 아니라 음료로 인식하는 과정은 신선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취하길 바라고, 새로운 감각을 쫓는다. 하지만 이젠 술을 통해 마비가 아닌 각성을 갈구하게 된 정도일까? 이런 맥락에서 <오늘은 수제맥주>를 따라가는 경험은 분명히 맥주를 '맛보게'되는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을 리뷰로 잘 풀어내기 위해선,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킨포크 테이블>과 <남미가정식>을 하나의 과정으로서 리뷰한 것처럼, 이번 책의 리뷰도 경험으로 풀어내보려 한다. 책을 뒤지고 메뉴판과 노트를 두고 공부하듯이 작업한 아마추어식 경험이 되겠지만, 최대한 맛을 느끼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방문한 수제맥주집은, 노원에 위치한 <바네하임>이다.내가 다니는 학교 바로 앞인 곳이었고, 사실 여유가 조금만 있어도 자주 방문하던 곳이었다.

 프리뷰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는데, 책에서도 발견하니 사회에서 동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굳이 집에서 두시간쯤 되는 길을 강행한 이유기도 했고,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향수가 좋은 맥주를 만나 후회 없는 선택을 했다. 뻔하니 양조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테리어였거니 했던 나의 지난 무심함을 반성하며, 글을 시작하려 한다. 글을 읽다가 문득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한번 좋은 사람과 함께 가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나처럼 조금 꼴값을 떨며 혼자 우아하게 마셔도 좋다. 여유와 이유가 있다면 뭔들 나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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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메인을 장식한 첫번째 맥주, 프레아(Frea Ale)다. 책에서도 추천한 맥주고, 이름이 아름다워서 주문했다. 계산할 때 점원에게 한번 더 물어보니, 프레아 '군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름부터가 자신감이 느껴져 기대를 가지고 주문했다.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시는 생맥주와 미묘하게 다른 색깔을 띄고 있다. Session brown Ale이라는 종류에 들어가는데, 책에서는 좀 더 진한색으로 묘사되는 듯 하나, 실제로 주문했을 때는 과일을 짜내고 조금 시간이 지난 것 같은 색깔이었다. 마냥 밝은 색깔은 아닌데, 과실이 가지고 있는 청량한 빛감이라고 해야할까, 이 느낌은 마시다 보니까 든 생각이었다. 아마 이런 느낌은 프레아 에일의 맛이 영향을 준 것 같다.

 거품이 막 올라온 상태에서 마신 맥주여서, 매우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입술에 처음 닿는 느낌은 일반적인 생맥주에서 느낄 수 없는 형태였다. 굳이 설명하자면 무언가 증기를 마시는 느낌이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뭔가 닿았는데 사라진 아쉬운 촉감을 줬다. 처음 마시니까 혀의 맨 앞 끝부분부터 자극해 들어왔다.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강한 알싸함 없이 부드럽게 넘어갔는데, 이런 점이 메뉴판에서 말한 '가벼움'으로 추정된다. 프레아 에일에서 향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코끝을 살짝 찌르고 안쪽까지 부드럽게 들어오는 향기는 상큼하고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 무슨 과일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고, 무언가 과일같은 상큼함이 있는 맥주였다. 가볍고, 가볍다 보니 물처럼 기분좋게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맥주였다.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때 가장 먼저 선택할만한 맥주였고, 가장 많은 양을 시킨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나는 바네하임에 들어와 가장 먼저 마시는 술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게 '프레아'인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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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부터는 시음잔으로 마셨다. 두번째 시음 맥주는 노트에일(Nott Ale)이었다. 노트는 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하는 맥주다. 후술할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밤의 이미지에 걸맞다. 깊고 어둡지만, 그 어떤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휴식과 비밀을 가지고 있는 밤의 어둠과 닮았다. 종류는 Session Stout다. 맛에 있어서는 이 날 마신 맥주 중 가장 나의 취향에 맞았다. 다른 맥주도 각자의 매력이 있었지만, 노트에일에는 목에 넘어가는 느낌과 전반적인 맛이 정말 특별했다. 그 넘어가는 느낌은 마치 검은색 고급 벨벳을 입 안에 덮는다고 해야할까, 내가 알고 있는 맥주 특유의 알싸한 맛이 적었다.

