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사리는 공포 속에서 각자만의 이유와 방식으로 의연히 대처한다 [공연]

글 입력 2018.05.1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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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우리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기준은 선택의 기준, 감정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의 선택들이 모여 각자의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가 한 사람의 인생을 형성한다. 이러한 사소한 선택의 기준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영향을 끼칠까? 때로는 이러한 선택의 기준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공포의 순간으로 우리를 집어넣기도 한다.

2018년 5월 4일부터 5월 13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였던 연극 '공포'는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으로 선정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작가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은 안톤 체홉의 사할린 경험을 합쳐 새롭게 창작된 작품으로 무대화되었다. 극작가 고재귀가 쓰고 연출가 박상현이 연출한 연극 '공포'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아보자.

공연은 사할린 여행에서 돌아온 체홉이 그의 친구 실린의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친구의 집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일 만한 집이지만, 그 실상은 참혹하다. 끊임없이 우울함과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고, 냉기가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이 차가운 장소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이들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다 제각각으로 다르다. 마리는 공간상 시골이라는 점에 대하여 좋지 않은 마음을 지니고 있고, 실린은 계획되지 않은 삶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가브릴라는 자신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직면하게 되는 힘듦을 겪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인생에 대한 생각과 신념은 자신들만의 철학으로 자리 잡는다. 스스로 삶의 방식과 형태에 대하여 고민하고 생각하며, 자기 멋대로 그들의 인생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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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체홉은 실린의 아내 마리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더할 나위 없이 커지고 그런 관계를 발견한 실린은 묵묵히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느낀 감정 자체가 실린에게는 공포일 수 있다. 하지만 공포감을 느낀 것은 실린 뿐만이 아니다. 체홉 역시 끝없는 악몽에 시달리며 공포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러한 배우들의 감정을 더욱 관객들에게 생동감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무대 디자이너의 힘이 필요하다. 무대디자이너 박상봉은 황량한 러시아의 겨울과 자작나무를 보여줬다. 또한, 체홉의 불완전함을 불규칙적으로 놓인 책상과 의자의 배치로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연극은 계속해서 각자 개인이 겪는 공포에 대한 두려움, 그 앞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자신의 약한 모습과 하층민들에 대한 동정심, 타인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분명 자신의 아내이지만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실린과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마리와 같이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서 과연 100%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도덕적이건, 규범적이건, 사람이 공포감에 빠지기란 굉장히 쉽다.

사실, 모든 사회는 공포감에 빠질 만한 것들을 우리 주위에 배치해 두었다. 그래서 조금만 극한 상황에 치닫거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면 우리는 바로 공포감에 허우적대기 마련이다. 공포감에 빠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공포를 기회의 발판으로 삼거나, 그저 공포가 주는 위협감을 온몸 그대로 맞서거나 그대로 흡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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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대와 다를 바 없다. 시대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인들을 보여주지만, 극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은 현재와 대부분 유사하다. 특히나 더욱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남으며 서로를 위로한다. 타인에 의한 공포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공포감에서 오는 두려움도 꽤 크다. 결국, 우리는 타인과 만남의 유무와 상관없이 늘 공포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견뎌낸다는 마음으로 그것을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결과를 참혹하게 만든다. 그저 과거에는 참거나 주저하는 것에서 그쳤지만, 현재에는 사람들이 그러한 고통을 가만히 체화하고 있지는 않다.

그 삶에서 도피하듯 도망치고 싶어 한다. 또한,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없던 병까지 만들며 최대한 공포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기계와 기술은 더욱 발전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자존감은 한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다양한 불안증세들로 자신이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보기 좋은 연극일 수 있다. 다양한 소품들과 극의 배경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극에 몰입하다 보면 주말 드라마처럼 우리 일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적인 실내 분위기를 통해 더욱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의 대사와 몸짓, 특히나 감정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공포 가운데서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공포의 정도를 가늠하는 게 다를 뿐이다. 무감각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포가 도사리는 상황을 섬세하게 잡아내어 자신을 그 상황 속에 집어넣는 사람도 있다. 각자 공포의 상황 속에 반응하는 방법과 이겨내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공포가 자아내는 인간 존재의 다양성은 한없이 무한하고 앞으로도 그 범위를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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