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무가 되고 싶었던 사람 - 채식주의자 [도서]

글 입력 2018.05.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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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소설이 재미없는 건 아니다. 매우 흥미롭고 잘 읽히지만, 뒤로 갈수록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로 책을 덮는다.

이런 느낌을 받은 책을 오랜만에 읽었던 것 같다. 술술 읽히는 책이나 중간중간 끊게 되는 책은 있었어도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은 오랜만이라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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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지 못한 사람 - 채식주의자


세 개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달라지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전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각자 영혜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1장에서는 영혜의 남편, 2장은 영혜의 형부, 3장은 영혜의 언니가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각자가 영혜라는 한 인물을 두고 어떤 시각과 생각으로 서술하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누구의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영혜를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같이 아파하거나 영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각자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처럼 여기 나오는 사람들도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걸어오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을 것이다. 그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영혜의 모습은 그만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영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냥 그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맞지 않았을 뿐 누가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 그녀가 결혼 후에 달라졌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고 알던 그녀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살아지고 낯선 여자가 등장한 것이다. 결혼 전 외모, 의상, 행동 모두가 무난했던 영혜는 하루아침에 채식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영혜와 영혜의 남편은 부딪히기 시작한다.

영혜는 앞뒤가 생략된 불분명한 말을 한다. 누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처럼 영혜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는 힘들다. 원래도 말이 없던 그녀는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짧은 단어만 내뱉으며 대화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한다. 채식으로 그녀와 그는 점점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남편이 보는 영혜는 제정신이 아닌 비정상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 과정은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실제 우리도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매도하는 상황을 많이 보곤 한다. 결국, 무난한 사회인인 남편은 영혜를 미쳤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혼을 하고 만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 - 몽고반점


2장에서는 영혜의 형부가 처제의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의 존재를 안 후 일어난 상황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실 포르노그래피라는 것에 생소했던 나는 이 장을 읽은 후 열심히 검색해 봤다. 그러나 아직도 예술과 성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경계선이 불분명하고 의견이 각기 달라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이야기한다. 사실 예술은 성적 본능이 구현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일부분 존재한다. 그래서 형부와 영혜 사이에 일어난 일이 예술과 성 사이에 어느 쪽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어 고민했다. 솔직히 예술을 떼고 본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꽃과 꽃의 결합, 즉 육체의 아름다운 곡선을 통해 꽃을 형상화한 행위는 예술이라는 둘레 안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 바디페인팅은 예술의 하나로 생각되지만 어디까지가 바디페인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경계는 무엇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그녀에게 성적으로 끌렸는지 그녀의 몽고반점으로 인해 예술에서 오는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감정이 끓어오른 것인지 알 수 없다. 나까지 혼란스러워 2장이 끝날 때까지 몽롱한 상태로 읽어 내려갔다.

영혜의 형부는 계속해서 이성을 잡아보지만, 본능과도 같은 예술적인 호기심에 결국은 굴복하게 되고 그 끝은 모든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 어쩌면 그가 속한 세상에서 몽고반점은 상상할 수 없는 이상적인 세계, 꺼지는 예술의 불씨를 지피는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물론 너무 강렬한 욕구로 예술은 변질되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모든 걸 받아들인 사람 - 나무 불꽃


3장에서는 사실 언니의 마음을 대입해서 힘들게 한 자 한 자 읽었다. 왠지 모르게 읽는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한 번에 언니의 마음과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힘들었고 우울한 분위기에 나까지 그 감정에 빠져 유독 힘들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면서 그냥 영혜의 언니가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쩌면 무거운 그 짐이 언니가 살아가는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버거워 이 끈을 놓으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거라는 본능적인 생각. 음식을 먹지 않고 빛으로 영양분을 흡수하려고 창문에서 나오는 빛에 몸을 대고 햇빛을 받는 영혜의 모습에서는 정말 빛으로 모든 것을 흡수하는 편안한 표정인 영혜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무라는 자연. 얼마나 포근하고 편하고 상쾌한가.

그저 언니는 동생을 아무 편견 없이 대한다. 나중에 동생이 나무가 되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말에도 그녀는 동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동생이 이런 마음이었을까를 진정으로 깨닫는다. 힘든 일을 여러 번 겪어 세상을 달관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상황은 악화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실 누가 영혜를 제대로 묘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할까. 그저 정신병의 하나라고 단락 지으면서 그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끝내려고 한 건 아닐까. 모든 것은 이해하려고 하면 어려워지지만 어떤 하나로 정의를 내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모르는 것은 이해하려 들지 않고 아픈 사람, 정신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을 정의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가. 남들과 다른 모습은 질타받고 예민하다는 가벼운 말로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해버린다.

그(영혜의 형부)의 모습도 예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할 행동투성이다. 그도 세상에서 남들과 다른 가치관으로 분류된 정신이상자가 아니었을까. 사실 누가 정상인이고 비정상인일까. 정상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 자체는 누가 정의한 것일까. 영혜의 모습은 어쩌면 그들의 눈에만 기이하게 비친 게 아닐까. 생각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저자는 채식주의자라는 하나의 가치관을 예로 들었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면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이처럼 한 사람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다양한 본질을 볼 수 있다. 세상은 다양한 본질을 가진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간다. 그러다 사건이나 사고가 나면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은 때론 폭력적으로 때론 이성, 감성적으로 사회와 또 다른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예기치 않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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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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