 프레아 에일이 혀끝부터 자극해왔다면, 노트 에일은 혀의 중간부터 들어와 부드럽게 넘어갔다. 주류에서 이런 느낌을 느낀다는 것이 자체가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잘 구워진 빵을 먹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빌어 말하자면, 잘 구워진 깔끔한 빵의 결이 잘 찢겨 입안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중후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안정감있게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향이 좋았다. 향을 맡아보면 그 목넘김만큼 부드러운 커피향이 코 안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끝보다는 안쪽을 자극하는 맛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검고 거칠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반전이 있는 맛 덕분에 그 검고 거칠어보이는 모습도 고급스러운 보석처럼 보였다. 거품이 빠져도 맛이 있는 맥주여서, 다음에 간다면 노트 에일을 더 많이 마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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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드에일(Land Ale)은 정말 사랑스러운 맛으로 기억한다! Irish red Ale에 속하는 이 맥주는, 정말 스위트한 느낌을 줬다. 프레아 에일이 찬란하게 빛나는 가볍고 시원시원해 유쾌한 왕처럼 보이고, 노트 에일이 의문스럽고 부드러운 사제처럼 보였다면, 란드에일은 젊은이를 상상하게 한다. 색깔부터 눈에 띄고 사랑스럽지만, 달콤씁쓸한 전체적인 맛의 구성이 그렇다. 쌉싸름한 맛도 있지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향과 맛은 단맛이다. 단맛이 먼저 퍼지고, 약간 알싸하고 쓴 맛이 그 뒤를 따라나오는데, 입에 들어오면 혀 안쪽의 양 끝을 자극한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데, 나는 란드 에일에서 유난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색이나 향기 면에 있어서 가장 눈에 띄는 맥주였고, 입 안에서 맛이 조금 오래 남는 맥주였다. 마시면서 계속 내 젊고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함께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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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맛본 마지막 맥주는, 벚꽃라거였다. 봄 특선으로 나온 맥주다. 란드 에일도 예쁜 색깔로 눈을 즐겁게 했지만, 벚꽃라거는 정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벚꽃을 공수해와 만든 벚꽃라거는, 올봄 벚꽃에 비친 햇살들을 담아 녹여낸 것처럼 찬란한 백금빛으로 빛난다. 이런 사랑스러운 비쥬얼과, 미약한 풀내음이 함께 합쳐져 책에서도 감히 '커플 추천 맥주'라는 명칭을 받게 된 것 같다. 맛에 있어서는 스쳐지나가는 꽃바람 같은 맛이났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느낀 벚꽃라거는 노트에일이나 란드에일과 비교해 혀 전체를 자극하되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느낌을 줬다. 처음에 입 가득 퍼지는 단맛에 놀라고, 후에는 씁쓸한 맛을 즐기기 위해 혓바닥을 이리저리 돌리는 재미가 있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혀 앞 끝쪽에서 단맛이 많이 났고, 코 안까지 향이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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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나는 맛을 적극적으로 느끼고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수제맥주>와 함께 하는 여정은 좀 더 특별하게 남는다. 맥주를 마시고 글을 쓰면서 문득 이것도 요리를 할 때의 감각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먹으면서 존재한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자본가들은 재료와 상품의 경계를 더욱 더 두껍게 만든다. 찍어낸 공산품과 가공된 식재료들 사이에서, '시간', '비용', '효율'이라는 원칙들에 밀려 현대인들의 '맛'은 손쉽게 도외시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먹는 생물이고, 선사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음식을 어떤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본능으로 갖추고 있다. 어느날 길을 가다가 느낀 바람이 너무 시원하고 자연스러워서 울컥하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것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단적인 광기의 표상이나, 인간 언저리의 느낌을 주는 '술자리'는 사실 죄가 없다. 그렇게 만든 복잡한 사회 구조와 문화가 죄라면 죄일 것이다. 수도원에서 시작한 양조술은, 사람의 감각을 깨우는 또다른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수제맥주>는 음주를 좀 더 다양한 감각을 추구하는 유희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고, 실제로 나는 만족했다. 글을 쓰다보니 문득 또 그리운 얼굴들이 맥주향과 함께 피어오른다. 다음에 맥주를 마실 때는, 마비가 아니라 감각의 공유를 위해 잔을 들어야겠다.


출판사   디스커버리미디어
지은이   글과 사진 오윤희, 그림 원관연
분  야    요리/술  
사  양   변형 신국판(143*195), 전면 컬러
면  수   320쪽  
가  격   16,000원   
출간일  2018년 4월 10일
ISBN   979-11-88829-01-9 03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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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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