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에게 고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공연]

글 입력 2018.05.1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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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보기 전, 책으로 먼저 이 작품을 접하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읽어야만 했다. 희곡이기에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연극에서 형상화된 모습을 감상하고 싶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숨이 차분해진다. 급하지 않고 차분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척박한 배경과 더불어 메마른 둘의 대화가 계속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그들의 대화 스타일이 매력적으로만 다가온다. 그래서 한 번 읽을 때 최대한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들이 왜 내뱉는지 어떤 생각으로 뱉은 말인지 해석하기 위해 꽤 노력했다. 그리고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마음에 와닿아 당장 메모장을 켜서 작성해놓곤 했다.

 연극을 보면 마음속에 심었던 궁금증과 의문점들이 속 시원히 해결되리라 생각했지만, 나의 예상은 어느 정도는 적중했고, 어느 정도는 빗나갔다. 무대는 생각했던 바와 비슷한 분위기와 연출이었다. 책에서 읽던 스토리와 다르지 않았지만, 더욱 높은 몰입도로 금방 무대에 빠져들었다.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비극적인 전개를 희극적인 장치를 통해 효과적인 이야기 해석이 가능했지만, 오히려 그들의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해석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 건 오롯이 나의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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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를 기다리며>의 공간은 고요한 시골길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침묵을 뚫고 늙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라는 존재를 기다린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그 안에서의 둘의 대화와 중간에 그들에게 나타난 럭키와 포조가 있지만, 기다림은 계속된다. 그들은 언제부터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시작했는지, 어떻게 시작했는지, 언제까지 지속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경위를 알고자 하더라도 다시금 둘의 대화는 삼천포로 빠지고, 하염없이 기다림이 진행된다. 관객들에게 고도의 존재는 당연히 설명되지 않는다. 고도가 누구이고, 어디서 오고 있는지는 알리지 않는다. 사실 오고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들이 기다리는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데, 고도의 행방을 알려줄 리가 전무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하루 고도만을 기다리며 삶을 채운다.
 
 어쨌든 확실한 건, 고도가 이 고독함과 외로움에서 해방해줄 것이란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그러한 확신을 준 건 아무도 없을 텐데 그들은 그들 스스로 위안을 만들고 탈출구를 생성한다. 아마 이들이 만든 가상의 탈출구만이 기다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 아닐까. 끊임없이 둘은 대화하고, 싸우고, 헐뜯고, 장난치며 교류한다. 그들이 서로를 나누는 사이에 그가 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소년이 가지고 온다. 어쩌면 이게 최선의 결론이며 이들이 만든 상황들의 결과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둘은 희망이라고 믿는 고도를 기다리지만, 이들과 마주하는 건 럭키와 포조이다. 이 둘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진 않는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인생의 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럭키와 포조가 나타나 보이는 상황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대했던 상황과 정반대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고도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일상에 돌아가면 맞닥뜨리게 되는 모습이 포조와 럭키 같은 모습이 아닐까.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관계성이 빗발치는 일상에서 도피해 희망의 고도를 마냥 기다리는 모습을 지향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그렇게 계속해서 고도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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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고도'란 누구이고, 어떤 존재입니까? 라는 질문을 안은 채 나왔다. 나에겐 수많은 고도가 존재하는 듯하다. 하지만 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기다리고 있지 않다. 무언가 끄나풀이라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도를 찾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고도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난 분명 고도를 위해 모험을 하는 중이지만, 고도를 찾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이 더 소중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고도'라는 존재는 나에게 중요하고, '고도'라는 존재가 있기에 계속해서 모험을 지속할 수 있다. 그리고 '고도'를 만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영영 만나지 못하겠지만, '고도'가 없는 삶이라면 목적 지향적인 삶에서 도태될 것이다. 물론 목적이 있는 것만이 참된 삶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목적 없는 삶이 지표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각자 '고도'를 기다리고 있거나, 고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릴 수 있다. 하지만, 난 모든 고도를 향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그들의 발걸음이 고도와 같을지라도, 다를지라도 그들은 자신만의 고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도는 나에게 필요한 것 또는 악이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자신만의 고도를 그려보고 그림의 선대로 걷는 것이 최선의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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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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